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개막전 두산 대 한화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로 나가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리그 개막전 두산 대 한화 경기. 한화 김성근 감독이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로 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선수 기용 문제로 또다시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 최근 2군 선수들의 1군 선수단 합류 문제를 놓고 현장과 프런트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정규시즌이 이제 막 대장정을 시작한 가운데 벌써부터 이렇게 손발이 맞지 않아서 과연 팀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겠냐는 우려의 시각이 커지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김성근 감독이 투수진 보강을 위해 2군 투수 4명을 1군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면서부터였다. 권혁의 부상으로 왼손 불펜 요원이 부족한 한화는 2군에서 쓸 만한 투수들을 1군에 올려 감독이 직접 점검하겠다는 의도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어느 구단에서도 흔하게 벌어질수 있는 일상적인 1, 2군간 선수이동처럼 보인다.

한화에서 전권 휘두른 김성근... 올해는?

하지만 프런트의 최고 책임자인 박종훈 단장은 웬일인지 '불가'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한화 구단은 올해부터 프런트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1, 2군 운영을 분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김성근 감독은 1군 관리와 경기운영이라는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하고, 전체적인 선수단 운영이나 인사권은 전적으로 구단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최근 프런트야구가 보편화되면서 많은 구단들이 이런 식으로 현장과 프런트의 분업화를 추구하는 것이 상식이 됐다.

김 감독은 한화가 부임한 2015년부터 지난 2년간 사실상 프런트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팀운영에 대한 절대권력을 행사했다는 평가다. 1, 2군간 선수 이동 문제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김 감독은 수시로 2군 선수들을 1군에 올리는 일을 반복했는데, 항상 본인이 직접 선수들을 지도하고 관리하는 것이 선수육성에도 더 도움이 된다는 게 김 감독의 사고방식이다.

반면 개인보다 시스템을 중시하는 구단의 입장에서는 그동안은 2군 선수들을 1군에서 실제 전력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보다는 그저 '훈련만을 위한 잔류'가 많았고 이는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다. 실제 경기에는 잘 투입하지도 않으면서 1군 선수들을 상대하는 연습용이거나, 혹은 김성근 감독이 요구하는 훈련량과 주관적인 지도방식(투구폼, 타격폼)을 일방적으로 따라가다가 선수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김 감독의 방식대로 운영된 지난 2년간 한화가 기대만큼 좋은 팀 성적을 올렸거나, 그렇다고 활발한 세대교체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밝아진 것도 아니었다.

한화 구단은 올해부터 체계적인 내부 '육성'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내세우며 기존의 김성근 방식에서 탈피할 것을 분명히 예고했다. 박 단장의 결정은 선수단 운용의 시스템과 원칙 수립 차원에서 김성근 감독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양측의 입장 차이보다 그 사이에서 깊어지는 감정의 골이다. 김성근 감독과 한화 구단의 입장 모두 좋게 보면 팀의 발전을 위한 선의였다고도 할수 있다. 어느 구단, 어느 조직이건 동일한 사안을 놓고 이견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유독 한화에서만 크고 작은 사안을 가리지 않고 현장과 프런트의 충돌이 공공연하게 계속되고 있으며 서로의 입장을 좁히려는 소통의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김성근 감독과 박종훈 단장간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박 단장이 부임하면서 김 감독과의 관계는 끊임없이 삐걱거렸다. 애초에 경기인 출신 박 단장의 등장 부터가 프런트의 권한 강화와 김 감독의 입지 축소를 전제로 한 것이기에 불가피한 충돌이었다.

박 단장은 부임과 동시에 김 감독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상열, 이홍범 코치를 선수단 관리 소홀 문제로 해임하는가 하면, 올해 2일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는 박 단장의 훈련참관 문제를 놓고 김 감독과 언성을 높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FA와 외국인 선수 영입 문제를 놓고도 두 사람은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이견을 노출하는가 하면, 김 감독이 언론을 통하여 박 단장과 구단의 행보를 공공연하게 비판하는 일이 반복되기도 했다.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김성근, 예고된 수순 밟나

사실 이러한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한화가 앞으로 추구하는 노선이 프런트 중심의 야구라는 것은 명확한데 정작 지난 겨울 프런트 야구와는 가장 상극이라고 할 만한 김성근 감독을 그대로 유임시킨 것부터가 난센스였다.

김 감독은 평생을 '야구는 감독이 한다'는 신념을 금과옥조처럼 지켜온 인물이다. 그의 뇌구조 속에서 프런트의 역할론이란 과거나 지금이나 배후에서 현장이 요구하는 대로 지원만 충실히 해주는 것이고, 야구단 운영의 전반적인 주도권은 현장, 더 정확히 말하면 감독이 모든 전권을 휘둘러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프런트 야구가 보편화된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단장이 시즌중에도 현장에서 감독과 팀 운영에 관한 방침을 수시로 공유하고, 선수단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은 김 감독의 야구관을 기준으로 보면 모조리 프런트의 월권이나 간섭이 되어버린다. 김 감독은 과거 SK나 LG 시절에도 프런트와 끊임없이 충돌을 거듭하다가 끝내 경질된 전력이 화려하다.

김 감독은 이런 과거를 항상 '소신이나 원칙을 지키려다가 구단으로부터 버림받은 리더'라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합리화하곤 했지만, 구단 입장에서 봤을때는 조직을 함께 이끌어가야 할 파트너로서 프런트의 입장과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는 불통의 독불장군일 뿐이었다. 김 감독은 자신을 버린 구단에 대해서는 이후로도 공공연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등 '뒤끝'도 항상 좋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한화에서도 김 감독은 2011년 SK에서의 임기 말과 섬뜩할 만큼 비슷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한화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도 엄밀히 말해 김성근 vs. 박종훈의 개인적 갈등이라기보다는, 김성근과 vs. 한화 구단간의 필연적 대립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가령 이번 한화 사태만 놓고봐도 감독과 단장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 몇마디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갈등을 빚을 만한 일도 아니었다. 구단이 이미 현장과 프런트의 권한을 분명하게 구분해놓은 상황에서, 감독이 프런트의 책임자인 단장에게 이해를 구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거나 사리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 스프링캠프 이후 한화의 감독과 단장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리는 바가 없다. 애초에 공존이 불가능한 야구관을 지닌 감독과 구단간의 쓸모 없는 기싸움으로 인하여 온전히 시즌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선수단만 중간에서 멍들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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