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 복지의 사전적 정의다. 그렇다면 복지 제도는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모든 제도적 장치를 뜻함이 마땅하다. 좁게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 넓게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인지 확인해야 한다. 필수다. 여러 장의 서류도 필요하다. 하나 마나 한 질문에 응답도 해야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다니엘(데이브 존스 분)처럼 답답함을 꾹꾹 누르면서, 형식적인 관료 시스템에 혀를 내두를 것에 틀림없다.

다니엘은 주치의로부터 심장에 무리가 가니 일을 쉬라는 권유를 받는다. 본업인 목수일을 할 수 없으니 당장 생계에 문제가 생긴다. 질병 수당을 받기를 원하지만, 심사에서 탈락한다. 사지를 멀쩡히 움직일 수 있으므로. 복지정책의 매뉴얼에 따라 다니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항고하거나 재취업 교육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거나.

복지 대상을 고려하지 않는 복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의 한 장면. 복지를 받기 위해 신청하는 절자조차도 쉽지 않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의 한 장면. 복지를 받기 위해 신청하는 절자조차도 쉽지 않다. ⓒ 영화사 진진


항고는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니엘의 나이는 59세, 마우스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도 모르는 노인이다. '에러' 창을 수차례 마주한 끝에 이웃의 도움을 받고서야 해결한다. 꼬박 사흘이 걸렸다. 영화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망할! 공인인증서"라고 외치는 다니엘을 보았을 것이다.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는 싱글맘이다. 각각 아빠가 다른 두 아이를 키운다. 생활고 끝에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다. 그녀의 가방에서 나온 것은 모두 여성용품이다. 그녀는 아이에게 스파게티를 먹이며 엄마로서 책임을 수행하면서도 여성으로 살아가지 못했다.

다니엘이 노인임을 그리고 케이티가 여성임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은 다름 아닌 복지정책이다. 사용할 수 없는 컴퓨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한 행복한 삶이다. 여성으로 존재하지 못하게 한 행복한 삶이다. 복지 대상을 고려하지 않는 복지 정책인 셈이다. 씁쓸한 웃음이 새어나 온 까닭은 이러한 모습 비단 영국만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 모녀를 떠올리다

 세 모녀 사건의 유서는 많은 이를 눈물 짓게 만들었다.

세 모녀 사건의 유서는 많은 이를 눈물 짓게 만들었다. ⓒ 서울지방경찰청


2014년 3월,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강남 3구 중 한 곳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자살했다. 빈곤문제 때문이다.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팔을 다치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큰딸은 고혈압에 당뇨를 앓았다. 작은딸은 소득이 없었다. 수년 전, 복지 지원을 신청했으나 대상 조건을 만족하게 하지 못해 탈락했다. 추정소득이 이유였다.

이를 계기로 '세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을 2015년 7월 개정했다, 개정안 기존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통합해서 운영하던 기존의 정책을 7가지 분야로 세분화했다. 복지부가 총괄했으나 급여별로 담당 부처가 쪼개졌다.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는 복지부가, 주거급여는 국토부가, 교육급여는 교육부가 담당하게 됐다. 껍데기는 바뀌었으나 내용은 같다. 오히려 '세 모녀'가 살아있더라도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절차는 복잡해졌고, 혜택은 미비하다. 뒷걸음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관공서 직원은 수급을 포기하려는 다니엘에게 말한다. 착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거리에 내앉는다고. 그러고 보면 세 모녀도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남긴 마지막은 주인아주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월세였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필요하다

 켄 로치 감독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켄 로치 감독의 목소리에 울림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 영화사 진진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합니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켄 로치 감독이 세상에 던진 말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보기 불편한 영화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우리 시대의 현실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다니엘이 켄 로치 감독이 말하는 다른 세상을 몸소 보여주고 있어서다.

다니엘은 자신보다 어려운 상황의 케이티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케이티 집의 차가운 바람이 새는 창을 막고, 전기를 연결한다. 함께 양초에 불을 붙인다. 케이티는 다니엘을 위한 식사를 만든다. 그뿐만 아니다. 사소한 도움들을 이웃과 함께 나눈다. 서로의 모자란 것을 메운다. 개인의 삶의 변화를 만든다.

한국 사회에도 일반 시민, 다니엘이 있다. 당신이자, 당신의 이웃. 쓴웃음이 관객석에 머무르지 않고, 다니엘이 질병 수당을 받도록 외치고, 케이티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인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고민할 때, 그렇게 스크린의 문제의식이 현실과 마주했을 때,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연민에 그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할 때, 켄 로치가 말하는 다른 세상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보통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포스터. 영화는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복지인가. 복지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포스터. 영화는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복지인가. 복지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 영화사 진진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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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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