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김태균이 10회초 2사 1루에서 왼쪽 펜스를 넘는 2점짜리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김태균이 10회초 2사 1루에서 왼쪽 펜스를 넘는 2점짜리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 연합뉴스


많은 야구팬들을 실망 시켰던 김인식호가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 대표팀은 지난 9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제4회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 대만과의 A조 3번째 경기에서 11-8로 승리했다.  한국 타선은 병살타 5개, 득점권 타율 .083, 잔루 16개에 허덕이던 지난 2경기의 아쉬움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선발 타자 전원 안타를 포함해 18안타를 몰아치며 대만 마운드를 두들겼다.

2패 뒤 1승을 올린 한국은 A조 3위로 대회 일정을 모두 마감했다. 물론 한국의 높은 세계랭킹(3위)과 홈에서 치른 경기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만족스런 결과였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만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2021년 제5회 WBC에서 예선 라운드를 거쳐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대회가 열리는 전 해에 치러지는 예선라운드는 일정도 매우 고약하다).

초반 리드 못지키고 동점 허용했다가 연장전 4안타 3득점 폭발

이스라엘이 네덜란드까지 잡았다. 물론 네덜란드가 2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상황이라 총력전을 펼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국 입장에서는 생각할수록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만약 전날 대만이 네덜란드에게 역전패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바라는 단 하나의 마지막 '경우의 수'를 향해 시나리오가 진행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과 대만은 2라운드 진출이 아닌 예선라운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단두대 매치를 벌이게 됐다. 한국은 등 부분의 담 증세로 8일 응급실 신세까지 졌던 김태균(한화 이글스)이 라인업에서 빠지고 최형우(KIA 타이거즈)가 7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대만의 선발로 등판한 좌완 천관위에 대비해 좌익수 민병헌(두산 베어스)을 1번에 전진 배치했다.

한국은 1회초 공격부터 민병헌의 2루타와 박석민(NC다이노스)의 적시타를 묶어 가볍게 1점을 선취했다.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 2회에는 하위 타선이 폭발했다. 한국은 2회초 공격에서 양의지(두산), 최형우의 연속 안타와 김하성(넥센 히어로즈)의 볼넷으로 만든 1사 만루 기회에서 서건창(넥센)의 2루타와 민병헌의 희생플라이, 이용규(한화), 손아섭(롯데 자이언츠)의 적시타를 묶어 대거 5점을 추가했다.

대만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대만은 2회말 공격에서 2사 후 천용지의 땅볼과 후진롱의 우전 적시타를 묶어 3점을 추격했다. 대만은 1사 후 2개의 빚 맞은 안타가 나오면서 운이 따랐고 양현종 입장에서는 9번타자 린저슈엔을 상대로 1-2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몸 맞는 공을 허용한 것이 아쉬웠다. 한국과 대만은 4회에도 나란히 2점을 주고 받으며 팽팽한 타격전을 이어갔다.

한국은 5회부터 차우찬(LG 트윈스)을 마운드에 올렸지만 리그에서 가장 비싼 투수 역시 마운드를 안정시키진 못했다. 대만은 6회말 2사 후 후진롱과 장즈하오의 적시타가 터지며 7-8까지 추격했고 7회말 천용지가 장시환(kt 위즈)을 상대로 동점적시타를 터트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초반 6-0 리드가 허무하게 날아간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연장전 폭발로 승리까지 내주진 않았다. 9회말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투입해 무사2루의 위기를 넘긴 한국은 연장10회초 오재원(두산), 손아섭의 안타로 만든 1사 1, 3루 기회에서 양의지의 희생플라이로 결승점을 뽑았다. 한국은 이어진 2사 1루에서 대타 김태균이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고 10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오승환은 대만의 세 타자를 가볍게 막아내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가장 구위 좋은 양현종을 아낄 필요가 있었을까

 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김인식 감독이 9회초 8-8 동점 상황에서 선동열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서울라운드 한국 대 대만 경기. 김인식 감독이 9회초 8-8 동점 상황에서 선동열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이스라엘과의 개막전에서 선발 등판했던 장원준(두산)은 30대를 넘어가면서 구위보다는 타자들과의 수 싸움과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 초반에 다소 흔들리는 약점을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전에서도 2회 지나치게 신중한 투구로 일관하다가 볼넷3개를 허용하며 선취점을 내주고 말았다. 네덜란드전 선발 투수였던 우규민(삼성)은 애초에 네덜란드의 강타선을 상대할 구위가 없었다.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대표팀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선발 투수 양현종을 중요한 두 경기에서 활용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양현종은 대만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동안 58개의 공을 던지며 5개의 안타를 맞고 3점을 내주긴 했지만 삼진 6개를 잡아내며 대만 타선을 힘으로 압도했다. 특히 대만의 국민타자 린즈셩은 양현종에게 두 타석 연속 삼진으로 물러났다.

그 동안 많은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붙박이 1번타자로 활약했던 이용규는 이번 대회 처음 2경기에서 6타수 1안타에 그치며 부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만전에서 멀티히트와 함께 3출루 1타점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이스라엘전과 네덜란드전에서 7타수 무안타에 그쳤던 김태균도 대만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대타 홈런을 터트리며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올해 친정 롯데로 복귀한 대표팀 최고령 선수 이대호의 투혼도 돋보였다. 앞선 두 경기에서 9타수 1안타(타율 .111)에 그쳤던 이대호는 이날 2회 두 번째 타석에서 판웨이룬의 투구에 머리를 맞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하지만 의연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1루로 뛰어나갔고 4회 다음 타석에서 1타점 짜리 적시 2루타를 때려냈다.

한국 야구는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숙제를 남겼다. 무엇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 준우승 세대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아무리 시즌을 앞두고 열리는 '당근'이 적은 대회라곤 하지만 WBC에 출전한 이상 나라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도 새롭게 다져야 한다. 부디 이번 대회의 실패가 한국야구 세대교체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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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한국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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