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차량에는 길거리와 건물 안팎에서 붙잡혀 끌려온 사람들이 가득가득 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맞고 밟혔는지 머리와 코, 입에서 피를 토해 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의 하얀 옷자락은 피에 젖어 엉망으로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은 기진한 듯 눈만 껌벅껌벅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사람이 붙잡혀왔다. 그의 머리나 코에서는 피가 줄줄 쏟아져 내렸다. 웃옷은 갈기갈기 찢겨진 채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끌고 온 군인이 대기 중인 군인에게 인계하면 또 한 차례 군화발이 날아오고 몽둥이 세례가 쏟아졌다. 그리고 짐짝 실리듯 트럭위로 이끌려 올라갔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또 다른 군인이 '이 새끼 머리 숙여'라며 군화발로 머리와 등을 짓밟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야 끝이난다.' - 김영택, <현장기자가 쓴 10일간의 취재수첩> 중 1988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불의에 항거하는 민초들을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땅에 다시 계엄령이나 계엄군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오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한 장면, ⓒ 기획시대


영화에서 보았던 충격은 전부가 아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뭉개진 시신의 모습과 기자들의 서술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수업 중이던 학원에 들이닥쳐 학생들을 구타하고, 여관을 습격하여 투숙객을 끌어내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둘러 끌고 간 공수부대의 모습은 여러 목격자들이 서술한대로 '인간사냥'의 모습 그 자체였다. 지금에서야 너무나 당연한 민주주의를 손에 넣기 위해 말 그대로 사냥감이 되어버린 광주시민들의 모습은 처절하고 장렬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쥐어준 자유를 나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까지 들었다.

당시 사태의 잔혹함, 시민들의 수많은 노력과 시민들이 무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을 영화에서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매끄럽게 영화의 전개를 따라 흘러가던 내 생각이 멈춘 것은 그 때였다. 박흥수 대령과 김상철 대위가 도청 전투에서 마주치는 장면. 김상철 대위는 자신이 겨누고 있던 시민이 박흥수 대령이라는 것을 알자 총을 내린 후 그를 쏘지 못한 채 보내준다. 그 후에 나타난 두 군인의 총격에 의해 박흥수 대령은 죽게 되지만 김상철 대위는 쓰러진 박흥수 대령을 보며 오열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 전개 내내 김상철 대위는 사태를 가라앉히기 위해 최순기 준장에게 유화책을 제시했다가 따귀를 맞기도 하는 등 영화 속 계엄군의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김상철 대위와 같은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새롭게 부여되는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 감상 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 생각의 여지가 필요한 듯 한 글이 있었다. 영화 속 김상철 대위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들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까? 당시 학살에 관련된 문서를 읽으며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건 사실이었다. 감히 같은 사람의 행위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그들의 살인행각은 피해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정도의 수위였다. 한 편 드는 생각은 '그들은 무슨 명목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였다. 당시 계엄군들의 정신적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틀은 그 당시 시대사적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상부로부터 빨갱이를 때려잡으러 간다는 대의명분을 갖고 이를 수행하였던 것이다. 후에 진압작전에 참가했던 계엄군들이 갖고 있던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켰다는 긍지와 자부심"은 나중에 진실이 하나 둘 씩 밝혀지면서 "군사독재 정권의 앞잡이" 내지는 "잔인한 학살자"라는 불명예로 돌아왔다. 실제로 당시 계엄군의 상당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사였던 사람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계엄군에게 환각제를 먹이고, 시민의 70%를 사살하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령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오후 4시경 "거리에 나와 있는 시민 여러분, 빨리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빨리 돌아가십시오" 하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1분 정도가 지나자 지휘관이 내린 명령은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은 전원 체포하라"였다는 것이다. 영화 속 최순기 준장이 언급하는 '군사용 인간'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물론 계엄군들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당시 사건을 '광주학살'이라 칭할 만큼 공수부대들의 행동은 단순한 살인을 넘어선 반인륜적 행위였다. 빨갱이를 숙청하라는 정부의 세뇌만으로 책임을 덜기에는 너무나 큰 참사가 벌어졌다. 시위대를 진압하려는 목적을 넘어 어린 아이에게 총격을 가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죄는 씻을 수 없다. 하지만 한편에서 그들은 어떠한 진실도 알지 못했던 시대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 속 김상철 대위처럼 군사조직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무참히 묵살 당한 소수의 집단도 있었을 것이다. 군사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복종이 불가피했던 그들을 완전한 가해자라고 볼 수는 없다. 작품 속에 등장한 도청 전투에서의 박흥수 대령과 김상철 대위의 조우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광주학살의 1차적인 책임은 계엄군이 아닌 최종 결정권자이자, 명령권자인 전두환과 군정에게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삶에 공기처럼 배어있는 민주주의는 광주시민들의 피와 맞바꾼 값진 보석이다. 광주시민의 희생에 의해 우리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단지 '광주시민'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모든 참사의 원인이 된 정부까지도 모두 되 뇌일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나는 <화려한 휴가>의 인물인 김상철 대위가 떠올라, 과연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독재정권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은 누구까지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분노를 표출하고 손가락질을 한 방향이 잘못된 곳은 아니었던가 하며 되돌아보기도 하였다. 생각보다 가해자는 많지 않았다. 소수의 힘 있는 자들이 휘두른 주먹에 종잇장과 같은 다수들이 쓰러진 대한민국이었다. 현재의 대한민국도 예외는 없다. 그들과 우리가 지켜온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광주학살과 같은 참사가 다시 빚어지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하고 견뎌내야 한다. 이제는 죽음이라는 것이 생명의 죽음에서 그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더 지켜나가야 할 것이 많고 투쟁해야 할 것이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5월 18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 번 손에서 놓친 것들을 다시 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과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던 우리의 민족에 대한 예의이며 미래의 대한민국을 지탱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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