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MBC <무한도전>의 시즌제를 찬성한다. 비단 <무한도전>에 국한된 지지가 아니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오래가기 위해서 창작자들의 '재충전'은 필수적이다. 다음 주에 찾아뵙겠습니다? 말은 쉽지만, 매주 한 편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저들은 '도깨비'가 아니니까. 그걸 11년째 이어오고 있다면, 그건 살인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들은 그 어려운 걸,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던 거다. 기립박수가 부족할 판이다.

다만, <무한도전>의 경우에는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서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에서 흘리는 '위기설'에 동요하지 말고, 외부의 '감 놔라 배 놔라'하는 데 흔들리지 말고, <무한도전> 제작진과 출연진이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향후 <무한도전>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봤다. 외부에서 제기됐던 '무한도전 위기설'을 점검하기 위해 전문가를 불러 '경청'하는 자기 객관화 능력을 보여줬던 <무한도전>이 아니었던가. 그 정도의 냉철함을 <무한도전>은 갖추고 있다.

 김태호 PD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원'

김태호 PD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원' ⓒ 김태호PD인스타그램


"열심히 고민해도 시간을 빚진 것 같고... 쫓기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고... 택시할증시간 끝날 때쯤 상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회의실 가족들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준다면.. 한 달의 점검 기간과 두 달의 준비 기간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에라모르겠다 #방송국놈들아 #우리도살자 #이러다뭔일나겠다"

지난 13일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소박한(?) '크리스마스 소원'을 밝혔다. 그가 바란 건 '한 달의 점검 기간과 두 달의 준비 기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시즌제'를 언급한 것이라 단정 짓긴 어렵지만, 어찌 됐든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분명했다. '열심히 고민해도 시간을 빚진 것 같고, 쫓기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린다'는 그의 말에서 엄청난 부담감이 느껴졌다. 또, 프로그램의 수장(首長)으로서 제작진과 출연진들에게 잠깐이나마 쉴 시간을 주고 싶은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해시태그는 더 절박했다.

"사실 '무한도전'이 토요일 저녁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2009년까지 웬만한 건 다 했다. 그때부터 (TV)플랫폼 밖으로의 도전이 필요했던 상황인데,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한도전>이 시즌제가 되는 게 제일 좋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다" (2015년 11월 25일, 서울대학교 문화관에서 강연 중 발언)

 김태호 피디와 <무한도전>은 시즌제를 원한다. MBC는 <무한도전>에 왜 자유를 주지 않는 걸까?

김태호 피디와 <무한도전>은 시즌제를 원한다. MBC는 <무한도전>에 왜 자유를 주지 않는 걸까? ⓒ MBC


이로써 김태호 PD가 직접 '시즌제' 혹은 '휴식'을 언급한 게 두 번째다. 첫 번째 발언이 '플랫폼'의 한계를 언급하는 이성적 차원의 발언이었다면, 이번에는 감성적이라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강연'과 'SNS'의 차이로 받아들여야겠지만.) <무한도전>이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난도 있는 '도전'일 수밖에 없는 건 '포맷' 때문이다. KBS2 <1박 2일>의 경우에는 '여행'이라는 포맷이 정해져 있으므로 고민의 폭이 훨씬 작다. tvN <삼시세끼>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나영석 PD에겐 매번 '재충전'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가.

극한직업도 이런 극한직업이 없다. 한때 케이블과 종편으로 떠난 여러 PD에게 '돈을 좇는다'는 비판이 따랐지만, 이제 그런 시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제약이 심한 지상파를 떠나 창의적인 환경 속에서 안정된 조건을 제공받으며 재능을 발휘하는 게 현명하다는 게 중론이다. 진득하게 MBC에 남아 '열악함'을 이겨내는 김태호 PD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짠해지는 건 다수의 시청자들 같을 것이다. 마치 선사를 지키는 소나무와 같은 존재가 돼버린 그가 애잔하기만 하다.

김태호 PD가 간절히 바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산타 할아버지(MBC)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쯤 되면, 그러니까 MBC의 '효자'를 넘어 사실상 MBC를 '하드 캐리'하는 <무한도전>에게 좀 더 '자유'를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정도의 선물도 줄 수 없단 말인가? 물론 최근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전락한 MBC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큰 기대가 생기지 않는 건 사실이다. 국민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여전히 '언론'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MBC가 아닌가.

 <무한도전>의 한 장면. 광희가 군대에 가는 그 시점이 휴식 기간을 갖고 멤버 충원을 할 절호의 타이밍일 것이다.

<무한도전>의 한 장면. 광희가 군대에 가는 그 시점이 휴식 기간을 갖고 멤버 충원을 할 절호의 타이밍일 것이다. ⓒ MBC


<무한도전>은 지난 17일 방송에서 광희의 입대가 머지않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유재석은 "요즘 광희가 적응을 해 고맙다는 생각을 하는데 군대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만약 <무한도전>에게 '한 달의 점검 기간과 두 달의 준비 기간'을 줄 거라면, 광희가 입대를 하는 시점이 가장 적기(適期)일 것이다. 지금은 떠나있는 멤버를 다시 데려오거나 혹은 새로운 멤버를 충원하는 등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시기를 '재충전'과 맞물려 보낸다면 20주년을 향해 달려갈 힘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이러다 '뭔일 나기 전'에 '방송국 놈들'의 전향적인 결정이 요구된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을 계속 보고 싶다. 매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더 중요한 건 '오래오래' 계속 보는 것이다. MBC는, 정확히는 결정권이 있는 소수의 수뇌부는 서둘러 김태호 PD의 요청에 응답하길 바란다. '국민예능'으로 등극한 <무한도전>은 어느덧 공공재와 같아졌다. 당신들의 전유물, 당신들의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MBC 무한도전 시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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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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