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손흥민과 이라크의 아흐메드 칼라프가 발을 이용해 공중 경합을 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손흥민과 이라크의 아흐메드 칼라프가 발을 이용해 공중 경합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구마'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존재한다. 안정적이고 든든하거나 혹은 속이 꽉 막힐 정도로 답답하거나.

애석하게도 울리 슈틸리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의 축구는 후자에 훨씬 가깝다. 슈틸리케호가 중요한 카타르 최종예선 원정 경기를 앞두고 또다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지난 8일(한국시간) 열린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라스알카이마 에미리츠클럽 스타디움서 열린 이라크와 친선경기 모의고사에서는 졸전 끝에 0-0으로 비겼다.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아야 했던 한국이었지만 이번에도 슈틸리케호는 무색무취한 경기력으로 일관한 끝에 지루한 무승부로 만족해야 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최종예선 들어 내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이란에 이어 간신히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시원하게 거둔 승리가 사실상 단 한 번도 없다. 홈에서는 전승을 기록했으나 내용상 악전고투 끝에 겨우 한 골 차 승리에 만족해야 했고, 원정에서는 아예 무승에 단 한골도 넣지 못했다.

처음엔 잘나가던 슈틸리케, 왜 고구마 됐나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전반 경기가 안 풀리자 답답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전반 경기가 안 풀리자 답답한 표정으로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부임 초기만 해도 슈틸리케호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든든한 고구마 축구에 좀더 가까웠다. 슈틸리케호의 첫 메이저대회였던 2015년 호주 아시안컵 당시에도 경기 내용이 딱히 화려하거나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쉽게 무너지지않는 끈끈한 수비력과 실리적인 경기운영을 바탕으로 꾸역꾸역 승리를 챙겼다. 지난 아시아 2차예선에서는 약팀을 상대로 무실점에 막강한 화력까지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재임 기간이 길어지고 경쟁팀들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최종예선에 돌입하면서 슈틸리케호는 어느새 팬들을 속터지게 만드는 답답한 고구마 축구로 전락했다. 변화 없이 고정된 선수선발과 전술, 무의미한 점유율 축구에 대한 집착은 상대팀에게 수가 노출되며 갈수록 한계를 드러냈다. 계속되는 부진에도 불구하고 뜬구름만 잡는 슈틸리케 감독과 축구협회의 엉뚱한 처방도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14일 카타르전은 슈틸리케 감독은 물론이고 한국 축구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다. 3위 우즈벡에 단 1점 차이로 간신히 앞서 본선직행이 가능한 2위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 마지막 남은 2경기의 상대가 난적인 이란과 우즈벡이다. 카타르전에서 무조건 승점 3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남은 일정의 부담이 더욱 높아진다.

이미 두 번이나 경질설이 오르내린 끝에 간신히 기사회생했던 슈틸리케 감독도 카타르전마저 놓친다면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진다. 최악의 경우 이란-우즈벡전까지 소화하지못하고 경질당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경질당해도 고향으로 돌아가면 되는 슈틸리케 감독에 비하여 한국축구는 9회연속 월드컵 본선행에 빨간불이 켜지는 더 큰 후폭풍을 감수해야 한다.

심상치 않은 여론을 의식한 듯 슈틸리케 감독은 카타르 원정을 위한 출국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팬들에 대하여 "한번만 더 믿어달라"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협회도 이번 A매치 소집을 앞두고 코치진을 다시 개편하는가 하면 소속 구단들의 협조를 얻어 선수들을 조기소집하는 등 대표팀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라크와의 평가전에는 그동안 쓰지 않던 스리백 전술과 제로톱까지 실험하는 등 변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는 했다.

잘 나가는 선수들, 왜 대표팀만 가면?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기성용이 중원에서 공을 치고 나와 상대 문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카이마 에미레이츠 클럽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이라크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에서 한국의 기성용이 중원에서 공을 치고 나와 상대 문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결과적으로 봤을때 이번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쓸데없이 부지런하기는 했지만 정작 별다른 소득이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스리백을 가동하고 플레이메이커 기성용을 센터백과 미드필더를 넘나드는 '리베로'에 가깝게 활용한 것은 나름 파격이었다. 대표팀 공격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빌드업의 완성도를 높이고 수비수의 숫자의 늘려 수비의 안정감까지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기성용이 후방으로 내려가면서 상대적으로 중원이 부실해지며 역습에 취약점을 노출했다. 기성용 역시 전문적인 수비수가 아니다 보니 위치 선정과 대인마크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후반 들어 다시 기성용을 익숙한 위치에 옮겨 놓기는 했지만 선수들의 자리만 바꿨을뿐 전술이나 경기 운영에는 변화가 없었다. 수비 역시 표면적으로는 무실점이었지만 내용상 실점으로 이어져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아찔한 위기상황이 많았다는 점에서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격수들의 활용 방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반에는 지동원-손흥민-이청용이 3-4-3에서 스리톱 공격수로 배치됐고 후반에는 황희찬, 이근호, 황일수 등을 잇달아 투입했다. 사실상 해외파를 포함 한국이 가동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자원들을 모두 투입했지만 득점은커녕 유효슈팅도 한번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은 소속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을 데려다 놓고도 정작 대표팀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흥민이나 황희찬은 유럽 1부리그 상위권 팀에서 10~20골 이상을 넣으며 검증된 선수들이었고 지동원도 득점력은 떨어지지만 한 시즌간 꾸준히 주전급으로 활약해온 선수다. 이런 공격수들조차 최근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유독 힘을 쓰지못하고 있다. 1~2경기면 선수의 부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엇박자가 장기간 반복된다면 감독의 전술이나 선수 활용법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선택지의 다양성 역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손흥민, 지동원, 이근호 등 모두 포스트에서 힘을 발휘하는 정통 스트라이커라기보다는 침투와 연계에 강점을 지니고 있는 2선 공격수에 더 최적화된 선수들이었다. 황희찬과 황일수가 개인능력을 앞세운 돌파로 다소 차별화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팀 전술과 유기적으로 어우러지지 못한 단발성 활약이었다. 김신욱마저 제외되며 밀집수비와 공중전에 강점이 있는 타깃맨 자원을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다는 불안요소가 이라크전에서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기도 했다.

운명의 카타르전까지 이제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어떻게든 주어진 자원과 조건 하에서 승리라는 결실을 일궈내야 한다는 부담이 더욱 커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믿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신뢰는 말이 아닌 경기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카타르전은 슈틸리케 감독과 한국축구의 고별전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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