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가장 흥미로운 논쟁거리는 '최고의 클러치히터는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각자가 가장 중요한 장면을 회상하며 꺼내는 해결사들의 이름은 마치 그 상황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잘 알다시피 클러치히터는 '중요한 상황에서 타점을 올려주는 해결사'를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몇몇 숫자를 말하며 그 존재를 부정하지만, 그래도 이것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KBO에서는 한대화, 김재현, 이승엽 등이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최고의 클러치히터는 누구일까?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은 뒤로 하고, 팬그래프닷컴, 베이스볼레퍼런스 등 많은 MLB 통계 사이트들 역시 클러치 상황에서의 성적을 기록해두고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득점권 타율이다. 보통 비득점권 성적보다 득점권 성적이 우수한 타자를 '클러치히터'라고 한다. 그러나 득점권 타율은 클러치히터를 찾기 위한 첫 번째 열쇠에 불과하다. 흥미롭게도 실제 유명한 클러치히터들의 통산 득점권 성적은 통산 성적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대표적으로 데이빗 오티즈, 치퍼 존스와 같은 타자들 역시 통산 득점권과 개인 통산 OPS 간 차이는 고작 1푼 안팎에 불과하다. 따라서 클러치히터를 가려내기 위해선 좀더 많은 열쇠들이 필요하다. 2사 득점권, Late & Close(7회 이후 점수차가 없거나 적은 상황), n점차 상황 등 다양한 상황에서의 숫자들이 새로운 열쇠로 제작되었다.

팬그래프닷컴이 제공하는 세이버매트릭스 성적을 토대로 하나 둘 자물쇠를 풀어본 결과는 흥미로웠다. 가장 주목한 것은 레버리지별(상황별) 성적으로, 레버리지란 상황의 중요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로우(Low) < 미디움(Medium) < 하이(High) 순으로 중요도가 달라진다.

 하워드의 통산 성적과 레버리지 간 성적

하워드의 통산 성적과 레버리지 간 성적 ⓒ 청춘스포츠


탐색 결과, 최고의 클러치히터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거포 라이언 하워드였다. 21세기의 타자들 중, 그만큼 각 레버리지 간 성적 편차가 뚜렷한 선수는 없었다. 표에서 보듯, 그는 로우 레버리지에서 커티스 그랜더슨, 닉 스위셔 수준의 타자이지만,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는 배리 본즈보다 조금 못한 수준의 타자다.

그의 통산 OPS에 비하면,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의 OPS는 무려 0.155나 높다.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 들어선 타석 수 역시 647타석으로 적지 않다. 물론 많은 수의 샘플을 찾아보진 못했지만, 기록이 밝혀낸 최고의 클러치히터는 바로 하워드라 할 수 있다.

하워드는 부상 이후로 성적이 날로 하락세지만, 타점 페이스만큼은 크게 꺾이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최근 5년간 성적은 0.226 / 0.292 / 0.427에 불과하지만, 홈런, 타점을 162게임으로 환산하면 29홈런 99타점이나 된다. 알 수 없는 타점 페이스의 비결은 클러치 상황에서의 성적이었다.

이 외에도 알버트 푸홀스, 마크 테세이라, 카를로스 벨트란, 카를로스 페냐, 러셀 마틴, 라울 이바네즈, 헌터 펜스 등이 레버리지가 높아질수록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푸홀스는 하워드와 함께 최고의 클러치히터 자리를 두고 다퉜다. 하지만 푸홀스의 경우 통산 성적과의 갭이 그리 크지 않고, 로우 레버리지에서도 충분히 우수한 타자라는 점에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아쉬운 것은 에릭 호스머와 조시 도날드슨이다. 이들은 우선 타석 숫자가 밀려 후보에서 제외되었는데, 이 두 선수 모두 레버리지가 올라갈수록 급격한 성적 차이를 보였다. 먼저 호스머는 디디 그레고리우스가 맷 홀리데이로 변하는 정도의 차이를, 도날드슨은 앤서니 리조가 매니 라미레즈로 변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작 2010년대에 데뷔한 타자들이다. 하이 레버리지에서의 샘플도 부족하고, 이후의 커리어에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커리어를 쌓아가는 동안 이 숫자들은 어떻게 변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측 포인트일 것이다. 그들도 최고의 클러치히터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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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청춘스포츠 박윤규기자
MLB 클리지히터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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