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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과 성소수자라는 이중 억압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청소년 성소수자도 학교 공간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학교 공간은 학생들에게 어떤 공간인지 대전지역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의 이야기를 두 달간 연재한다. - 기자 말

"쟤 동성애자 아냐?"

동성애라는 시선, 그로 인해 첫 번째 혐오의 벽을 느꼈다.
 동성애라는 시선, 그로 인해 첫 번째 혐오의 벽을 느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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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늘 신경 쓰이던 사람이 있었다. 활짝 휘어지는 '개구진'(짓궃은) 눈매, 크게 벌린 입, 거침없는 웃음소리, 영어가 싫다며 시무룩해하는 모습, 그 사람의 행동에 온 감각이 활짝 깨어 있었다. 지금은 그 당시의 내 모습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됐지만 당시에는 이런 나의 모습에 적절한 언어를 붙이지 못했다.

그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 친구를 지수가 많이 좋아하나 보다'로 설명되고 '그렇구나' 납득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여성끼리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당시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성 간에 사랑을 나누고 함께 하는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는 얘기는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교과서에도 텔레비전에서도 교사들도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 '친구'가 아닌 다른 이름을 붙이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하지 못했기에 언어화할 수 없었다.

그저 '많이 좋아하나 보다'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들. 왜 다른 친구들은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것처럼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다른 사람들도 친구를 사귈 때 그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에 설레어 하는지, 그 사람의 마음속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또래와는 다른 것 같았다. 고데기로 말아서 어떻게든 학교 규정을 피해 머리를 길러보려는 또래들과는 다르게 교칙이 요구하는 것보다 짧게 자르고 다녔다. 층을 낸 커트머리였다. 그게 멋진 거라 생각했다. 남자연예인 얘기, 또래 남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에 끼지 못했다. 남자애들보다는 여자애들의 상기된 뺨, 가느다란 손, 지나갈 때면 코끝에 감도는 샴푸향기에 끌림을 느꼈다.

또래와 세상과 계속해서 불화를 겪었다. 중학생 때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권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듣지 않고 상담을 받게 됐다. 외부에서 사람이 왔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얘기해보라고 했다. 처음엔 서로를 탐색하며 안전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학생이 힘든 게 뭐 있어요. 시험 때문에 힘들어요." 이런 얘기들. 그리고 3주차가 되던 날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대해 얘기했다. 한 친구와 아주 먼 미래에도 함께 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늘 그 친구가 있다. 친구는 책을 좋아하니 집에 꼭 책방을 만들고 싶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하니 피아노방도 있으면 좋겠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상담선생님은 그 나이대 여자들은 한번쯤 누구나 해보는 생각이라고 얘기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말하는 것과 선생님이 말하는 것은 뭔가 달랐다.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주 먼 거리에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상담이 끝났다. 상담이 끝난 후 나는 그 선생님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막연히 나를 감싸고 있던 두려움이 실체화됐다. 상담선생님이 상담내용을 내 동의 없이 교사에게 얘기했고 교사는 부모에게 전달했다. 부모는 내가 이상한 걸 봐서 그렇다며 동네 만화책방과 비디오방에 OOO이라는 애가 오면 절대 빌려주지 말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너 때문에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며 소리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에 가면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문의 내용이 구체적인 언어로 들려왔다.

"쟤 동성애자 아냐?"

이게 내가 마주한 첫 번째 혐오의 벽이다.

여자애가 꼴이 그게 뭐냐며 화장을 시켰다

학교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껄끄러워졌다. 동네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학원에 등록하러 갔을 때는 미심쩍은 눈초리와 원생 모집 기간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고 돌아서야 했다. 다른 학생이 그 학원에 등록된 걸 보면 내가 학원에서 거절당한 이유가 단순히 원생모집기간이 아니어서만은 아닐 거다.

학교에서, 마을에서 내가 있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져갔다. 결국 뺑뺑이를 돌려서 가는 마을 고등학교가 아니라 일부러 집에서 먼 학교를 선택해서 도망갔다.

그렇게 도망간 고등학교도 안전한 공간이 되지는 못했다.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따돌림의 이유가 됐다. 왜 머리를 기르지 않는지, 화장하지 않는지, 왜 렌즈를 끼지 않고 안경을 쓰는지. 그래서 남자친구를 사귈 수는 있을지.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늘 '정상'에서 벗어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다.

같은 반 학생들이 억지로 나를 붙잡고 여자애가 꼴이 그게 뭐냐며 화장을 시켰다. 내 자리와 교실 문에 삼사십 명 되는 학생들이 무슨 일이냐고 모여들어서 환호하고 비웃어댔다. 수치스러운 와중에 여자로 만들어줬으니 감사해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장남자 같다며 에워싼 학생들이 비웃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혹시 내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지는 않았을지 나는 매일매일 벌벌 떨며 인터넷을 검색해야 했다.

교사들은 내가 어떤 위협을 받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상담을 신청했지만 "공부 잘 하려면 친구는 없어도 된다. 친구 없으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라는 답변을 들었다. 학교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이었기에 나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받아낼 수 없었다. 나는 학교에 적응하는데 실패했고 교사와 부모에게 감시와 보고의 대상이 됐다.

안전한 공간을 찾다가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알게 됐다. 그 곳에서 내가 겪은 일은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젠더 헤테로(신체적 성과 사회 문화적 성의 일치, 이성애자)만을 정상으로 여기고 사람들의 다양한 젠더표현, 성적지향을 억압하는 폭력, 인권침해의 문제로 봐야 하며, 나뿐만 아니라 많은 청소년들이 겪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타임머신은 개발되지 않았으니 15살, 17살 어렸던 나로 돌아가 덜 상처받도록 보듬어줄 수는 없고,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거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세상을 바꾸고 싶어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시작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에서 지지자를 찾지 못 하고 고립되어 있다. 2014년에 발표된 'LGBT 사회적 욕구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 623명 중 45%가 말투나 행동으로 폭언과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 자살 시도율은 46%이며 자해경험 비율은 53%로 나왔다. 이는 2011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조사 결과 청소년 자살 시도율이 4.4%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과 성소수자라는 이중 억압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학교 공간에서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조치가 절실하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성소수자도 인간이다. 어떤 이유로든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
 성소수자도 인간이다. 어떤 이유로든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
ⓒ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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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의식에서, 인권에 차등은 없으며, 학생도 인간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권리, 폭력 및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전국 곳곳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대전도 예외는 아니다. 2015년 5월 대전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목표로 네트워크를 결성하여 평일에도 주말에도 궂은 날씨에도 여러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시, 도와는 다르게 조례안에서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명시하지 않은 조례안으로 제정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조례안마저 극우 세력 및 기독교인 등의 반대로 발의 연기됐다. 극우세력 및 기독교인들은 '조례가 통과되면 아이들이 동성연애자가 되고, 수간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십 통씩 대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담당 부서로 전화해서 항의하고 공청회에서도 난동을 부려 자리를 무산시키는 몰상식한 일을 벌이고 있다.

인권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의 권리 및 지위와 자격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즉,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며, 법의 관할 지역이나 민족이나 국적 등 지역적인 변수나, 나이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것이다.

외압 때문에 넣고 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도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알려야 한다.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며 인권의 가치를 훼손하는 시도에 맞서야 한다. 더 이상은 차별받고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지역사회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 우리 공동체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차별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살피고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리수 그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나 몰라."

내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정체화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몰라. 나랑 상관없잖아. 여자로 살고 싶었나 보지. 본인이 괜찮다는데 내가 무슨 상관이야."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 당시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딴에는 차별을 내면화한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어서 쿨하게 얘기하려 했던 거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질문도 답변도 총체적으로 문제였음을 이제는 알겠다.

하리수씨가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하리수씨의 삶이기에 그 분의 삶에 타인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오롯이 그 분의 선택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하리수씨가 사회적 소수자로 겪는 차별에 눈 감아도 된다고, 나와는 상관없는 타인의 일이라, 차별과 폭력 앞에 침묵하는 걸 합리화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때 나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넘기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멈추라고 얘기했어야 했다.

'혼자인 개인은 없다.'

2016년 나의 마음에 들어온 문구다. 우리는 스스로를 홀로 선 개인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여러 사회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나 혼자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 공동체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받아온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을 외면하고 파편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문제로 보고 우리를 넓혀갈 때 비로소 차별과 혐오가 판치는 반동의 시대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와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목소리로 들리길 바라며 청소년 성소수자도 학교 공간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지금 학교 공간은 학생들에게 어떤 공간인지 대전지역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의 인터뷰를 두 달간 연재한다.

차별과 배제가 일상이 되는 현재의 교육, 학교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의 손을 잡아주길 부탁드린다. 대전지역에서 인권에 대한 논의가 꽃피길 바란다면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

이 기사를 쓰신 라라님은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 회원이다.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는 2015년 대전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악 저지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정상적 성과 비정상 적 성으로 구획하여 이성애 정상성을 지원하는 시스젠더 헤테로 유성애자 중심적 사회에 저항하며, 수도권 중심으로 자원이 집중되는 수도권 중심주의에 문제의식을 갖고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대전 시민들과 행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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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전학생인권조례, #솔롱고스, #성소수자, #청소년, #차별과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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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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