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오승환이 9회말 등판해 손에 송진가루를 묻히고 있다.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오승환이 9회말 등판해 손에 송진가루를 묻히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야구가 다시 한번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때문에 울고 웃었다. 대표팀 발탁 여부를 놓고 그 어느 때보다 말이 많았지만, 결국 오승환은 이번 대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완수해내며 야구대표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냈다.

오승환은 지난 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만과의 예선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9회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투수가 됐다. 8-8로 팽팽하게 맞선 9회말 무사 2루에서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안타 하나만 허용해도 경기가 그대로 끝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지만 탈삼진 2개와 외야 뜬공 하나를 주자의 진루를 막아내며 한국을 벼랑 끝에서 구해냈다.

이어 한국은 연장 10회초 양의지의 희생플라이와 김태균의 투런 홈런으로 11-8로 다시 앞서나가자 10회말에도 다시 등판하여 아웃카운트 세 개로 깔끔하게 막아내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날 기록은 2이닝 무피안타 3탈삼진이었다.

오승환은 지난 이스라엘과의 1차전에서도 8회 2사 만루의 위기에 구원등판하여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호투한 바 있다. 비록 한국이 이스라엘에 연장접전 끝에 1-2로 패하며 오승환의 역투는 빛이 바랬지만 대표팀이 기대한 수호신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셈이었다. 대회 전체 기록은 1승 3.2이닝 1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이다.  

오승환 발탁, 합리화될 수 있을까

오승환은 이번 대표팀 구성 당시부터 가장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었던 선수였다. 실력이야 처음부터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2015년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 징계를 모두 이수하지 않은 것이 논란의 여지로 작용했다. 오승환은 법원으로부터 유죄가 선고되어 벌금형을 받았지만, KBO로부터 받은 72경기 출전정지의 징계는 현재 해외 소속팀에서 뛰고있는 상황이라 후일로 미뤄졌다.

많은 야구팬들은 명백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아직 그 책임도 다 완료하지 못한 선수가 국가대표로 뛸 자격이 있느냐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당초 여론을 의식하여 오승환을 1차 명단에서 제외했다가 팀 사정을 이유로 다시 말을 바꾼 것도 더 큰 논란을 자초했다. 야구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게 갈렸다. 국제대회의 성적지상주의라는 명분과, 국가대표로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과 신뢰를 저버려도 되느냐는 원칙론 사이에서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긍정적으로 봤을때 오승환의 발탁은 온전히 야구 자체만으로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인식 감독은 오승환이 없으면 불펜진에 계산이 서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결과적으로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대만전에 오승환이 없었다면 한국은 연장전까지 가지도 못하고 3전 전패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 선발과 불펜을 통틀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투수가 거의 없었던 한국대표팀 마운드에서 유독  차원이 다른 활약을 펼친 오승환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빛과 소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승환의 발탁이 과연 합리화될수 있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다. 애초에 많은 이들이 지적했던 부분도 오승환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이 아니라, 국가대표의 자격과 원칙에 관한 문제였다. 실력만 있다고 다른 모든 과정과 절차가 무시되어도 상관없다면 음주운전을 일으킨 강정호도 대표팀에 포함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오승환을 발탁하고도 대표팀은 정작 결과적으로 1라운드 탈락이라는 수모를 피하지못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물론 오승환 자체는 충분히 잘했지만 전체적으로 대표팀 선발의 기준과 원칙을 흔드는 모순을 남겼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번 대회의 활약으로 오승환을 둘러싼 그간의 논란이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장기적으로는 자칫 나쁜 선례로 남을수도 있기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대목이다.

그래도 오승환 앞에 할 말은 없다

어쩌면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번 대표팀에 오승환보다 실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준비된 투수'가 없었다는 씁쓸한 현실이었다. 이번 대표팀 유일의 메이저리거였던 오승환은 소속팀의 스프링캠프와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일정을 소화하느라 대표팀에는 뒤늦게 합류했고 시차 적응이나 평가전을 통해 컨디션을 끌어올릴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반면 국내파 선수들은 오키나와 전훈 때부터 일찌감치 소집되어 함께 손발을 맞춰왔음에도 정작 WBC 본 대회 개막 때까지 제 컨디션을 회복한 선수들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오승환의 도박 공범이자 대표팀 최고참 투수라는 임창용은 전지훈련 기간에 무면허 운전으로 사고를 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임하는 선수들의 정신자세와 동기부여가 안이했다는 의구심을 피할수 없다.

냉정히 말하면 오승환은 이번 WBC 참여로 얻는 득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여론도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오승환으로는 귀하신 몸 대우를 받는 현 소속팀에서 조용히 다음 시즌 준비에나 전념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는 훨씬 이득이었다. 실제로 오승환을 제외한 다른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은 이번 WBC에 모두 불참했다. 하지만 오승환은 욕 먹을 것을 감수하면서도 김인식 감독과 국가대표팀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태극마크에 대한 진정성을 증명했다. 오승환이 진정으로 박수받아야 할 부분은 바로 그러한 국가대표로서의 준비된 자세였을 것이다.

이번 WBC 1라운드는 사상 최초로 한국에서 치러졌음에도 국내파 투수들과 해외에서 뛰다온 오승환간의 컨디션과 집중력 차이가 육안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병역혜택같은 동기 부여 요소가 없었다거나, 시즌 개막 전에서 열리는 대회여서 컨디션 조절이 어려웠다는 변명은 말 그대로 오승환 앞에서는 핑계에 불과했다. 단지 '메이저리거와 KBO리거의  수준 차이'라고 하기전에, 명색이 프로라면서 자기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국내 고액 연봉자들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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