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은 따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매번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챔피언스리그 티켓만큼은 귀신같이 따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기려는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경기력은 최악이다. 이제 아스널은 챔피언스리그가 아닌 유로파리그에서 봐야 할까.

아스널이 11일(한국 시각) 오전 4시 영국 런던에 위치한 셀허스트 파크서 열린 2016·201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아래 EPL) 32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와 경기에서 0-3으로 패했다. 이로써 아스널은 승점 54점에 머무르며 6위를 유지했다. 반면 크리스탈 팰리스는 '선두' 첼시에 이어 아스널까지 잡아내면서, 강등권과 격차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절망적인 경기였다. 경기 초반 아스널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공격을 노렸지만, 효율적이지 못했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조직적인 수비 앞에서 무의미한 패스만을 남발했고, 도전적인 침투나 드리블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전반 8분 모하메드 엘레니의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이 아스널의 전반전 유일한 유효 슈팅이었다.

반면 크리스탈 팰리스의 경기력은 매우 훌륭했다. 전반 6분 루카 밀리보예비치의 예리한 중거리 슈팅으로 아스널의 골문을 위협했고, 전반 17분에는 선취골을 뽑아냈다. 요한 카바예가 윌프레드 자하에게 좋은 침투 패스를 연결했고, 자하의 낮은 크로스가 앤드로스 타운센트의 논스톱 슈팅으로 이어지며 아스널의 골망이 출렁였다.  

무너진 측면 수비, 절망에 빠진 아스널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뛰는 선수 알렉시스 산체스

영국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뛰는 선수 알렉시스 산체스 ⓒ 연합뉴스


아스널은 알렉시스 산체스가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밀집된 상대 수비진을 혼자서 뚫어내기란 매우 어려워 보였다. 산체스는 전반 20분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침투해 슈팅을 시도했지만, 힘과 정확도가 떨어졌다. 전반 23분에는 페널티박스 좌측 부근에서 수비수 한 명을 따돌린 뒤 감아 차는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대를 벗어났다.

조직적인 수비와 함께 공격으로 전환되는 빠른 속도, 적절한 간격 유지 등 크리스탈 팰리스는는 약점이 보이지 않았다. 전반 37분 크리스티안 벤테케의 슈팅이 아스널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후반 3분 자하의 돌파에 이은 정확한 크로스가 벤테케의 슈팅까지 이어지며 추가골을 기대케 했다.

후반 7분에는 타운센트가 왼쪽 측면을 무너뜨린 뒤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고, 자하의 강력한 슈팅까지 이어졌지만, 수비에 막혔다.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는 제이슨 펀천의 헤딩슛이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즈 골키퍼를 놀라게 했다. 앞서고 있음에도 물러서지 않은 크리스탈 팰리스는 후반 17분, 추가골을 터뜨렸다.

오른쪽 측면에서 볼을 잡은 자하가 낮고 빠른 크로스를 올렸고, 달려 들어온 카바예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상대 골망을 갈랐다. 자하의 정확한 패스와 카바예의 슈팅 궤적이 너무나도 훌륭했던 득점이었다. 아스널의 측면 수비는 자하의 드리블과 침투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고, 중앙 수비와 미드필드진은 우왕좌왕하며 카바예의 슈팅을 막아서지 못했다.

어떻게든 만회골을 터뜨려야 했던 아스널. 하지만 그들은 후반 21분 또 실점했다. 마르티네즈 골키퍼가 타운센트의 드리블을 막아서는 과정에서 반칙을 범했고, 페널티킥 키커로 나선 밀리보예비치의 깔끔한 킥이 골망을 가르며, 아스널은 절망 속에 빠졌다.

"Enough is enough, Wenger Out" 전 세계 아스널 팬들의 간절한 외침

'답이 없다'는 표현만큼, 이날 아스널의 상황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아스널은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빠른 역습에 측면 수비는 쉽게 뚫렸고, 중앙 수비는 달려 들어오는 상대 공격수를 계속 놓쳤다. 이날 크리스탈 팰리스의 공격 패턴이 측면 공격에 이은 크로스 혹은 후방에서 길게 넘겨주는 패스로 단순했지만, 여기에도 대응하지 못했다.

공격은 더 암울했다. '승부욕의 화신' 산체스가 어떻게든 득점을 만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의 움직임은 둔했고, 정적이었다. 공간 침투는 찾아볼 수 없었고, 어쩌다 나오는 슈팅은 정확도가 떨어졌다. 경기를 풀어줘야 했던 메수트 외질은 체력이 떨어진 것인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지, 부정확한 패스로 아쉬움을 더했다.

이날 경기의 전술이 무엇인지, 전략은 있었는지, 승리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경기 종료 후 수많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전반 초반부터 공수 간격은 심하게 벌어졌고, 조직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스널은 4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는 팀이 아닌 강등권에 처진 팀의 모습이었다.

사실 아스널의 이런 모습은 낯설지가 않다. 올 시즌 충분히 보여줬던 모습이다. 아스널은 최근 7경기에서 단 2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반면 패배는 4차례나 있었다. 최근 12경기로 보면, 4승 1무 7패를 기록하고 있다. 이전부터 변화가 필요했고, 개선이 절실했지만, 아르센 벵거 감독은 그러지 못했다.

아스널을 상대하는 팀들이 자신들의 전략을 매우 잘 알고 있음에도, 약점을 너무나도 쉽게 공략했음에도 대응하지 못했다. 승리에 대한 의지가 없는 선수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강팀이 아닌 강등 위기에 맞서 싸우는 팀에 당한 이날의 참패는, 아스널 팬들에게 절망감을 안긴다.

큰 변화가 없다면, EPL 우승 후보는커녕 평범한 팀으로 전락할 위기다. "Enough is enough, Wenger Out" 전 세계 아스널 팬들의 간절한 외침. 이제 구단 수뇌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구단의 주인은, 축구팀의 존재가 가능한 이유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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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VS 크리스탈 팰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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