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

ⓒ 메가박스㈜플러스엠


지난 6월 28일, 이준익 감독의 <박열>(2016)이 개봉했다. 작년 개봉한 <동주>(2015) 이후 두 번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그리고 내달 개봉예정인 <군함도>(2016)까지,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이 흥행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일제강점기를 영화의 특징이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던 독립운동가가 아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인물들을 재조명한다는 것이다.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만큼이나 비중이 컸던 송몽규 열사, <밀정>(2016)의 주인공 이정출의 모티프였던 황옥, 그리고 박열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의 삶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역사를 그대로 옮기다

 영화 <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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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주인공 박열은 배우 이제훈이 분했는데, 실제 박열의 이미지와 이제훈의 모습이 굉장히 흡사하다. 박열의 생전모습은 알 수 없지만, 이제훈의 모습을 보고 유추할 수 있어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매우 훌륭한 편인데, 전작 <동주>에서 '쿠미'를 연기한 최희서는 이번 작품에서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를 연기한다. 최근 드라마와 스크린 모두에서 활약하고 있는 민진웅 역시 호연을 펼친다. 이 밖에 박열을 변호했던 '후세 다츠시'를 연기한 마노우치 타스쿠를 비롯해 일본인 배우들의 연기도 굉장히 눈에 띈다.

박열은 재일조선인으로 인력거를 끌며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멸시하고 조롱한다. 하지만 박열은 절대 자존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박열은 후미코라는 아니키스트 일본 여성을 만나게 되다. 후미코는 박열이 쓴 '개새끼'라는 시를 보고 그에 대한 호감을 느낀다. 박열 또한 후미코를 만나자마자 좋은 감정을 갖는다. 이렇게 둘은 연인이자 사상적 동지로 의기투합한다. 두 사람은 불령사이란 단체에서 일제의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항일투쟁을 지속한다.

그러던 와중에 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 일본의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는 무지막지했다. 일본 내각은 성난 민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조선인이 재난을 틈타 우물에 독을 탔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이에 동요해 자경단, 군인들은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자경단의 무자비한 학살보다 경찰서가 안전할 거라 판단한 박열과 불령사 단원들은 자진해서 수감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박열과 후미코는 황태자 암살범으로 몰려 대역죄인이 돼버린다. 이제 박열은 스스로 대역죄인이 되기로 하고 일본에 맞서는 영웅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극 중 박열은 일본 제국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그들의 사죄와 반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 민중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진 않는다. 오히려 일본인이지만 후미코는 누구보다 일제 치하를 혐오하고 항일 투쟁을 벌인다. 박열을 변호하고 일제의 만행과 학살을 사죄하라고 법정에서 외치는 후세 다츠시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일제 강점기, 박열이란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분노를 유발하거나 눈물을 짜내려는 시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전개는 전작인 <동주>에서도 잘 드러난다.

무정부주의에 관하여

 영화 <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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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아나키스트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극 중 박열과 후미코는 여러 차례 자신이 아나키스트임을 강조한다. 박열이 취조를 받을 때도 자신은 사회주의자가 아닌 아나키스트라고 정정한다. 아나키즘(anarchism)은 권력 또는 정부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에서 유래했다. 무정부주의는 국가와 사법체제가 없고 구속이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 요즘에는 무정부주의가 혼란과 무질서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극 중 아나키스트는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진 않다. 박열과 후미코는 본디 인간은 모든 사람이 그 자체로 평등해야 하는데,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는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는 천황을 신으로 추대해 민중들을 지배계층의 노예로 살게 한다고 주장한다.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박열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 대역 죄인이 되었다. 신념을 위해, 그리고 관동 대지진 이후 발생한 조선인 대학살이란 끔찍한 사건이 잊히지 않기 위해 말이다. 조선 제일의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힌 청춘의 신념은 그 누구보다 숭고했고 순수했다. 언제 사형이 구형될지 모르는 법정에서 조선 예복을 입고 등장하고, 조선말로 진술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박열의 기개와 대담함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그의 행동을 통해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박열과 후미코가 그동안 전혀 조명되지 않았다는 것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사실 우리는 많은 독립투사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이름 모르는 그분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떠한 희생과 노력을 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나마 최근 영화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투사들이 재조명받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박열의 아나키즘 정신 또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결국, 그가 원했던 것은 국가 또는 정부의 억압이 사라진 후,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평등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가 그토록 부르짖던 이상향이 우리에겐 당연시 여겨지는 지금, 사형을 선고받은 후 재판장을 향한 박열의 대사로 글을 마친다.

"재판장! 자네도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이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Critics의 페이스북 페이지와 춘천지역 주간지 <춘천사람들>에서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열 아나키스트 이제훈 이준익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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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에서 글쓰기 동아리 Critics를 운영하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고있습니다. 춘천 지역 일간지 춘천사람들과도 동행하고 있습니다. 차후 참 언론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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