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무현입니다> 포스터

ⓒ 영화사 풀


존재는 부재로 비롯한다.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인식한다. 안타깝지만 세상을 감각하는 우리의 인식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도 그렇다. 살아있을 때의 존재감도 뛰어났지만, 부재로 인한 소중함이 인간 노무현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한다.

서거 8주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뽑힌다. 활짝 피었고 생각보다 빨리 졌다. 하지만 그의 씨앗은 바람에 흩날려 대한민국 곳곳에 스며들어 더 큰 꽃밭을 만들었다. 그는 더 실존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그의 영향 아래 존재했던 정치인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시대를 이끄는 지금, 근현대사 속 한 명의 대통령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첫 단추로 그는 기억된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바보 노무현이 처음으로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로 가능성을 보였던 2002년 뜨거웠던 민주당 국민경선으로 줌인한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 영화사 풀


당시 노무현은 전국구 정치인은 아니었다. 정치 1번가 종로구 의원이었지만 연속해 부산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인제, 한화갑 등 민주당 거물급 정치인에 비하면 신참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노무현이 될 거라 장담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무현은 언제나처럼 '자신을 도와 달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 2002년 2월에서 5월까지의 민주당 경선. 제주, 울산, 충남, 강원, 인천 등 16개 도시를 거치면서 정치인 노무현은 민주당 대선주자로 선택받았다.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대중연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스티브 잡스의 전기 영화 <잡스>를. 투표하는 경선과정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최근 개봉한 <특별시민>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 속 세 주인공의 성품은 다르지만, 목적을 향한 집념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 노무현에게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환하게 웃으며 연설하는 그의 모습은 경선장 속 민주당원뿐 아니라, 영화관 안 관객들도 미소 짓게 만든다. 자신의 약점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인간적인 상식에 호소하는 그의 강단은 왠지 모를 가슴 속 뜨거움을 되살린다. 이성적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진실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노무현을 정치인이 아닌 인간으로 기억하는 우리의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정치 경선 과정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이 아니라, '인간 노무현'이다.

'정치인 노무현' 아니라 '인간 노무현'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 영화사 풀


영화는 경선 과정뿐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주변인의 인터뷰로도 채워져 있다. 수많은 수사어와 추억이 그를 소환하지만, 그 무엇보다 진실 되게 그를 묘사하는 것은 인터뷰어들의 침묵이다. 먼 곳을 응시하며 그를 회상하는 침묵과 공백은 금세 울음으로 채워진다. 그에 대한 생각에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눈물 흘릴 때, 그 공백 사이로 우리는 인간 노무현을 가장 진실 되게 느낀다. 그 어떤 신파와 미장센으로도 만들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 밀려드는 시간. 그 여백 속에 인간 노무현을 담는다.

그를 가장 옆에서 지켰던 한 인터뷰어가 말한다. 누구보다도 인간다웠던 그의 언행과 행동에는 깊은 슬픔이 배어있다고. 2002년 경선과 대선 때 국민이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도. 우리가 그를 지금까지 흐느끼며 기억하는 이유도. 그에게 배어있는 인간다움 그리고 저변에 존재하는 슬픔의 원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런 배경 없이 대통령이 되어서 기득권의 숱한 멸시를 받으면서 떠난 그에게 우리는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느낀다. 그와 우리의 관계는 단순 수직적이지 않다. 서로를 감싸고 지켜주고 싶었던 수평적 관계였다. 영화는 그에 대한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관객들을 배려한다.

대통령으로 뽑힌 뒤 검은색 차에 올라타 시민들을 향해 퍼레이드를 하는 노무현의 모습은, 우리가 익히 알듯 2009 영결식 검은 차로 변한다. 힘들게 피워냈지만 이내 저버린 노무현이란 꽃. 그 꽃을 오랫동안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울었지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은 저버리지 않았다. 그의 영결식. 바람 속 휘날리는 노란 풍선은 그가 남긴 씨앗이 사회 곳곳에 퍼져 이내 새로운 꽃밭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바보스러움. 뻔한 실패가 보임에도 동서대 통합이란 대의를 가지고 도전하는 우직함. 숱한 공격에도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인간다움. 더 말할 수 없는 존재지만, 부재를 통해 우리는 그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변화될 세상 속에서 함께 할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정신은 계속해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다.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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