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조 1차전 FC 서울과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상하이 선수들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조 1차전 FC 서울과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상하이 선수들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 이근승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꽤 익숙하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월드컵과 올림픽이 찾아오면 반드시 한 번쯤은 들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언뜻 보면 최선을 다한 이들을 격려하는 따뜻한 말 같지만, 있는 힘을 다해 싸웠음에도 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씁쓸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

FC 서울이 2017년의 시작을 알린 날, '졌지만 잘 싸웠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지난 21일 추운 날씨와 평일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무려 1만8764명의 축구팬이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아 2017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의 시작을 함께 했지만, 서울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서울이 결과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밀린 것은 아니었다. 고요한과 주세종, 오스마르가 나선 중원은 상하이 상강 미드필드진보다 한 수 위의 볼 배급, 탈압박 능력을 선보이며 서울이 주도권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고요한은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격에서는 연계와 적극적인 침투, 수비에서는 커팅과 도움 수비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이적생 듀오' 이상호와 신광훈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전반전 우측면을 지배했다. 이상호는 중국 선수들과 일대일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고, 신광훈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은 상하이의 수비 부담을 더 해줬다. 이들은 수비에서도 서로 협력하면서, 헐크와 오스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상대의 빠른 역습에 잘 대응했다.

반면 상하이에서는 헐크만 눈에 들어왔다. 이날 헐크는 상하이 공격의 전술이자 전부였다. 헐크는 볼을 잡으면 패스보다는 드리블에 이은 슈팅을 노렸고, 오로지 개인 능력을 활용해서만 기회를 만들려 했다.

그와 함께 상하이 공격을 이끈 엘케슨과 오스카, 우레이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내보이지 못했다. 특히 오스카는 서울 미드필드진의 강한 압박과 협력 수비 앞에 너무나도 무기력했다. 전진 패스는 끊기기 일쑤였고, 드리블도 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하이는 서울의 홈구장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승점 3점을 챙겼다. 상하이 공격의 전부였던 헐크의 강력한 왼발 중거리 슈팅 한방이 승부를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슈팅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했던 서울 수비진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득점을 기록한 헐크가 정말 대단했다.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조 1차전 FC 서울과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헐크.

21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조 1차전 FC 서울과 상하이 상강의 경기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헐크. ⓒ 이근승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 속에 숨겨진 현실

2002년 한국 축구대표팀은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과 무결점 수비를 자랑했다. 우리는 조직력을 앞세워 스타 선수들로 무장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맞섰고,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써냈다. 그러나 이때도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골 결정력이다.

조직력은 더욱 완벽한 수비와 성공적인 전술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득점을 해내지는 못한다. 조직력은 득점을 위한 좋은 과정을 만들어낼 뿐이다. 볼을 상대 골문 안으로 정확하게 차넣는 능력은 조직력이 아닌 개인의 역량에 크게 의지한다.

이날 서울은 이 능력이 부족했다. 세밀한 패스를 바탕으로 완벽한 기회를 노렸지만, 상하이의 헐크와 같이 상대 골망을 뒤흔들 선수가 없었다. 데얀의 연계 플레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과거와 같은 득점 본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35살이라는 현실만 와닿을 뿐이었다.

지난 시즌 부활에 성공한 '에이스' 윤일록은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탓인지, 경기 내내 조용했다. 이상호는 적극적인 공격 시도로 전반전에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전까지 경기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중원에 위치한 주세종과 고요한도 연계와 적극성은 빛났지만, 위협적인 슈팅 장면은 만들지 못했다.

황선홍 감독이 추구하는 패스 중심의 축구 스타일도 이날 경기에서만큼은 큰 문제였다. 서울은 너무나 완벽한 기회만을 노리는 듯했다. 서울의 패스는 상대의 압박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중원 지역에서는 힘을 발휘했지만, 상대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이루어지는 패스는 매우 무기력했다.

실제로 서울이 상대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시도한 패스는 대부분 수비의 예측을 벗어나지 못했다. 때론 중거리 슈팅을 통해 상대 수비를 끌어내는 모습도 보여줘야 했지만, 서울은 오직 패스를 통한 완벽한 득점 기회만을 노렸다. 그러다 보니 슈팅이 너무 없었다.

전반 22분 이상호와 신광훈의 좋은 연계 플레이에 이은 낮은 크로스가 윤일록을 거쳐 데얀의 슈팅까지 이어졌던 장면만이 전반전에 인상 깊은 공격이었다. 후반전 역시 데얀의 페널티킥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공격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패스만 너무 많았고, 상대 수비가 밀집된 지역에서는 그것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울은 점유율을 가져갔고, 경기를 주도했다. 다만, 패했을 뿐이다. 이제 서울은 잘 싸웠지만, 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만약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서울의 오랜 꿈인 '아시아 챔피언' 도전은 또다시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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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VS 상하이 상강 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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