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는 뜻이다. 당 태종과 신하들의 대화를 기록한 정치 문답집 <정관정요>에 나오는 말이다. 군주와 백성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지난해 탄핵 국면에서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기도 했다.

영화 <대립군>은 이 의미를 새겨보게 하는 영화다. 국난을 맞아 세자 일행이 영변에서 강계까지 험한 산길을 가는 과정이 영화 대부분이지만, 이 과정에서 임금에 대한 백성의 마음이나 백성을 바라보는 임금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임금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배는 뒤집힐 수도 있고, 민심의 물 위에서 순항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진년, 그 날의 기록에 상상을 더하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임진년 일본군의 침략 속에 피신하기 바쁜 임금은 영변에서 조정은 둘로 나눈 후 분조를 세운다. 조정의 한 축을 어린 세자 광해에게 맡긴 후, 자신은 명나라 원군 요청을 위해 의주로 피난을 떠난다. 광해에게는 강계로 가서 의병을 모아 일본에 맞서는 임무가 주어진다. 대부분 군사가 왕을 따르면서 대립군이 세자 일행의 호위를 맡게 된다. 대립군은 남의 군역을 대신해 생계를 유지하는 국경 주변에 거주하는 하층민들이다.

산길을 따라가는 여정은 무척이나 험난하다. 무능한 임금이 백성을 팽개치고 자기 홀로 살겠다고 피신에 몰두하는 순간 백성의 분노는 커진 상태였다. 믿었던 조정에 대한 배신감은 피신 중이던 왕자를 잡아 일본군에게 직접 갖다 바칠 만큼 민심이반은 심각했다.

임금이 도망가는 나라에서 분조의 여정도 난관의 연속이다. 추격하는 일본군도 그렇지만 분노한 민심도 세자의 안위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언제든 세자를 잡아 일본군에 넘길 수 있어서다.

<대립군>은 이 과정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나약하기만 했던 세자가 민중의 마음을 읽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위기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조금씩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이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 속의 화초는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에 백성들은 기꺼이 왕이라는 배가 순항할 수 있는 물이 되고자 한다.

<대립군>은 수백 년 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이야기의 맥락에는 우리 시대의 현실이 투영돼 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전투 신이나 화려한 액션 등의 볼거리에 치중하기보다는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을 앞세워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역사의 교훈을 현실로 이으려는 감독의 문제의식과 작가 정신은 조선 시대의 역사를 끌어와 여러 지점에서 현대의 정치 사회적 흐름과 접점을 이루게 만든다.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한다. 폐위된 임금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광해를 재평가하고자 하는 것도 영화에 깔린 바탕이다.

촛불 혁명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영화로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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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민심의 분노는 무능한 군주를 끌어내렸고, 봄을 맞으며 빈자리에 새로운 지도자를 세웠다. 잘못된 지도자가 민심의 물결을 휘몰아치게 했다면, 백성과 호흡하려는 지도자에게는 잔잔한 물길로 응원하는 중이다.

<대립군>에서 보이는 군주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애민 정신으로 백성과 호흡하는 지도자와 그렇지 않고 관료주의에 둘러싸여 유약한 사고로 일관하는 차이는 크다. 세자를 보필하는 대신들은 권위주의의 틀에 갇힌 채 제대로 된 사고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하지만 세자를 일깨우고 단련시키는 이들이 낮은 신분으로 남을 대신해 전쟁에 나서 먹고사는 대립군이라는 점은 의미가 크다. 기층 민중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과거를 통해 현실에 대한 발언을 하는 부분이다. 평범한 백성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나약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하나둘 힘을 합쳐 국난을 극복하고 올바른 지도자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촛불 혁명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일본군에 맞서 불화살을 날리는 의병이나 화차를 밀어 진격하는 모습은 촛불의 형상화로도 비친다. <대립군>이 촛불 시민들에 대한 헌정 영화로 보이게 되는 지점이다.

영화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 역시도 촛불 혁명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원 대표는 "영화 <대립군>을 지방에서 촬영하고 있을 때 촛불 혁명이 시작되었으나 단 한 번 참여한 것 외에는 겨울에 시민과 함께하지 못했다"면서 "촬영장에서 <대립군>만큼은 시민과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작가는 글로 말하는 것이고 작곡가는 음악으로 말하듯이 영화인은 자기 영화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대립군>으로 조금이나마 우리 영화를 보러와 주는 관객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위로를 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립군 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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