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방송된 Mnet <신양남자쇼>. 눈치 게임에 성공한 걸스데이는 제작진으로부터 즉석 복권을 선물 받았다. 복권을 긁던 멤버들 사이, 혜리는 자신이 2000만 원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알고 흥분했다. 그리고 끝. 정말 복권이 당첨됐다면 온갖 편집 효과를 동원해 갖은 야단법석을 떨 법한 상황이었지만, 방송은 그대로 끝이 났다.

그다음은 알려진 대로다. 혜리가 복권에 당첨됐다는 기사가 쏟아졌고, 온라인은 난리가 났다. 긴가민가하던 시청자들은 "당첨된 게 맞다"는 혜리 소속사 멘트가 실린 보도까지 나오자 확신했다. 하지만 결론은 '몰카'. 혜리의 복권 당첨 소식에 떠들썩하던 반응은 급속도로 싸늘해졌다. 제작진이 녹화 당시 혜리에게 몰래카메라라는 사실을 고지하고,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담긴 비하인드 영상을 공개하며 "혼란을 드려 사과드린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대국민 몰카' 된 '혜리 몰카'

 4월 6일 방송된 Mnet <신양남자쇼> 방송화면 캡처

지난 6일 방송된 Mnet <신양남자쇼> 방송 화면 갈무리. 복권 당첨이 실제 상황인지 아닌지 알리지 않은 채 이대로 끝나버렸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 Mnet


제작진은 다음 회차에서 진실을 밝힐 예정이었다고 한다. 물론 일을 키운 것은 혜리에게 혹은 현장에 있던 스태프에게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복권 당첨 사실을 인정한 소속사 드림티엔터테인먼트다. 하지만 소속사의 인정이 아니었다 한들, 혜리의 복권 당첨 사실이 다음 방송까지 감춰질 수 있었을까? 통상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몰래카메라는, 해당 회차 안에서 몰래카메라라는 사실을 몰래카메라 피해자에게 알린다.

<신양남자쇼> 제작진 역시 해당 회차 녹화 말미에,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라고 혜리에게 알렸다. 하지만 이 몰래카메라의 또 다른 피해자는 시청자. 제작진은 혜리의 복권 당첨 여부를 일주일 동안 감춰둘 심산이었다. 혜리 소속사발 오보가 없었다 하더라도, 제작진은 시청자를 상대로 길게는 일주일, 적어도 몇 시간짜리 '대국민 몰래카메라'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다. 23년 전인, 1994년 2월 13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통해 방송된 이휘재-김애경의 대국민 몰래카메라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특별기획-이홍렬의 신년 특종'이라는 순서를 통해 이휘재와 김애경이 결혼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당시 소녀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개그맨 이휘재가 22살 연상의 배우 김애경과 결혼을 한다니. 시청자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소녀팬들 눈물 쏟게 한 23년 전 몰카

 2011년 <세바퀴>에서 다시 한 번 소개된 가짜 결혼 소동.

2011년 MBC <세바퀴>에서 다시 한 번 소개된 1994년 당시 가짜 결혼 소동. ⓒ MBC


극소수의 기자들만 초대했다는 결혼 발표 현장에서 두 사람은 '이휘재가 중학교 때부터 김애경의 팬이었다'느니, '이휘재 어머니와 김애경이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느니 '김애경이 나이가 있어 결혼하면 아이부터 갖겠다'느니 하며 연기를 이어갔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이휘재 팬들은 눈물을 쏟았고, 이를 TV로 시켜보던 시청자들도 놀라워했다. 그리고 잠시 후, MC였던 이문세는 예상치 못한 결혼 뉴스에 당혹스러워하던 시청자들을 더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모두 가짜였습니다!"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뉴스가 업데이트 되는 세상이라면 있을 수 없는 몰래카메라다. 방송에서 둘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네티즌들은 뉴스를 검색할 것이고, 1분도 되지 않아 이 내용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아날로그였기에 가능했던 몰카. 시청자들이 분노를 쏟아낸 방식도 아날로그였다.

2017년 시청자들이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신양남자쇼> 몰래카메라에 대한 불쾌함을 표현했다면, 1994년 시청자들은 일제히 수화기를 들었다. 방송 이틀 후인 1994년 2월 15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시청자들이 일제히 MBC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는데, 500대의 교환대가 있는 서울 강남의 114 안내전화에는 일제히 MBC 대표전화를 묻는 시청자 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쏟아졌고, 결국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시청자 사과 명령을 받기에 이른다. 방송위원회는 당시 사과 명령을 내리면서 "개그맨 이휘재와 탤런트 김애경의 결혼 발표 소식을 소재로 삼아 허위 방송을 하여, 혼인의 신성함 모독, 방송의 공공성 저해, 사회윤리 저해는 물론 시청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1994년 3월 14일 <한겨레> 보도)

복권 발행을 주관하는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신양남자쇼>의 몰래카메라로 인해 복권의 신뢰성이 훼손했다며 방송통신위원회 제소를 고려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혼', '혼인'의 자리에 '복권'을 넣는다면, 1994년 방송위원회의 결정문을 그대로 2017년 <신양남자쇼> 제작진에게 들려주어도 좋을 것 같다.

시청률 경쟁에 던진 무리수, 결과는 '글쎄...'

 1994년 2월 15일 <경향신문>

당시 소동을 보도한 1994년 2월 15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된 기사 갈무리. 당시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 경향신문


1994년, 오광수 <경향신문> 기자는 이휘재와 김애경의 '거짓 결혼 발표 소동'을 "지나친 시청률 경쟁으로 억지웃음을 유발하려다 빚은 소동"이라고 분석했다. 1994년, 채널이 고작 3개이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SBS가 안 나오는 지역이 여럿 있어서, 지방의 경우에는 사실상 두 개나 마찬가지였다. 2017년, 수십 개의 채널은 물론, 컴퓨터·스마트폰 등 여러 기기와도 경쟁해야 한다. 시청률 경쟁은 심화했고, 억지웃음을 유발하려는 '무리수'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예능 속 몰카의 절정은 몰카 주인공에게 이 모든 상황이 거짓이었다고 알릴 때이다. 하지만 공개된 <신양남자쇼>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복권 당첨이 몰카라는 사실을 전하는 '결정적 순간'이 어쩐지 밋밋하게 흘러간다. 굳이 일주일 텀을 두고 몰카의 진실을 공개하려던 건, 해당 장면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작진의 'MSG'였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재미가 아닌 '우롱당한 기분'과 '불쾌함'을 느꼈다. 시청률 무한 경쟁 시대에 제작진이 던진 '무리수'. 그야말로 '무리한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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