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힘찬 시구와 함께 제 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2대 1로 패배를 기록했다. 강팀에게 당한 패배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을 터인데, 그 상대가 야구와는 익숙하지 않은 이스라엘이라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본국인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예선 경기를 가볍게 이기고, 예선 탈락했던 지난 3회 대회에서의 수모를 되갚아 줄 준비를 했던 대표팀에게는 청천병력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대표팀 선수 개개인은 대부분 이스라엘 국적이 아니다. WBC를 개최하는 목적 중 하나는 '야구의 세계화'이고, 이를 위해 모든 선수들은 자신의 조부모의 조국까지 선택하여 소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에 따라 자신의 부모 혹은 조부모의 국적이 이스라엘인 선수들이 대거 모였고, 결국 이들은 국적이 아닌 피로 뭉치게 되었다.

WBC 개막전이 열린 고척 스카이돔 1만 7천여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WBC 서울라운드가 개막되었다.

▲ WBC 개막전이 열린 고척 스카이돔 1만 7천여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WBC 서울라운드가 개막되었다. ⓒ 서원종


현재 WBSC 랭킹 43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당연히 지난 2015년 개최된 프리미어 12에 참가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번 WBC 대회는 이들에게 팀 첫 출전이다. 오랫동안 야구 변방으로 남아 있었던 이스라엘이 대회의 특성을 잘 이용하여 미국 내 유대인 계열 선수들을 모두 소집한 것이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이스라엘은 단기간에 조성된 '급조된' 팀이었다. 팀으로서의 융합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팀이었던 것이다.

총체적 난국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현실적 목표는 1승?

개막 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한국이 비등하게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팀으로 분류되었다. 선발 투수로 지명되었던 마퀴 선수 역시 제아무리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더라도 2015년 방출된 선수였기에, 선취점을 쉽게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언론은 매일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퀴는 조심해야 할 투수'라고 경고했으나, 팬들은 대표팀이 패배할 것을 대비한 기사라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언론의 말이 맞았다. 예선전에서 선발 투수의 투구수를 65개로 제한한다는 대회 규정상, 마퀴는 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불리는 장원준은 4이닝 동안 1실점을 기록하였다. 호투한 것으로 보이지만, 유일한 실점이 밀어내기로 기록된 실점임을 감안하면 아주 잘했다고 할 수도 없는 기록이다. 이날 대한민국 대표팀이 기록한 사사구는 9개로, 그 중 6개가 불펜 투수에게서 나왔다.

풀릴듯하면서 풀리지 않는 타선도 문제였다. 평가전 동안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한 최형우 대신 이대호를 4번 타자로 기용한 대표팀은 타선의 변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이대호 본인은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거포로 통하는 김태균 역시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제 할 일을 못하였다는 평가이다. 서건창과 손아섭, 민병헌만이 2안타씩으로 빛바랜 멀티히트를 추가했다.

관중석을 꽉 채운 관중들 한국 대표팀은 일방적인 응원을 받았지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 관중석을 꽉 채운 관중들 한국 대표팀은 일방적인 응원을 받았지만,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다. ⓒ 서원종


불펜 역시 효율적인 운용을 하지 못했다. 심창민, 차우찬, 원종현, 이현승, 임창민, 오승환, 임창용의 총 7명의 불펜을 소진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앞으로의 경기에서 투수운용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다른 대회와는 다르게 투구수 규정이 존재하는 WBC에서 투수 운용과 불펜 운용은 다른 무엇보다 훨씬 중요하다.

대다수의 불펜이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제대로 넣지도 못하는 소극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 주었다. 투구수가 중요한 대회에서 스트라이크를 넣지 못하여 투구수를 아낄 수 없다면, 그 경기는 방법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오승환만은 자신이 옛 KBO리그의 끝판왕임을 부각이라도 하듯, 구원등판한 1과 1/3이닝간 3삼진으로 위용을 과시했다. 오승환이 국가대표에 소집되지 않았더라면 오늘 경기는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오늘 경기로 인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에게 일방적 응원을 펼치던 1만 7천여 명의 관중들이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던 야구변방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직후 야구팬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담담한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한 팬은 "그동안 100억이 넘는 돈을 받아 가며 야구를 했던 사람들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라며 한국 야구대표팀에 대한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제 아무리 역대 대표팀 전력 중 가장 약하다고는 하지만, 첫 경기에 최약체로 분류되던 이스라엘에게 진 것을 팬들은 쉽사리 믿기 힘든 모양이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일정에 있다. 오늘 경기로 많은 체력을 소비한 대표팀은 당장 내일 사실상 조 최강으로 분류되는 네덜란드와 경기를 해야 한다. 불펜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치르는 경기인 만큼 승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오늘 보여주었던 경기력대로라면, 대만전 승리 역시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볼 수 있었듯, 대만은 한국 대표팀보다 객관적인 약체로 분류되지만 우리가 쉽사리 이기지 못하였던 팀이다.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단기전 싸움에서 오늘과 같이 태업에 가까운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은 승리에 대한 포기, 팬들에 대한 기만이자 국가대표 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예선 탈락의 수모를 맛봤던 제 3회 WBC와 이번 대회는 차원이 다르다. 3회 대회는 비록 예선탈락했으나 먼 땅 대만에서 경기가 이루어졌기에 국민들이 느끼는 실망감과 상실감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최지인 서울에서 탈락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상실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번 대회의 결과에 따라 KBO리그에 불황이 닥칠 수도 있는 현실이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10회말 2아웃 볼카운트 2-2 타자 이대호의 마지막 힘없는 스윙은 온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화끈한 승리도 있겠지만, 두려움 없고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국가대표'로서 보여주는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요소 중 하나이다. 최약체라서 질 수는 있겠지만, 최약체이기 때문에 지는 것은 국내 팬들에게 용납될 수 없다. 앞으로 남은 2경기 혹은 그 이상의 경기에서, 최약체이더라도 더 화끈한 경기를 보여줄 것을 팬들은 기대하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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