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KIA 타이거즈에서 17년 동안 활약했던 이재주는 주 포지션이 포수였지만 포수로는 그리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통산 성적 역시 타율 0.252 82홈런 355타점으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선수 생활 17년 내내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은 단 3년 뿐이고 규정타석을 채운 적도 딱 한 번 뿐이다.

하지만 이재주는 은퇴한 지 8년째를 맞는 지금도 2가지 이유 때문에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하나는 중남미 선수를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이미지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재주가 현역 시절에 때려낸 20개의 대타 홈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기록이 27개, 메이저리그 기록이 23개인 점을 고려하면 이재주가 17년 동안 때려낸 20개의 대타 홈런은 결코 가벼이 볼 숫자가 아니다. 현역 시절 이재주는 경기 후반 역전 기회에서 타석에 서면 관중들로 하여금 뭔가를 기대케 하는 타자였다.

수비나 주루 등에서 별다른 장점이 없었던 이재주가 전문대타요원으로 성공했던 것처럼 야구에서는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1군 무대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의 스페셜리스트가 2017년 한국시리즈 3연패를 노리는 '디펜딩 챔피언' 두산 베어스에서 1군 한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바로 빠른 발과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하는 프로 2년 차 외야수 조수행이 그 주인공이다.

 조수행(오른쪽)은 2016년 빠른 발을 앞세워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1군에서 66경기에 출전했다.

조수행(오른쪽)은 2016년 빠른 발을 앞세워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1군에서 66경기에 출전했다. ⓒ 두산 베어스


'야구변방' 강릉고가 배출한 대학야구 최고의 1번타자

가뜩이나 작은 나라가 반으로 갈라져 있고 야구부가 있는 학교수도 많지 않지만 한국의 고교야구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 명문학교들이 있다. 인천의 동산고, 호남의 광주일고와 군산상고, 영남의 경북고와 경남고, 충청의 천안 북일고 등이 대표적이다. 야구부가 있는 학교가 가장 많은 서울은 굳이 야구로 유명한 명문고를 따로 꼽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유독 강원도 지역에서는 야구로 유명한 고등학교를 찾기 힘들다. 강원도에는 1975년 강릉고에서 야구부가 가장 먼저 생겨났고  81년에 원주고, 98년에 설악고가 차례로 야구부를 창단했다. 2014년 춘천에 위치한 강원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생기면서 강원 지역의 고교 야구팀은 4개로 늘어났지만 이 중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한 학교는 아직 없다. 한마디로 고교야구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인구가 적고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보니 우수한 선수들이 몰리지 않았고 좋은 성적이 날 리도 없었다. 매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강원 지역 학교 출신 선수들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지난 2015년 8월 24일에 개최된 2016년 KBO리그 2차 신인지명회의에서는 달랐다. 강원 연고 지역 출신 선수들이 무려 6명(대졸4명, 고졸2명)이나 지명되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특히 강원도에서 가장 긴 4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강릉고에서 무려 4명이나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았고 그 중 2명은 2차 1라운드에 이름이 불렸다. 전체 5순위로 두산에 지명된 외야수 조수행과 전체 10순위로 삼성 라이온즈의 선택을 받은 투수 김승현이었다. 두 선수는 초등학교(노암초)부터 대학교(건국대)까지 함께 운동했던 사이다(김승현이 고교 시절 1년 유급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조수행이 1년 후배).

건국대 시절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로 이름을 알린 김승현은 1억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삼성에 입단했다. 하지만 지명 직후 팔꿈치 내측 인대 수술과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며 곧바로 신고 선수로 전환되고 말았다. 입단 첫 시즌 1군 성적은 2경기 2이닝 무실점에 불과하다. 2017년에도 변함없이 신인 자격을 이어가는 삼성의 김승현과는 달리 두산의 조수행은 입단 첫해 1군에서 66경기에 출전하며 두산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는데 성공했다.

첫 시즌 1군 66경기 출전... 퓨처스리그선 .328 18도루 맹활약

조수행은 건국대 시절 대학야구 최고의 1번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대학 4년 동안 90경기에 출전해 92도루를 기록하며 엄청난 주력을 과시했다. 홈에서 1루까지 3.88초에 끊어내는 준족으로 좀처럼 병살타를 치지 않는 선수다. 빠른 발을 이용한 수비범위도 대단히 넓고 강릉고 시절까지 유격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송구능력도 준수하다. 무엇보다 스프링캠프에서 보여준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김태형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당히 2016년 두산의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조수행은 데뷔 첫 타석이었던 4월 8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내야 안타로 프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했다. 4월에만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17경기에 나선 조수행은 7득점을 기록하며 빠른 발을 과시했고 5월에는 21경기에 출전해 7타수4안타(타율 0.571)라는 뛰어난 타격감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수행은 프로 데뷔 후 두 달 넘게 1군에서 생존했지만 기대했던 도루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6월4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좌익수 김재환-중견수 민병헌-우익수 박건우로 이어지는 주전 외야가 자리를 잡은 두산은 조수행 같은 대주자, 대수비 요원보다는 대타 요원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조수행은 1군에서 66경기에 출전하며  데뷔 첫 시즌을 마쳤다(타율 0.279 3타점2도루). 조수행은 한국시리즈에서도 정수빈(경찰 야구단)과 국해성에 밀려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2016년 73홈런 294타점을 합작한 두산 외야진에 0홈런 3타점의 조수행이 주전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적게는 한 자리, 많아도 2자리뿐인 백업 외야수 자리를 놓고 정진호, 국해성, 김인태, 이우성 등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뜻이다. 프로 경험이나 장타력 등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수행으로서는 자신의 경쟁 무기인 빠른 발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다시 한 번 김태형 감독의 눈에 드는 방법밖에 없다.

조수행은 작년 시즌 1군에서 2개의 도루밖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퓨처스리그에서는 38경기에서 18개의 도루와 4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스피드를 과시한 바 있다(타율 0.328). 결국 조수행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주력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다. 사실 두산은 조수행이 도루하다 아웃 당하더라도 다음 타자가 충분히 홈런을 칠 수 있는 파괴력을 갖춘 팀이다. 조수행이 이런 환경을 좀 더 영리하게 이용한다면 2017년 두산의 엔트리 한 자리를 차지해 1군에서 시즌을 보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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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두산 베어스 조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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