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주 KCC는 비시즌 가장 크게 주목받고 있는 팀 중 하나다. 다름 아닌 FA 역사상 최대 금액인 9억2000만 원으로 KGC인삼공사에서 이정현(30·191cm)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현역 토종선수 중 최고의 득점능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이정현의 가세는 다음 시즌 KCC 전력에 상당한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KCC 역대 2번 스타들도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KCC는 2차례 왕조를 이루며 리그를 지배한바있는데 그때마다 2번 포지션에 걸출한 선수들이 활약했다. 신선우 감독체제서 이상민, 추승균과 함께 맹위를 떨쳤던 '캥거루 슈터' 조성원(46·180cm), 허재 감독의 황태자로 펄펄 날았던 '강페니' 강병현(31·193㎝)이 바로 그들이다. KCC팬들은 이정현이 조성원, 강병현의 뒤를 이어 새로운 왕조를 열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KCC는 물론 농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또 다른 특급 2번도 같이 언급되고 있는 분위기인데 다름 아닌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꽃이 피지 못한 김민구(26·191cm)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16년 11월 10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전주 KCC와 부산 KT의 경기에서 KCC 김민구가 레이업슛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1월 10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전주 KCC와 부산 KT의 경기에서 KCC 김민구가 레이업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농구사 바꿀 수 있었던 최고의 재능

앞서 언급한 KCC 2명의 레전드 2번 조성원, 강병현은 장점 못지않게 약점도 존재했다. 조성원은 폭발적 스피드를 겸비한 슈터라는 희소성 있는 캐릭터였지만 작은 사이즈가 발목을 잡았다. 프로농구는 농구대잔치 시절과 달리 갈수록 선수들의 사이즈가 커져갔다. 거기에 외국인선수들까지 버티고 있었던 지라 180cm의 신장은 2번으로서 너무 작았다.

사이즈가 작다는 것은 공격보다는 수비시에 마이너스가 크다. 공격같은 경우 개인기량으로 풀어나가면 되는 부분도 있는 지라 작아도 잘하는 선수가 많다. 반면 수비는 미스매치의 집중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감독들은 매치업을 짤 때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점수를 많이 내도 수비에서 밀려버리면 메리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KCC에는 조성원의 약점을 커버해줄 선수가 있었다. 1번 이상민(45·183㎝)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상민도 큰 것은 아니었지만 조성원보다는 신장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탄력과 수비센스가 좋아 어지간한 슈팅가드도 막아낼 수 있는 뛰어난 디펜더였다. 신 감독은 잦은 바꿔막기를 통해 조성원의 수비적 약점을 커버하면서 공격력을 잘 뽑아냈다.

강병현은 큰 사이즈에 좋은 운동능력과 활동량을 바탕으로 전천후 역할을 해낸 살림꾼형 2번이다. 수비력이 워낙 돋보여서 그렇지 공격력 또한 나쁘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플레이가 투박해서 공격력에 기복이 있었다. 특히 슈팅같은 경우 정교한 슈터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만약 강병현이 슛까지 좋았다면 허재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민구는 강병현에 버금가는 사이즈에 조성원급 공격력은 물론 어지간한 1번 못지않은 패싱센스까지 갖추고 있던 전천후 플레이어였다.

경희대학교 재학시절부터 국가대표 팀 슈터로 활약했던 김민구는 프로에서 제대로 뚜껑을 열어보니 더욱 대단한 선수였다. 단순히 3점 슛만 잘 쏘는 게 아니라 빈 공간이 보이면 지체 없이 돌파를 시도했고 성공률 또한 매우 높았다.

김선형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로 가속도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드리블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수비수를 제쳤다. 김선형이 투박했다면 김민구는 유연했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스타일인 만큼 마무리도 뛰어나다. 큰 선수들이 가로막아도 재치 있게 '플로터 슛'을 성공시켰다. 나이는 어리지만 '농구도사'를 연상케 했다.

무엇보다 팬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넓은 시야와 뛰어난 패싱 센스였다. 원맨 리딩이 가능한 1번이 줄어들고 있는 현 추세에서 2번은 단순히 공격력만 좋아서는 안 된다. 1번을 도와 보조 리딩이 가능한 슈팅 가드가 각 팀마다 절실해지고 있다.

김민구는 단순히 보조 리딩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경기 전체를 꿰뚫어보는 눈썰미와 순간적인 재치가 워낙 뛰어난 만큼 어지간한 정통 포인트 가드 뺨치는 시야를 과시한다. 정확도는 물론 달리는 동료에 맞춰 속도를 조절해가며 패스를 뿌리는 장면에서는 김민구의 포지션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경희대 시절부터 실질 게임 리딩을 담당했던 진가가 프로에서 그대로 나왔다는 평가다. 2번이 아닌 1번으로서도 최고수준이다.

때문에 김민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팀 공헌도가 높았다. 슛감이 안 좋은 날도 패스를 통해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비수 입장에서는 슛·패스를 모두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막아내기가 더욱 어렵다. 게임 이해도가 높은 선수답게 수비도 매우 지능적으로 잘했다.

상대의 동선을 미리 읽는 것은 물론 기가 막힌 타이밍에서 스틸을 성공시킨다. 허재 이후 1-2번에서 모두 정상급 기량을 보여준 선수는 김민구가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 김민구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아주 높았다. KCC를 뛰어넘어 국가대표 에이스 재목인지라 그의 성장은 한국농구의 진화라는 말까지 있었다.

자신을 믿어주는 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쉽게도 현재는 이러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만 상태다.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것은 물론 치명적 부상까지 당하며 예전의 기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센스는 여전하지만 몸상태와 운동능력 상실로 인해 코트에서 펼쳐보일 수가 없다. KCC는 물론 국가대표팀에도 치명적 전력 누수가 되고 말았다.

1-2번에서 모두 최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그가 있었다면 현재의 KCC는 이정현이 아닌 다른 선수가 영입되었을 공산도 크다. 그대로 진행됐다 해도 김민구-이정현이라는 역대 최상급 가드라인도 가능했다.

물론 김민구는 몸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상태인 지라 기대치만큼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국가대표급으로 부활하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뼈를 깎는 의지와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만이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KCC팬들을 안타깝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김민구의 아쉬운 처세다. 높은 'BQ(바스켓 아이큐)'와 달리 농구 이외의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김민구는 기량하락을 떠나 음주사건으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다. 서장훈(음주운전 공식적발 2회)의 경우처럼 언젠가는 잊혀질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김민구하면 음주운전이 떠오를 정도로 그를 보는 안팎의 눈이 싸늘한 것이 사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자숙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오랜만에 복귀한 코트에서 상대선수와 난투극 일보직전까지 가고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지인들과 술을 먹는 모습을 올리는 모습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많이 반성하고 묵묵히 노력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모습들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이미지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술한잔 먹고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겠으나 김민구 자신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많은 것을 잃었다는 점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김민구 본인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부활을 끝까지 응원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곁을 지켜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신중한 행보가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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