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피겨의 차준환(휘문중)이 이젠 어엿한 새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차준환은 지난 10일 오후(아래 한국시각)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연맹(ISU)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 이후로는 11년 만이자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 시즌 대회마다 느낌표를 붙이게끔 놀라운 경기력으로 단연 핵심 선수로 거듭났다.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 온 길보다 앞으로의 여정이 훨씬 더 많은 '루키'이다.

어려움 헤치고 결국 해낸 동메달

 차준환의 연기 모습.

차준환의 연기 모습. ⓒ 대한빙상경기연맹


이번 대회는 차준환이 그동안 치러온 대회 중 가장 큰 대회 가운데 하나였다. 지난해 이미 주니어 세계선수권과 동계 유스올림픽 등을 거치면서 큰 대회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그였다. 하지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은 처음이었기에 긴장감이 없을 수는 없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의 실수가 너무나 아쉬웠다. 첫 점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그만 넘어지고 만 것. 주니어 쇼트프로그램은 콤비네이션 점프, 더블 악셀 또는 트리플 악셀, 그리고 시즌마다 과제로 주어지는 더블 또는 트리플 단독 점프를 해내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위반할 시엔 그 요소는 0점 처리가 된다. 즉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실수가 나오면 다른 점프에서 연결 점프를 붙여 만회할 수가 없다.

대개 첫 점프에서 실수를 할 경우엔 선수들의 긴장감이 더욱 배가된다. 첫 점프에 깔끔하게 성공하면 그 기분과 흐름이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실수가 나올 경우엔 다음 요소에 대한 부담감은 물론 몸이 더욱 굳어질 수 있다. 비록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른 요소를 해내는 모습은 분명 박수받을 만했다. 오히려 실수 이후 차준환이 보여준 스핀과 스텝 연기는 이번 시즌 모습 가운데 가장 좋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또 하나의 장점 '예술', 점수로 나타났다

 차준환의 연기 모습.

차준환의 연기 모습. ⓒ 대한빙상경기연맹


차준환의 장점은 점프뿐만이 아니라 예술에서도 드러난다. 대개 남자 선수들은 힘 있고 강단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4회전이라는 어려우면서도 힘이 많이 들어가는 점프들을 여러 번 수행하기에 기술에 대한 집중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자칫 안무나 표현력에서는 무미건조한 면을 보일 수가 있다. 실제로 이번에 차준환과 함께 경기한 러시아 선수들 가운데는 활주와 점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 경우도 적잖았다.

그러나 차준환은 달랐다. 빠르고 경쾌한 템포의 음악은 물론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모습까지 팔색조의 매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팔과 상체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남자 선수에게선 좀처럼 보기 힘든 우아하면서도 선이 고운 팔의 사용은 만15세라고는 믿기 어려운 연기였다.

이런 그의 매력 때문이었을까. 차준환은 이날 전체 6명 가운데 1위를 한 드미트리 엘리프(러시아)에 이어 예술점수 2위를 기록했다. 피겨스케이팅은 주관성이 강하기에 성적과 순위에 따라 나뉘는 그룹과 순번에 매우 민감하다. 특히 앞 그룹과 앞 번에 배치될수록 불리한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들 한다. 프리스케이팅에서 차준환이 1번을 뽑자 아쉬움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를 그는 불식시켰고 한 차례의 실수가 있었음에도 차분하게 연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기술에서도 탄탄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기대를 모았던 쿼드러플 살코 점프는 도약에서 착지까지 흠잡을 때 없는 탄력과 공중자세, 착지를 보여주며 9명의 전 심판으로부터 가산점 2점을 받았다. 그 외에도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도 1.43점의 가산점을 받았으며, 넘어진 트리플 플립 콤비네이션 점프를 제외하곤 모두 1점 내외의 가산점을 챙겼다. 올 시즌 그의 프리스케이팅 시즌 베스트는 총점 세계신기록을 세웠던 지난 3차 대회에서 받은 160점대다. 이번 대회에서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넘어짐이 있었음에도 불과 7점 가량이 모자란 점수를 받았던 것을 본다면, 클린 연기를 할 시엔 170점대의 점수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준환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현재 그에 나이는 만15세. 남자 피겨선수들은 대개 20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는다. 여자 선수들은 체형변화 등으로 10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는 편이지만, 남자 선수들은 여자 선수들보다 더욱 많은 힘을 이용해 고난도 점프를 수행하기에 20대 초반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캐나다의 간판 패트릭 챈은 현재 만25세이지만 계속해서 정상권에서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선수가 20대 중후반까지 선수생활을 유지한다.

앞으로 차준환은 계속해서 4회전 점프 연마에 주력해 점차 난이도를 올라나갈 예정이다. 주니어뿐만이 아니라 시니어에서도 정상에 서기 위해선 4회전 점프 2~3개를 뛰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연습과정에선 쿼드러플 토루프 점프를 원활하게 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현재 시니어 남자 세계 1위인 하뉴 유즈루(일본)가 올 시즌 새로이 선보이고 있는 쿼드러플 루프도 도전할 계획이다. 특히 다음 시즌에 그는 시니어에도 출전할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준비도 착실히 할 것으로 보인다.

기술은 물론 예술과 그리고 경기를 이끌어 나가는 능력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만 15세의 차준환은 분명 평창은 물론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기대하게 하는 신인임에 분명하다. 차준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차준환의 올 시즌 남은 목표는 내년 2월 대만에서 열리는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서는 것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이나 2위를 한다면, 차기 시즌 시니어 그랑프리에 초청되는 행운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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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환 피겨 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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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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