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 원정경기에서 패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14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카타르와 원정경기에서 패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14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경질되면서 공석이 된 차기 사령탑 자리를 누가 이어받을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대표팀의 상황은 다급하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4승1무 3패(승점 13)로 본선직행이 가능한 2위를 지키고 있지만, 남은 2경기가 난적으로 꼽히는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이다. 이란에게는 최근 A매치 4연패를 당했으며, 승점 1점 차로 한국을 뒤쫓고 있는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전은 원정경기의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단두대 매치다. 한국은 이번 최종예선들어 원정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둬보지 못했다. 자칫하면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이란-우즈배크전이 2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축구협회는 차기 감독 선임이 시급하다.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물은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와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나 최용수 전 장쑤 쑤닝 감독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모두 장단점이 분명하고 선임 과정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하지만, 일단 풍부한 경험과 현재 맡고 있는 팀이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외국인 감독 영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선택이 불가피하다. 냉정히 말해 지금 시점에서 팬들이 원하는 수준의 정상급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과 계약을 해지하고도 15억 원 이상의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협회 예산의 한계를 고려할 때 월드컵 본선진출이 불확실한 시점에서 또다시 높은 연봉을 지불하며 1류 감독을 데려오기란 어렵다. 외국인 감독 입장에서도 단 두 경기만에 본선행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을 남길 수 있는 부담을 감수할만큼 한국 대표팀 감독직이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다. 선수 파악이나 적응 면에서도 국내 축구와 대표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경험이 있는 국내파 지도자가 차선에 가깝다.

그러면 현재 대표팀의 상황을 감안할 때 가장 적임자는 누구일까. 아무래도 대표팀과 월드컵 예선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고 성과까지 낸 인물에 가장 먼저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 이 조건에 충족하는 이는 허정무 부총재밖에 없다.

허정무의 빛과 그림자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허정무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사진은 지난 2014년 7월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허정무 부총재는 역대 대표팀 최장수 사령탑이다. 단일 재임 기간으로는 슈틸리케의 2년 9개월이 가장 길지만, 허 부총재는 두 번이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기간을 합치면 총 4년 6개월이 된다. 특히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서는 국내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원정 16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허 부총재는 역대 대표팀 감독을 통틀어서 가장 저평가받은 지도자이기도 하다. 허 부총재는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 아시아 예선에서 무패행진을 달리는 등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음에도 안티팬들로부터 지루한 경기력과 유독 잦은 무승부 등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원정 16강이라는 성과도 소위 '박지성 효과' 아니냐는 선입견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박지성을 비롯하여 이영표·이청용·기성용·구자철 등 훗날 한국 대표팀의 주축이 될 수많은 선수들을 처음 발탁하고 중용한 것이 허 부총재였다는 사실은 과소평가받고 있다. 훗날 조광래-최강희-홍명보 등 그 뒤를 이은 국내파 지도자들이 대표팀에서 줄줄이 실패하고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하면서 당시 안정감있는 경기력과 선수 장악력을 보여줬던 허정무호가 재평가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허정무 부총재의 복귀가 결국 대표팀의 퇴행이라고 주장하는 팬들도 있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오히려 허정무호 시절 이후로 7년간 퇴행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이다. 침체기를 겪은 네덜란드만 해도 최근 경험이 풍부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다시 복귀시키면서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대표팀 감독을 지내기도 했던 아드보카트는 조국 네덜란드의 사령탑만 벌써 세 번째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현장 경력의 공백이다. 허 부총재는 2012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직에서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이후 5년 가까이 더 이상 현장에서 지휘봉을 잡지 않았고, 사실상 행정 업무 쪽에 전념해왔다. 당장 이란·우즈베크와의 2연전이 모두 토너먼트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단두대 매치임을 감안하면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도 현장 감각의 부족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현재 대표팀은 남아공월드컵 시절 허정무 전 감독의 '오른팔'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정해성 수석코치가 새롭게 합류해 있다. 또한 주장 기성용을 비롯하여 허정무호 시절 발굴한 주축 선수들이 지금도 다수 건재하다. 현장 복귀에 대한 적응과 선수 파악에 대한 시행착오를 그나마 최소화할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신태용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0일 전주에서 개막하는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에 참가한 한국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 지난 16일 팀 훈련을 위해 전주 월드컵보조경기장에 들어서고 있다 .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 사진은 지난 5월 16일 전주 월드컵보조경기장에서 열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훈련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설사 허정무 부총재의 지도력에 대한 기대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과연 현재 국내파 지도자중 그보다 나은 대안이 얼마나 있는가라는 점이다.

일단 월드컵 예선을 통과해본 경험이 있는 국내파 감독 중 현직에 있는 감독은 최강희 전북 감독 단 한 명뿐이다. 하지만 현재 전북에서 행복한 최 감독을 4년 만에 또다시 '시한부 감독'으로 강제 소환하기 원하는 팬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현직을 떠난 차범근-김호-김호곤-김정남 전 감독등은 허정무 부총재보다 오히려 나이가 더 많고 현장공백기도 훨씬 길다. 조광래 전 감독은 3차 예선에서 대표팀을 낙마 위기에 빠뜨리고 경질됐던 지도자다.

월드컵 예선 통과 경험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최용수 전 장쑤 감독이나 신태용 U-20 대표팀 감독과 같은 젊은 지도자들에게 눈길을 돌릴만하다. 다만 홍명보 전 감독의 실패사례에서 보듯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지도자에게 섣불리 무거운 짐을 지우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최용수 감독은 K리그에서 능력을 증명했지만 최근 장쑤에서는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데다 대표팀에서의 경험이 아예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어울리는 카드는 아니다.

신태용 감독은 실제로 최근까지 슈틸리케 경질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꼽혔다. 지난해까지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고 각급 연령대별 대표팀 사령탑을 두루 거치며 팀 내부 사정에 해박한 데다 현장감각도 살아있다는 게 장점이다. 만일 신 감독이 A대표팀까지 맡게된다면 올림픽-청소년대표팀에 이어 각급 대표팀에 구원투수로만 세 번이나 투입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신 감독의 최대 장점은 역시 '형님 리더십'이다. 올림픽과 청소년대표팀 모두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로 인란 혼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친화력과 포용력을 바탕으로 짧은 기간에 선수단을 장악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전술적 사고나 개성강한 젊은 선수들과의 자유분방한 소통 능력은 현대의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덕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U-20 월드컵에서 용두사미 논란에서 보듯, 중요한 토너먼트 경기 때마다 번번이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걸린다. 리우올림픽 아시아예선 결승 일본전, 리우올림픽 본선 8강 온두라스전, U-20월드컵 16강 포르투갈전 등 중요한 고비마다 전술적 자충수와 무리한 경기운영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게 약점이다. 안정감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이란-우즈베크와의 경기서 선뜻 지휘봉을 맡기기엔 불안한 측면이 있다.

차라리 제3의 절충안은 어떨까

허정무나 신태용 카드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면 제3의 절충안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허정무 부총재를 감독으로 선임하고 신태용 감독을 코치로 복귀시켜서 한 팀을 이루게 하는 방식이다. 허정무 부총재에게 부족한 현장 감각과 신태용 감독에게 부족한 연륜을 서로 상호 보완하는 구도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차피 결정을 내릴 것이라면 빠를수록 좋다. 일단 후임 감독이 이란-우즈베크전까지 임시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월드컵 본선진출 유무에 따라 계속해서 대표팀의 지휘봉을 맡길지, 아니면 정식 감독을 다시 선임할지 논의해도 늦지 않다. 축구협회의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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