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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과 성소수자라는 이중 억압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청소년 성소수자도 학교 공간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학교 공간은 학생들에게 어떤 공간인지 대전지역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두 달간 연재한다. - 기자 말

☞ 이전기사 : "'야, 너 동성애자냐?' 장난치는 친구들, 언짢아요"

#1. 어흑님 소개

- 안녕하세요 어흑님.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악기를 전공하고 있는 고3입니다. 아주 평범한 헤테로 플렉시블 고등학생이에요."

-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 페이지의 인권 조례안에 대한 글을 페이스북에 제가 공유했는데 솔롱고스 활동가 라라님이 그걸 보시고 같이 인권 조례안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가, 라라님이 같이 활동 하자고 권유해주셔서 함께 하게 되었어요."

- 어흑님의 정체성을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정체성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시고 처음 정체화 하셨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헤테로 플렉시블은 쉽게 말하면 이성애자에 가까운 양성애자예요. 사실 이런 표현 자체도 양성애자들의 존재를 지울 수 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하는 표현인데, 이게 가장 이해하기 쉬운 말인 거 같아요.

주로 지금까지 연애 상대는 모두 남자였고, 지금까지 제가 완벽한 이성애자, 이성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을 해왔었는데 제 친구를 보고 애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어요. 제 주변에 퀴어분들이 한 분도 안 계셨을 때는 그 친구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다는 자체가 되게 미안했어요. 친구라는 이름 아래서 제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걸 알면 그 친구 눈엔 제가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요.

처음에는 저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정체화했는데 퀴어이론을 더 공부하고 보니까 플렉시블이라는 개념이 있더라고요. 이게 나한테는 양성애자보다 맞는 말이겠구나 해서 플렉시블로 정체화 하게 되었어요. 정체화한 지는 얼마 안 됐어요. 플렉시블 개념을 접한 게 얼마 안 됐거든요. 플렉시블이라는 개념 자체가 원래 있던 개념이 아니라 최근 들어서 형성된 개념이래요."

성소수자 어흑님은 솔롱고스 회원이다
 성소수자 어흑님은 솔롱고스 회원이다
ⓒ 솔롱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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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정체화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거부감은 없었지만 아주 복잡했어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우정에서 좀 더 심화된 걸까 아니면 이성을 좋아하듯 사랑하는 마음일까 싶어서요. 퀴어성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그 감정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힘들어서 혼란스러웠어요."

-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를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주변에 어쩌다 보니 저에게 커밍아웃한 퀴어도 있었고, 그 분 중심으로 놀다 보니까 점점 제 주변에서도 퀴어 인맥이 늘기 시작했고, 그분들이 대화하는 걸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접하고 알아가게 되었어요. 제가 따로 찾아보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사실 오프라인상에서는 한 명이 제 정체성을 알아요. 그런데 지금 그 친구랑도 사이가 멀어졌으니까 한 명도 없게 됐네요.(웃음)"

#2. 학교

- 학교는 어때요?
"학교에 예체능 반이 있거든요. 제가 악기 전공이다보니 예체능반에 속해 있는데 전공 탓에 기독교인 친구들이 좀 많아요. 졸업사진 찍을 때였는데 뒤에서 그 친구들이 얘기하는 걸 듣게 됐어요. 왜 갑자기 동성애에 관련된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동성애자들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사랑해서 반대하는 거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동성끼리 좋아하는 감정도 친구끼리나 가능한 거지 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그랬으면 하나님께서 왜 여자 남자끼리만 사랑할 수 있게 만드셨겠나'라고 했는데 그 이후로 그 친구들에게 거부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짝꿍이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게이래요. 그 친구가 자기 가수를 주변에 홍보하고 다니는데 선생님들은 그 가수를 모르니까 '걔가 누군데?'하고 물어보거든요. 그러면 주변 친구들이 '걔 게이에요'라고 대답해요.

만약 다른 가수였다면 그 사람의 노래나 다른 활동 같은 걸 얘기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가수에게는 바로 게이라는 소개부터 하죠. 이름이나 활동은 지워지고 정체성만 남아요. 그 소수성, 정체성이 너무 부각되는 거예요. 소수자들이 너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2학년 때였나? 쉬는시간에 친구들이 BL물 얘기 같은걸 하는데 지나가던 여자애가 '그런 걸 대체 왜 봐? 역겨워'라는 말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BL물은 순수한 사랑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대체로 자극적인 묘사로 가득하잖아요. 제가 BL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충분히 로맨스로 그려질 수 있는 게 자극적으로 묘사되고, 또 그게 이미지를 생산하잖아요. 게이들은 다 저렇다는 이미지요."

- 혐오표현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세요?
"굳이 저를 저격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들으면 기분이 정말 나빠요.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주변에서 겪었던 혐오표현들 자체가 동성애자들에게 한정되어 있잖아요. 만약 그 사람들이 동성애자, 양성애자가 아니라 무성애자, 플렉시블 이런 비가시화된, 생소한 정체성이라면 그런 혐오표현 자체가 나타나기나 할까 싶은 생각도 들고... 또 퀴어가 동성애, 양성애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같은 정체성은 외면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혐오표현을 들은 직후는 그 사람에게 화도 나고 짜증도 나는데 나중에는 다른 퀴어보다 존재감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서 좀 그래요. 슬퍼요."

- 학교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세요?
"우리 학교 애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지는 않는 편이라서 우리 학교 자체는 조금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체성을 드러냈을 때 애들이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거나 자꾸 그 소수성을 부각한다거나 그러면 정말 슬플 거 같아요. 신체적인 위협은 없겠지만, 정신적인 위협을 받을 수도 있을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있겠죠. 당연히."

- 만약에 아웃팅을 당한다면 어떨 거 같나요?
"플렉시블이라는 개념 자체도 아는 사람이 되게 없어서 충분히 이성애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아웃팅 됐을 때 내가 스스로 감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안 좋아요. 사실 아웃팅 당해도 상관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면 그런 고민을 안 했을 텐데, 사실 저 스스로도 퀴어성을 지우고 숨기면서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는 거잖아요. 이성애자 코스프레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변명을 하겠죠. '나는 이성애자에 가까운 거야. 완전한 동성애자나 완전한 양성애자가 아니라고!' 이렇게요."

- 아웃팅 당해도 상관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요?
"개인만이 노력하는 걸로는 분명히 부족할 거 같다고 생각해요. 다들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실제로 그런 존재가 눈앞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수 있게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데... 사실 이게 교육에서 이뤄져야 하는 거잖아요. 선생님들이 나서서 거론을 해주거나 편견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어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 것 같은데, 사실 그게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아요."

- 선생님이 혐오표현하는 걸 들은 적이 있나요?
"아마 중학교 때까지는 퀴어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어서 들었어도 제가 기억을 못하고 있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아예 퀴어 언급을 안 하세요. 주변 사람들은 되게 그런 표현들을 많이 들었다고 했는데, 저는 목격을 많이 못 했어요. 하지만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표현은 많이 들어봤어요. 기술가정 시간에 가정에는 당연히 엄마아빠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표현을 하거나, 철저히 이성애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말들이요. 사실 이런 것도 죄다 혐오표현이지만 비성소수자들이 듣기엔 저게 왜 혐오표현이야? 하겠죠. 윤리 시간에는 정상적인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나중에 삐뚤어지지 않는다 했었어요. 그 정상적인 가정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여쭤봤더니 당연히 엄마아빠가 모두 계시고 별문제 없는 집안이라고 하셨어요."

#3. 지지자들

- 어떤 상황에서 커밍아웃하게 되었나요?
"그건 제 친구가 먼저 커밍아웃을 해서, 나도 사실 그렇다고 하게 되었어요. 사실 그 친구가 커밍아웃을 안 했으면 저도 안 했겠죠. 그래서 그 당시에는 되게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꼈어요. 근데 아무래도 저는 이성애자들 앞에서는 절대 커밍아웃을 못 할 성격이어서... 내가 이렇게 커밍아웃을 해도 받아줄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은 있구나란 생각에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내가 이걸 숨기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숨기고 살아야 했는데... 안타깝기도 하고 되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솔직히, 커밍아웃 같은 것도 숨 쉬는 방법이 서로 다른데 나는 입으로 숨셔, 코로 숨셔 이런 거랑 비슷한 거잖아요, 근데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시선을 두려워 한다는 건 나는 입으로 숨셔 이 말을 못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숨 쉬든 상관없는 건데 사람들이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되게 짜증나요. 커밍아웃할 때 그 자리에 기독교 이성애자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그 얘기를 해줬어요. 너희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너희는 그대로 너희라서 좋다고 말을 해줬었어요. 그 얘기 들었을 땐 내가 인복이 있구나 싶었어요."

- 오프라인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반응은 어땠나요?
"사실 그 친구와 제가 되게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친구도 막 '와 우리는 이런 부분까지도 닮았구나'하고 동질감을 느꼈었어요.

- 지지하는 발언을 들어본 적 있으세요?
"오프라인 상황에서 들은 적은 없어요. 온라인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다 퀴어시니까. 지지라고 하긴 뭐하지만 퀴어프렌들리 한 말들은 많이 듣죠. 아, 앞서 언급했던 그 기독교 친구의 '너희라서 좋다'는 말도 포함할 수 있으려나요?"

#4. 학생인권조례

- 학생인권조례에 처음 관심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학생이다 보니까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학생 인권조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원래 주된 관심사가 성소수자 인권보다는 청소년 인권, 학생 인권이었는데 활동 참여하면서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죠. 다른 지역에 인권 조례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사실 그 페북 글도 대전이 아니라 타지역 얘기였어요."

- 만약 대전에도 생긴다면?
"그게 생기면 저는 앞으로 학교랑 더 열심히 싸울 것 같아요. 언제도 학교 학생부장 선생님이랑 두발 복장 문제로 싸운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찾아가서 선생님께 조곤조곤 말씀드렸었는데 그때 얘기를 하면서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적으로 구제를 잘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적 면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학칙에 관한 법이 있는데 학교에서는 그걸 무시하는 것 같았아요. 그리고 정부기관에서도 전적으로 학교 자율로 맡기는 경우를 많이 봤고. 하지만 교육청에 학생 인권 조례가 생긴다면 학교랑 얘기를 할 때도 법적인 장치 하나가 생기는 거잖아요. 지금보다 훨씬 더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 지금 대전에도 조례안이 생기긴 했지만 거센 반대 때문에 성소수자 관련 부분은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진행 중이에요. 성소수자 관련 조항이 들어간다면 어떨 거 같나요?
"제 친구랑 전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학생 인권 조례안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보호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학생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현실 속에서 성소수자 인권까지 챙기는 건 시기상조가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학생이 되고 난 후에 성소수자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성소수자들도 학생 집단에 속하니까 그 둘을 분리할 수는 없는 거고. 만약 그 둘을 분리하면 성소수자 학생은 자신의 인권을 반으로 나눠야 하는 거잖아요.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중에 챙겨줘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게 잡혀있다는 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이건 학생인권조례안을 만들 때 당연히 같이 챙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인식이 바뀌고 난 후에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바뀌었어요. 요즘엔 제도라도 만들어놓고 나서 인식을 점점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선생님들은 제도가 생기면 거기에 맞춰야만 하는 거잖아요. 선생님들이 제도에 따라서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시작할 때 인식도 변하기 시작할 때니까. 제도를 구축하고 나면 인식도 바로 설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얘기 있나요?
"사실 이 인터뷰가 뜨고 나면 되게 부끄러울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이 인터뷰를 보고 '나라는 걸 알아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렇고. 하루 빨리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에 참여한 어흑님은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 회원이다.

*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는 2015년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악 저지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정상적 성과 비정상 적 성으로 구획하여 이성애 정상성을 지원하는 시스젠더 헤테로 유성애자 중심적 사회에 저항하며, 수도권 중심으로 자원이 집중되는 수도권 중심주의에 문제의식을 갖고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대전 시민들과 행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다.


태그:#솔롱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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