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7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3회말 1사 1루에서 롯데 이대호가 파울 타구를 날리고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2017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3회말 1사 1루에서 롯데 이대호가 파울 타구를 날리고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대호(롯데)와 오재원(두산)은 지난 하루 동안 뜬금없는 '훈계질' 소동의 중심에 섰다. 지난 23일 잠실 두산-롯데전에서 두산이 9-1로 승리하며 경기가 끝난 직후 양 팀이 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하여 좌우측 파울 선상에 도열하던 상황에서 문제의 장면이 발생했다.

중계 방송 화면을 통해 롯데 이대호가 두산 오재원을 불러세워 무언가 몇 마디를 건네는 장면이 포착됐다. 화면에 비친 이대호의 표정은 진지했고 오재원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팀원들에게 돌아갔다. 단 몇 초 동안에 벌어진 일이었고 큰 충돌이나 언쟁도 없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방송되고 나서 엉뚱하게도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이대호가 오재원에게 훈계를 했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이날 경기 중 벌어졌던 두 선수간의 접촉 상황이 원인으로 거론됐다. 두산이 크게 앞서고 있던 8회초 2사에서 2루수 오재원은 1루에서 2루로 뛰어가는 주자 이대호를 태그아웃시켰다.

충분히 1루로 던져서 아웃 카운트를 올릴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몸을 터치한 것을 두고 이대호가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게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심지어 일부 팬들은 이대호가 오재원보다 야구 선배라는 것을 앞세워 '꼰대질'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기에 따라 오해할 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경기 직후 굳이 상대팀 선수를 불러세워 말을 거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고, 당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이대호의 모습은 누가 봐도 화난 것처럼 보일 만했다. 8회 접촉 장면 이외에 두 선수나 양팀모두 딱히 부딪힐 만한 상황도 없었기에 팬들의 궁금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경기 후 하루 종일 SNS와 인터넷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난 직후 이대호가 직접 해명한 내용은 팬들의 추측과는 조금 온도 차이가 있었다. 당시 오재원의 태그 상황에 이야기한 것은 맞지만 화를 내거나 훈계한 것은 아니었고, 팀이 경기에 진 상황이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는 게 이대호의 입장이다.

사실 이대호와 오재원은 이미 대표팀에서 여러 번 함께 하며 친분이 있는 사이다. 오재원이 굳이 이대호에게 태그를 한 것도 친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최근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이래저래 부담이 많았던 이대호 입장에서는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장난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 표시를 했을 뿐이라는 것. 하지만 이대호는 팬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이었다는 점에서는 자신의 책임이라며 사과했다.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되고 굳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만한 사안도 아니었다.

오재원도 화답의 퍼포먼스로 팬들의 남은 의문을 말끔히 불식 시켰다. 24일 경기 1회말 1사에서 볼넷을 골라낸 오재원은 1루로 걸어나가면서 갑자기 1루수를 보고있던 이대호를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이대호도 이날은 웃음을 지으며 오재원을 맞아줬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전날의 사건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않는 해프닝일 뿐이었음을 확실히 해명한 장면이다.

이대호와 오재원을 둘러싼 해프닝은 다행히 하루 만에 일단락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부 과격팬들의 경솔한 편가르기나 선무당 잡기 식 여론몰이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뒷맛이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대호는 방송중계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다른 팀 동료 선수들에게 몇 마디 말을 걸었고 선배 야구선수라는 이유로 졸지에 '꼰대질'이나 하는 인물로 추측성 매도를 당했다. 이대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했는지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심지어 옆에 있었던 롯데 팀동료 최준석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거기 서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오재원을 째려봤다"고 주장하는 팬들에게 덩달아 비난받으며 불똥이 튀기도 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NC 대 두산 경기. 7회 말 2사 만루 때 두산 오재원이 2타점 1루타를 친 후 기뻐하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NC 대 두산 경기. 7회 말 2사 만루 때 두산 오재원이 2타점 1루타를 친 후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재원도 피해를 본 것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오해의 소지'라도 있었던 이대호에 비하여, 정상적인 플레이를 했을 뿐인 오재원은 오히려 반대쪽 팬들에게는 원인 제공을 한 게 아니냐며 비난을 듣기도 했다. 오재원이 이전에도 터프한 플레이로 여러 번 매너 논란에 휩싸였던 과거 행적을 근거로 이번에도 무언가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저지른 게 아니냐는 추측일 뿐이었다. 졸지에 이 사건은 두 선수와 양팀 팬들간의 온라인 대리전이 되어 서로를 탓하는 한심한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두 선수의 해명과 화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일부에서는 선수들을 비난하는 반응이 계속되었다.

이쯤되면 누가 진짜 '꼰대'이고, 누가 누구에게 '훈계질'을 하려했던 건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어쩌면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한 사건을 두고 정확한 사실 확인도 없이 선수의 인성이나 속내를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성급한 비난을 퍼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상은, 어쩌면 개개인의 과실보다 더 심각한 일종의 '집단 꼰대질'이 아닐까.

스포츠계의 과도한 선후배 위계질서나 군기 문화에 대한 거부감 못지 않게,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익명의 집단여론이 신분이 노출된 유명인사라는 이유로 개인의 인격과 권리를 함부로 짓밟는 '갑질'에 대해서도 자성이 있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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