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선생님의 일기>는 감독 니티왓 다라톤의 작품이다.

영화 <선생님의 일기>는 감독 니티왓 다라톤의 작품이다.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선생님!" 하고 부르는 철모르는 아이들 목소리에 뭉클해지는 영화가 있다. 순수한 열정으로 교단에 선 선생님 둘과 하나같이 맑은 아이들과의 합이 가슴을 울린다.

문명과 한참을 떨어진 거친 육지를 내달리다 짐과 몸을 실은 작은 배를 강에 띄우면, 끝도 없을 것 같은 강위에 선상의 집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그 곳엔 쓰러질 듯한 자태로 집들과 함께 점을 찍고 있는 선상학교가 있다.

태국 오지의 선상마을에 딱 하나 있는 학교는 각자의 사정으로 1년차를 두고 교사로 부임하게 된 '앤'과 '송'을 맞이한다. 그리고 의지 충만한 그들과 함께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일상은 손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원시적 감동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그 원시적 감동의 원동력을 전부 '근본적인' 것에서 찾는다.

오랜 세월 묵힌 깊고 아련한 추억을 강바닥에 켜켜이 쌓아두었을 것 같은 선상학교는 그 곳에 부임한 선생님들, 아이들의 삶 속에서 근본적인 장을 열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원시적인 것들의 집결지 '선상학교'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고 핸드폰 또한 잘 되지 않는 그 곳에선 도마뱀이 물탱크의 구멍에서 갑작스레 툭 튀어나오는 상황도 그저 평범한 일상에 속한다. 학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구조물 틈으로 강에 둥둥 떠 있는 시체를 발견해도 벌렁대는 가슴으로 놀라고만 있을 순 없다. 놀란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마을에 구조대가 오는 시간까지 기다릴 수는 없기에 직접 시체를 끌어 내야하는 것도 선상학교 선생님의 일이다. 수업시간에 소리도 없이 나타난 뱀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위협하는 일도 있다. 두려움에 휩싸인 아이들을 구해내는 일도 당연히 선생님의 몫이다. 내던진 나무의자가 뱀을 내려치지도 못하고 공중으로 해체되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주중에 함께 지내다가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보내는 선상 위의 까만 밤은 낭만적이거나 달콤하지만은 않다. 밤새 폭풍우가 몰아치기라도 하면 곧 뒤집어질 것 같은 학교의 너울대는 몸짓 속에서, 어떻게 해도 닫히지 않는 창문과 문을 닫으려 애쓰는 일도 두렵지만 해야 한다. 자연의 거친 춤사위에 기겁한 아이들과 꼭 겹쳐 안고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시간이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그 곳에서 교사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어떤 돌발적인 상황과 위험을 아이들과 끊임없이 겪어내면서 그들은 교사로서만이 아닌 인간으로 성장한다. 자식 키우듯 부모의 입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꾸고 지켜내는 교사가 된다는 것은 선상학교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일이다.

일기장 한 권

오지마을의 선상학교는 그 과정이 다소 험난할지라도 교사로 성장하기엔 적합한 곳이지만,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를 이어가기엔 적합하지 못했다.

팔에 새긴 작은 문신을 지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를 삼더니 급기야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오지로 발령시킨 교장에 의해 선상학교에 가게 된 '앤'에겐 오래된 연인 '누이'가 있었다. 앤이 오지로 발령 나게 되니, 5일을 그리워하다 주말에만 간신히 만날 수 있는 처지가 된 현실을 누이는 못견뎌했다.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 결국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누이의 큰 실수로 끝내 오래도록 묵은 사랑은 이어지지 못한다.

자신을 교사로서 마뜩치 않게 여기는 교장에게 이력서를 내밀다 수영할 줄 아냐는 물음만 듣고 임시 교사로 채용된 '송'은 전직 레슬링 선수이다. 잘 하는 것이라곤 레슬링밖에 없지만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보겠다는 의지로 긴 강을 달려 선상학교로 향하는데, 그에게도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물리적 현실은 '송'의 사랑에도 어둠을 드리웠다.

 자신이 두고간 일기장에 쓰여진 '송'(비 스크릿 위셋케우)의 기록을 읽는 '앤'(레일라 분야삭)

자신이 두고간 일기장에 쓰여진 '송'(비 스크릿 위셋케우)의 기록을 읽는 '앤'(레일라 분야삭)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순탄치 않은 연애까지 조미료처럼 첨가된 선상학교에서의 외로움과 낯선 두려움 속에서 '앤'은 일상의 기록을 시작하게 된다. 순수한 아이들을 향한 교육의 열망과 사사로운 일상의 감정들이 손글씨로 둔갑하여 기록으로 남았다.

두꺼운 수첩이 일기를 빼곡이 담은 일기장이 되어 낡은 칠판위에 뽀얀 먼지 품고 남겨져 있는 것을 1년 뒤 발견하게 된 후임교사 '송'은 그녀의 일기를 흥미롭게 읽게 된다. '앤'의 일기를 한 장씩 읽어가며 선상학교의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선생님 '앤'을 향한 호기심과 그리움이 동시에 생겨난다. '앤'의 일기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고, 알파벳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며 막막한 마음을 떨칠 길 없던 서툰 초보 교사 '송'에게 진짜 교사 인생을 시작하는 큰 구심점이 되었다.

 '앤'(레일라 분야삭)이 남긴 일기장을 아껴 보는 후임교사 '송'(비 스크릿 위셋케우)

'앤'(레일라 분야삭)이 남긴 일기장을 아껴 보는 후임교사 '송'(비 스크릿 위셋케우)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일기를 매개로 똑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이 교차하는 기묘한 요술과도 같은 상황에 처한 '송'과 '앤'에게 진짜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랑이 온 것인지. 강물에 비치듯 그대로 드러나는 둘의 감정은 일기장 한 권에 교대로 중첩되어 기록된다.

'멀리 있는 사람을 그리워 한다는 건 생각보다 행복한 일이다'라는 '송'의 독백은 같은 곳에서 다른 시간을 살다가 간 '앤'을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들렸다.

알파벳이나 숫자만 가르치면 다 선생인가

몇 안 되는 마을의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그 중 유독 수학공부를 어려워하는 아이 '천'의 장래희망은 고기 잡아 가족의 생계를 잇는 아버지처럼 어부가 되는 것이다. 커갈수록 외모에 신경을 쏟는 발랄한 '티나'의 꿈은 '스타'가 되는 것이다.

 선상학교의 몇 안 되는 전교생

선상학교의 몇 안 되는 전교생 ⓒ 드림팩트 엔터테인먼트


수학을 싫어한다는 '천'에게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려면 수학공부를 해야 한다고 설득했던 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려 하는 열정에 비해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을 보며 망연자실하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지내며 점차 욕심을 내려놓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집안의 생계 문제로 기말시험에 빠져 졸업을 하지 못한 '천'의 집을 찾아가 일을 도우며 아이가 학교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왔던 '송'은 남에게 속지 않고 살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며 아이 눈높이에 맞춘 설명으로 교육의 당위성을 이해시킨다.

예고 없이 닥치는 원시적인 위험을 수용하고 이겨내며 살 수 있는 인간이 되면, 어떤 다양한 삶의 문제에 직면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아이들과 험난한 오지에서 배가 뒤집히는 여정과도 같은 일상을 수없이 겪으며 그들이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것이냐를 깨우치게 되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알파벳이나 숫자만 가르치면 다 선생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왜 교사가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다 보니 참교육의 본질에 이른 교사가 되어 있던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원시적인 상황에 내던져진 교사와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복잡한 문명을 겪으며 함께 꼬여버린 도시의 퍽퍽한 삶에서 쉽게 응답하기 힘든, '왜 사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 도대체 왜 다녀야 하는지 몰라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아이들이 태반인 대한민국에 살다보니 영화의 선량한 감동은 더 와 닿는다.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아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지금의 현실이 딱 지옥과도 같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일기 선상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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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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