"배심원 판결 결과는 무고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이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신고하고, (박유천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다."

배심원 7명의 만장일치로 '무죄'.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1심 무죄를 선고했다. 연예인 박유천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허위신고했다는 이유(무고죄)로 재판을 받게 됐던 피고인 송씨(25)는 무죄가 선고된 순간, 잠시 기뻐하다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방청석에서도 기립 박수와 환호성,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박유천씨의 팬들과 송씨를 지원하던 여성단체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재판은 4일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해 5일 새벽 2시 35분까지 총 17시간 동안 진행됐다.

17시간의 재판 내용 중 의미 있었던 몇 가지 지점을 4개의 키워드로 소개한다.

 4일 '박유천 성폭행' 사건 관련 국민참여재판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날 100여 석 되는 재판장이 방청인들로 인해 꽉 찼다.

4일 '박유천 성폭행' 사건 관련 국민참여재판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이날 100여 석 되는 재판장이 방청인들로 인해 꽉 찼다. ⓒ 유지영


[키워드①] '무고죄', 실형과 무죄 사이

송씨는 이른바 '박유천 성폭행 사건'의 두 번째 당사자였다. 피고인 송씨는 지난 2015년 12월 자신이 일하던 유흥업소에 찾아온 박유천씨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하며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박유천씨에게 무고죄로 기소됐다. 대중들은 송씨에 대해 "연예인 돈을 뜯어내려고 저런다"라거나 "꽃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 또한 "송씨가 금전적인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박유천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취지의 허위 고소장을 제출했으며, 사건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YTN과 MBC <PD수첩>에 '강간당했다'는 일방적인 제보를 했다"는 주장을 내세워 송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배심원과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유천씨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신고한 첫 번째 여성이 무고죄로 징역 2년(1심)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과는 대조적인 결정이다. 왜일까?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고소 사실과 인터뷰를 진행할 사실은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허위 사실이 아니다"라는 근거를 들었다.

다만, 이번 판결은 '송씨의 무고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으로, 이번 재판의 결과가 곧 박유천씨가 성폭행을 했다는 증명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박유천의 무혐의가 곧 피고인 여성의 무고죄로 곧장 성립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판결이다.

[키워드②] 왜 국민참여재판인가

이번 재판의 특징은 이 재판이 재판부만의 것이 아닌 배심원 7명으로 구성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사건을 맡은 이은의 변호사는 6일 <오마이뉴스>에 "피고인이 조사를 6시간 정도 받으면서 여러 차례 같은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검사는 피고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화가 났다. 검사가 한 번쯤 재고를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무고죄'라는 확신을 갖고 덤비니"라며 " 이렇게 편견에 시달리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라고 내가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하자는 결정은 거기서 출발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피고인이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많이 당했다. 인격이 정말 너덜너덜해져 버렸다"라며 "나중에 재판이 길어지면서 관심이 시들해지면 무죄가 나와도 흐지부지 될 것이 아닌가. 명예회복을 다수가 다 같이 지켜보게 하자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피고인 입장을 생각하면 피고인 신문도 박유천씨의 신문처럼 비공개해야 하는 게 맞지만 우리는 공개하자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사건을 보고 있는지 방청객에게도 보여주고 언론에게도 보여주자고."

박유천, "실망 시켜드려 죄송합니다"  JYJ의 박유천이 30일 오후 성폭행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강남서에 출두하고 있다.

2016년 6월 30일 성폭행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강남서에 출두한 박유천. ⓒ 이정민


[키워드③] 검찰의 바이블 '피해자다움'

검찰은 "송씨의 행동이 일반적인 성폭행 피해자답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드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 먼저 검찰은 피고인이 '유흥업소 종사자'라는 점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화장실 크기를 언급했다. 검찰은 "안쪽의 공간은 협소해 상호 간의 협력 없이는 성관계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피고인에게 "왜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문을 열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검찰: "화장실에서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을까."
피고인: "악 소리를 냈지만 밖에 음악 소리가 컸고 이래서 음악 소리를 키워놓았나 싶었다."
검찰: "화장실 문을 열면 바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 왜 문을 열지 않았나."
피고인: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박유천 지인들이고 나를 도와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검찰: "평소에 박유천에게 관심이 있었나."
피고인: "전혀 없었다."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피고인의 답변이다. 검사 측이 "허리를 돌려서 저항하면 성관계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니냐" 등 성폭행에 대한 이해가 낮은 질문을 할 때마다 방청석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때로는 고성이 터져 판사가 방청석을 제지하기도 했다.

17시간 동안 방청인들과 함께 재판을 방청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오마이뉴스>에 "피해자의 직업이 '유흥업소 유흥접객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편견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왜 문을 열고 도움을 청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은 보통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이야기되는 논리와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밖에는 박유천씨의 동료들이 있고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 같다"고 했다.

 4일 박유천이 무고죄로 고소한 여성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은 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해 그 다음날인 5일 오전 2시 35분에 끝이 났다.

4일 박유천이 무고죄로 고소한 여성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재판은 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해 그 다음날인 5일 오전 2시 35분에 끝이 났다. ⓒ 유지영


[키워드④] '완벽하지 않은' 피고인의 대응, 하지만

또한, 검찰은 성폭행을 당한 직후 피고인이 지인과 나눈 카톡 상의 발언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박유천씨가 성관계 시 서로 사귀자면서 주겠다고 약속한 2000만 원에 대해서 피고인이 "2000만 원에 놀아나서 했다"라거나 "2000만 원 때문에 꾹 참고 일하다가 지금 운다" 등 카톡에 올린 대화 내용이 재판 도중 여러 번 읽혔다. 성폭행을 당한 직후 친구들에게 전화하거나 112 콜센터에 전화를 해 "얼떨결에 성교를 했다"라고 한 표현도 검찰은 문제 삼았다.

하지만 변호인은 송씨가 박유천씨로부터 이후 2000만 원을 추가로 받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정에서 송씨가 박유천씨에 성폭행을 당한 직후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오열하는 음성이 나오기도 했다. 변호인은 "이 음성이 정말 피고인이 2000만 원을 받지 못해 억울해서 우는 것 같냐"고 반문했다. 또 "성폭행의 순간 매우 완벽한 대응을 했어야 성폭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배심원들은 결국 이 판단에 손을 들어주었다. 검찰은 '피해자다운 피해자'에 초점을 맞췄다. 조금이라도 사회 통념상 '피해자'라는 틀에 부합하지 않는 피해자를 '피해자 범주'에서 배제함으로써 피해를 평가하는 사람이 당사자가 당한 피해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2000만 원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이는 피해자의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의 논리였다. 송씨는 자신이 유흥업소 종업원이지만 당시 생리 중이었고 그래서 명백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강압적인 성관계가 발생했다고 거듭 진술해야만 했다. 배심원들은 송씨가 적어도 허위를 진술하지 않았다는데 손을 들어주었다.

한편, 결정적으로 변호인은 박유천씨가 그날의 진술을 조금씩 번복하고 있다는 것도 지적했다. 변호인은 비공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박유천씨를 향해 몇 번이고 어떤 하의를 입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박유천씨는 그날 일이 다 기억난다면서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거 그가 썼던 진술 조서에서 그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는 것이 변호인의 주장이다. 박유천 관련 신문이 비공개였지만 이는 재판의 마지막 부분인 최후 변론을 통해 밝혀졌다.

송씨의 변호를 담당했던 이은의 변호사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박유천씨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 오픈한 것들이 많았다. 박유천씨에게 이를 거듭 질문하면서 배심원들에게 박씨가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는 걸 각인시켜주었다"고 떠올렸다.

성폭력 피해자 무고죄 박유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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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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