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 9회초 2사 1루에서 박석민이 삼진 아웃을 당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 9회초 2사 1루에서 박석민이 삼진 아웃을 당하고 있다. ⓒ 연합뉴스


끝내 기적은 없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결국 안방에서 1라운드 탈락 직전으로 몰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은 지난 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펼쳐진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A조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5로 패했다.

하루 전(6일) 이스라엘과 연장 10회 승부 끝에 1-2로 석패했던 한국은 이날 패배로 1라운드 전적 2연패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스라엘이 대만을 꺾고 2연승을 달린 가운데, 네덜란드가 8일 대만전을 승리할 경우 한국은 남은 대만과의 최종전 결과와 상관없이 탈락이 확정된다.

이번에도 한국과 네덜란드 '오대영' 악연

한국과 네덜란드가 '오대영'을 둘러싼 악연을 되풀이했다는 점에서도 아이러니하다. 한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축구 본선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와 한 조에 배정되어 0-5의 참패를 당한바 있다. 이때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히딩크 감독은 훗날 대한민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고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를 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을 맡을 초창기만 해도 평가전에서 프랑스, 체코 등 강호들에게 0-5 패배를 거듭하며 '오대영' 감독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한국은 축구에 이어 야구에서도 네덜란드에게 굴욕을 당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끌었던 2013년 3회 WBC에서 네덜란드와의 1차전에서 0-5로 패한 한국은 사상 첫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한 바 있다. 4년 만의 리턴매치에서 내심 설욕을 노렸지만 메이저리거들이 주축을 이룬 네덜란드는 더 이상 복병이 아니었다.

2013년만 하더라도 한국의 패배가 '이변'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네덜란드는 자타공인 A조 최강 팀이었고 한국과의 전력차는 4년전보다 훨씬 더 벌어져 있었다. 차라리 지난 번에 방심해서 당했다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일찌감치 정신을 바짝차리고 준비했음에도 오히려 더 무기력한 완패를 당했다. '실력차'라는 세 글자로 모든 것이 요약되는 한 판이었다.

네덜란드 전을 반드시 이겨야 했던 김인식 감독은 이날 사이드암 우규민을 선발로 내세우고 하위타선에서 김재호-양의지-허경민 대신 김하성-김태군-박석민을 투입하는 변화를 줬다. 특별한 승부수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전에서 부상과 컨디션 난조를 드러냈던 선수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변화에 가까웠다.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린 한국에 비해 네덜란드는 첫 경기임에도 몸 상태가 가벼워보였다. 네덜란드는 1회 시작과 동시에 선발 우규민을 상대로 내리 3안타를 뽑아내며 가볍게 2점을 선취했다. 안드렐톤 시몬스의 안타에 이은 주릭스 프로파의 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2회엔 안타와 포수 실책으로 맞은 2사 3루에서 시몬스가 좌선상 2루타를 때려 한 점을 더 보태며 한국을 더욱 초조하게 했다. 우규민은 3.2이닝(투구수 63개) 동안 삼진 3개를 낚았으나 6안타를 얻어맞고 3실점하며 무너졌다. 두 번째 투수로 투입된 원종현이 6회 2사까지 잡고도 디센코 리카르도의 안타와 랜돌프 오드보에게 2점 쐐기포로 점수차가 0-5까지 벌어지며 사실상 추격의 희망은 꺾였다.

네덜란드 타자들이 2사 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한 반면 한국은 타선의 극심한 연계능력 부족을 드러내며 이스라엘 전의 악몽을 반복했다. 한국은 이날 네덜란드에 6안타를 뽑아낼 동안 득점권 진루는 고작 2번에 불과했다. 그래도 2회 무사 1루, 3회 1사 1·2루, 5회 무사 2루 등 한국도 최소한 득점을 만회할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비마다 병살타(3개)등 후속타 불발로 기회를 날렸다. KBO에서 활약한 경험이 있는 네덜란드 선발 릭 밴덴헐크는 이날 4이닝(투구수 62개)을 3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위력을 뽐냈다.

한국 타선은 이스라엘전을 포함하여 2경기에서 단 1점을 뽑는 데 그쳤다. 대표팀의 3, 4번 중심타선을 책임진 김태균-이대호는 2경기 합계 17타수 1안타라는 빈공에 허덕이며 전혀 활로를 열어주지 못했다. 테이블세터진도 이스라엘 전에서는 서건창이 활약했으나 이용규가 침묵했다면, 네덜란드전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는 등 엇박자가 심했다. 타선이 계속 부진한 상황에서도 벤치에서 별다른 반전 카드조차 없어서 네덜란드전 9회 2사가 되어서야 최형우가 첫 대타로 출전하여 WBC 데뷔 타석을 가졌지만 경기는 이미 한참 기운 뒤였다.

단순한 1패 이상... 한국 야구 거품론 현실화 되나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 9회 초 한국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마지막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 9회 초 한국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마지막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야구는 이날 완패로 단순한 1패 이상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미 WBC 개막 전부터 제기되었던 한국야구의 '거품론'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미 한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메이저리거 야수들과 KBO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불참하며 최약체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물론 이들이 모두 포함되었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팀도 저마다 크고 작은 전력 누수가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대표선수들도 KBO리그를 통해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들이고 불참한 메이저리거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 실력 차이가 절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네덜란드 전을 보면 과연 불참한 선수들이 모두 포함되었더라도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상대와의 격차가 벌어진 상태였다.

또 원천적으로 합류가 불가능했던 선수는 논외로 하더라도, 과연 대표팀이 차출가능한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는지는 의문부호가 남는다. 김인식 감독은 단기전에서 경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지만 정작 김 감독이 '믿음의 야구'를 고집하며 신뢰했던 이대호, 김태균, 이용규, 임창용 등 베테랑 선수들의 동반 부진은 국제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었다. 평가전까지만 해도 중심타선에 꾸준히 기용되던 최형우는 고작 대타로 한 타석에 나서는 데 그쳤다. 이들이 KBO리그에서 받는 어마어마한 몸값을 생각하면 거품이 심하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오히려 최정, 김세현, 유희관, 김재환 등 KBO리그에서 최근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을 외면하고, 이대은이나 임창용, 오재원, 양의지 등 컨디션에 의문부호가 붙거나 잔부상에 시달리던 선수들을 억지로 데려가며 가뜩이나 빈곤한 대표팀의 선수 활용폭을 더욱 좁히는 부작용을 불러왔다.

단기전에서 타격감이나 부상 등 변수가 많다는 것도 어차피 다른  팀과 동일한 조건이었다. 오히려 한국은 사상 최초로 홈에서 열리는 1라운드였던 만큼 시차나 환경에 대한 적응 문제가 필요없다는 이점까지 안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유리한 조건을 전혀 살리지 못하는 답답한 '고구마 야구'를 펼쳤다.

결국 미래를 내다보는 변화나 혁신 의지없이 이번에도 기존의 성공 모델에만 안주하려는 안일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셈이다. 항상 큰 참사를 겪고 나서야 뒤늦게 반성을 운운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야구대표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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