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에 앞서 김인식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에 앞서 김인식 감독이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최악 중의 최악'은 그나마 피했다. 하지만 끝까지 개운치 못한 졸전이었다. 한국이 대만을 꺾고 최종전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지난 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조별리그 3차전 대만전에서 10회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11-8로 승리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1승 2패를 기록하며 3패에 그친 대만을 따돌리고 3위로 최종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미 2연패로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만난 두 팀의 대결은 동기부여를 잃은 싱거운 대결이 되리라는 예상을 깨고 불꽃을 튀겼다. 한국은 홈에서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지키기 위하여 이를 악물었고, 그간 WBC에서 한국을 상대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대만 역시 이번만큼은 설욕을 다짐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한국은 이날 감기 몸살로 3번을 맡던 김태균이 선발에서 제외되고 최형우가 지명타자 겸 7번타자로 들어오는 등 지난 2경기보다 선발 라인업과 타순에 변화를 줬다. 한국은 그동안 침묵하던  타선이 대만전에서는 초반 활발하게 터지며 경기를 주도했다. 1회부터 선두타자 민병헌의 2루타에 이어 박석민의 적시타로 1차전 이후 이어온 14이닝 연속 무득점의 고리를 끊어냈다.

기세를 탄 한국은 2회초 들어 이번 대회 첫 빅 이닝을 만들어냈다. 1사 만루의 기회에서 9번 서건창이 2타점 적시 2루타가 터졌고, 민병헌의 희생플라이와 이용규의 우전 적시타, 손아섭의 내야안타가 이어지며 대거 5점을 뽑아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만을 상대로는 무난하게 낙승을 거둘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곧이어 시작된 대만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2회말 1사 1, 2루에서 천용지의 내야 땅볼 때 첫 득점에 성공한 대만은 이어진 만루의 기회에서 리드오프 후친롱이 한국 선발 양현종에게 우전 적시타로 2타점을 뽑아내며 6-3으로 따라붙었다.

한국은 4회 이대호의 적시타와 손아섭의 희생플라이로 2점을 추가하며 점수를 벌렸지만 이후 5이닝 동안 추가점을 더 이상 뽑아내지 못했다. 대만은 실점 후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며 4회말 린저슈엔이 한국의 두 번째 투수 심창민을 공략하여 2점 홈런으로 다시 따라붙었다. 차우찬이 6회 2사 1, 2루에선 후친롱과 쟝즈하오에게 연속 적시타를 허용하며 한 점차까지 쫓겼고, 7회에는 장시환이 2사후 천용지에게 중전 적시타를 내주며 끝내 승부는 8-8 원점으로 돌아갔다.

9회초 2사 만루에서 초구를 노린 이용규가 플라이 아웃에 그치며 득점에 실패한 한국은 곧이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9회말 등판한 이현승이 선두타자 쟝즈시엔에게 초구에 2루타를 맞으며 끝내기 위기에 몰렸다. 한국 벤치는 곧바로 마무리 오승환을 투입했다. 다행히 오승환은 1이닝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로 실점을 막아냈다.

답답하던 한국의 공격은 연장 10회초 다시 물꼬를 텄다. 1사 후 오재원-손아섭의 연속 안타로 1, 3루 찬스에서 양의지가 희생플라이로 천금같은 1점을 추가하며 승부의  균형이 다시 깨졌다. 이어 대타로 나선 김태균이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포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김태균의 이번 WBC 첫 안타이자 한국의 대회 첫 홈런이기도 했다.

한국은 오승환이 10회에도 등판하여 세 타자를 깔끔하게 아웃으로 막아내며 승리투수가 됐다. 한국은 이로서 대만과의 WBC 역대 맞대결에서 4전 전승을 거두며 자존심을 지켰다.

비록 시원한 낙승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경기에서만큼은 팬들에게 승리를 선물하기 위하여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투혼을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WBC 기간 내내 지목된 대표팀의 한계와 불안요소들이 여전히 반복된 경기이기도 했다.

지난 2차례의 경기에서 총 1득점에 그쳤던 타선이 오랜만에 11점을 쏟아냈다. 하지만 A조 최약체로 꼽힌 대만의 투수력이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큰 의미를 두기는 힘들다. 오히려 한국은 이날도 추가득점을 올릴수 있는 찬스를 번번이 놓치며 연장까지 경기를 어렵게 끌고가는 빌미가 됐다. 10회 연속 안타와 히트 앤드 런으로 결승점의 물꼬를 튼 오재원-손아섭 듀오의 활약은 이번 대회 한국이 사실상 유일하게 '작전야구'를 통하여 중요한 득점에 성공한 장면이었다.

더 큰 문제는 마운드였다. 선발 양현종이 3이닝간 총 58개의 공을 던져 5피안타 6탈삼진 3실점으로 다소 아쉬운 투구를 보였다. 실점 상황에서는 야수들의 수비에서도 아쉬움이 있었지만 양현종의 이름값에는 못 미치는 투구내용이었다.

4회부터 연이어 불펜투수들을 총동원하는 '벌떼야구'로 맞섰지만 심창민-차우찬-장시환 등 나오는 투수마다 실점을 피하지 못하며 대만의 공격흐름을 끊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9회 무사 2루 위기에 등판하여 2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오승환만이 제몫을 다했을 뿐 한국의 투수력은 1라운드 내내 상대 타선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형 선발 부재와 세대교체 실패라는 한국야구의 구조적인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장면이었다.

김인식 감독에게는 이날 대만전이 사실상 국가대표 고별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비록 이미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은 끝까지 분발하며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을 위하여 헌신해온 노감독의 고별무대를 승리로 장식했다. 화려한 정상에서의 퇴장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김 감독은 박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이번 WBC가 한국야구가 남긴 상처와 과제는 이제 후배들이 극복해 나가야 할 새로운 도전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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