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연석이 대중의 눈에 들어온 건 2003년 <올드보이>에서 소년 우진, 유지태의 아역을 맡았을 때였다. 잠깐의 등장이었지만, 왜 유지태(이우진 역)가 최민식(오대수 역)에게 그토록 지독한 복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낸 어린 소년의 표정은 관객들의 뇌리에 박히기에 충분했다.

그 후로 <종합병원2> <심야병원>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등 여러 작품에서 존재감을 보여 온 10년. <응답하라 1994> 칠봉이로 주연급 배우로 성장한 지 5년. 그는 쉼 없이 작품에 도전해왔다.

흥행에 목말랐던 시간들

 2017년 1월 <낭만닥터 김사부> 배우 유연석 제공 사진.

<응답하라 1994> 칠봉이를 통해 주연급 배우로 성장한 지 5년. 그동안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어쩐지 흥행과는 거리를 둬야했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의 오랜 흥행 목마름을 해갈해준 오아시스 같은 작품이었다. ⓒ 킹콩엔터테인먼트


좋은 작품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왜인지 흥행과는 거리를 둬야 했던 시간들. '응답의 저주'라는 말은, 어쩌면 그의 흥행 성적을 두고 찧어댄 입방아였는지도 모르겠다.

"초조했다기보다, 저라는 배우를 시험해보고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응사> 이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잖아요. 그때 제가 잘할 수 있는 이미지를 이어가기보다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싶었어요. 안 해봤던 캐릭터들, 보여주지 않았던 이미지들을 찾아가고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죠. 좋든, 좋지 않든, 제게는 모두 의미가 있던 작품들이었어요. 이런 경험들이 좋은 밑거름이 됐기 때문에 <낭만닥터>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만난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의 오랜 흥행 목마름을 해갈시켜줬다. 그가 연기한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뇌하며 단단해져 가는, 외과의사 '강동주'는, '칠봉이' 이후 오랜만에 만난 '인생 캐릭터'였다.

"<낭만닥터 김사부>를 만나기 전에 몇 달 쉬었어요. 꾸준히 작품을 하다 보니, 이렇게 길게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죠. 초조하다기보다, 쉴수록 연기에 대한 갈증 같은 게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만난 작품이라 더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었고, 넘칠 만큼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연말에는 상도 받았고요. 새해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어 좋았죠."

흔들려서 더 매력적이었던 강동주

 2017년 1월 <낭만닥터 김사부> 배우 유연석 제공 사진.

강동주는 바른길과 빠른 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래서 더 현실성 있고, 공감 갔다. ⓒ 킹콩엔터테인먼트


그가 연기한 강동주는 기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과는 거리가 있다. 바른길과 빠른 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런 그를 다잡아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건, 김사부(한석규 분)와 윤서정(서현진 분)이다. 뚝심 있게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관철해 나가는 캐릭터보다 카리스마는 부족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완성인 캐릭터를 극 안에서 성장시키는 일은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극 초반 강동주는 까칠하고 꼴통이잖아요. 사람들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외골수 같은 모습도 있죠. 그런 성숙하지 못하고 미완성이던 강동주가 극 안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갈수록 매력이 드러나잖아요. 후반에는 위트도 있고, 사랑 앞에서는 당당해지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현실성 있고, 공감 갔다. 현실에는 김사부나 윤서정처럼 늘 정의로운 사람이나, 도 원장(최진호 분)처럼 늘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보다는, 강동주처럼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들이 더 많으니까.

"동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우리 청춘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모습조차 우리와 닮았잖아요. 선택의 순간에 현실에 맞서 어떻게 흔들리고, 늘 정의롭진 않지만 마음을 다잡아 가는 과정을 보여드리는 게 재밌었어요."

유연석의 '김사부'

 2017년 1월 <낭만닥터 김사부> 배우 유연석 제공 사진.

극 중 강동주가 김사부를 닮아가듯, 유연석은 한석규를 닮아갔다. 배우 유연석의 '김사부'가 된 셈이다. ⓒ 킹콩엔터테인먼트


강동주에게 김사부가 있었다면, 유연석에게 한석규도 그런 존재였다. 두 사람은 이미 영화 <상의원>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지만, 왕과 어침장이라는 극 중 신분 탓에, 눈을 마주치고 연기 호흡을 맞추지는 못했다. 한석규는 늘 그의 발아래, 고개를 조아리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리 지르며 싸우고, 대들기도 했다.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으세요.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주신 덕분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었죠. 카메라가 꺼졌을 땐 위트있으시다가도, 슛이 돌면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세요."

촬영장에서는 '한석규 말투 따라 하기'가 유행하기도 했단다. 유연석은 "선배님이 후배들이나 스태프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현장 분위기를 밝고 편안하게 만들어주신 덕분"이라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그래도 막상 극 안에서 김사부 말투를 흉내 내야 할 때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누구나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말투와 목소리이니 그럴 만도 했다.

"굉장히 부담됐죠. 연구를 많이 했어요. 선배님 특유의 말투가 제자들 혼내는 신에서 많이 나오거든요. 영상 클립도 찾아봤어요. 정성호씨 영상도 많이 찾아봤어요. 위트있는 신이기도 하고, 정성호씨는 포인트만 딱 집어내신 거니까... 무엇보다 선배님이 그 대사를 녹음해주신 게 도움이 됐어요. 결과요? 주변에서 많이 비슷하다고 하던데요. (웃음)

현장에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카메라에 대고 연기하지 말아라'하시던 말씀이 기억나요. 찍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말고, 연기자들끼리 집중해서 촬영하자는 표현이셨죠. 그렇게 선배님 말씀과 조언을 따라가다 보니 연기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극 중 강동주가 김사부를 닮아가잖아요. 선배님은 제게 김사부가 돼 주셨어요."

'낭만배우' 유연석, "모든 것이 좋았다"

 2017년 1월 <낭만닥터 김사부> 배우 유연석 제공 사진.

아직 차기작을 정하진 못했다. 하지만 얼마 될지 모르는 여유시간 동안 그의 일정은 빼곡했다. ⓒ 킹콩엔터테인먼트


유연석은 <낭만닥터>를 촬영하는 동안, "다시없을 만큼, 모든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포상휴가를 가서도, '이별 여행' 같다는 생각에 즐거우면서도 한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시즌2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꼭 낭만닥터가 아니더라도, 낭만 시리즈를 이어가도 좋을 것 같았어요. 낭만기자도 좋고, 낭만경찰, 낭만검사, 낭만정치인... 또 뭐가 있을까요? 이 정도의 팀워크면 웰메이드 드라마를 계속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낭만닥터>를 끝낸 그는 밀린 논문도 쓰고, 여행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 주: 유연석은 세종대학교 대학원 연기예술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사진, 가구 만들기 등 취미 생활도 할 계획. 아직 차기작을 정하진 못했지만, 얼마 될지 모르는 여유시간 동안 그의 일정은 빼곡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배우 이순재의 연기인생 60주년을 기념해 후배와 제자들이 올리는 헌정 공연에 참여할 예정이다. 서울 공연부터 참여하려고 했지만, <낭만닥터> 촬영과 겹치는 바람에, 지방 공연부터 합류하게 됐다고. 드라마를 마치자마자인데 체력 부담은 없는지 묻자, "이순재 선생님과 함께 연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2017년 1월 <낭만닥터 김사부> 배우 유연석 제공 사진.

유연석이 생각하는 ‘낭만배우’는 어떤 배우일까? ⓒ 킹콩엔터테인먼트


<낭만닥터 김사부> 유인식 감독은 "'낭만닥터'란, 의사라는 일을 통해 뭔가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일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낭만배우'라 불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유연석이 생각하는 '낭만배우'는 어떤 배우일까?

"배우는 어떻게 보면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때 있을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 곁에 숨 쉬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사람 냄새 나는 배우가 낭만배우이지 않을까 싶어요.

전에는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까 하는,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낭만닥터>를 하면서 든 생각은, 결국 남는 건 사람이더라고요. 좋은 사람들과의 작업이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도 다시 한번 느꼈고요. 배우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의미인 것 같아요. 그러려면 우선 제가 좋은 사람이 돼야겠죠? (웃음)"

유연석 낭만닥터 김사부 강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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