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견은 없었다.

타고투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돋보였던 투수들이 KBO리그 정규 시즌 MVP와 신인상을 각각 차지했다. 11월 14일 서울 서초구 The-K 호텔에서 열렸던 2016 KBO리그 시상식에서 최고 영광인 MVP에는 외국인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두산 베어스), 생애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상에는 선발투수 신재영(넥센 히어로즈)이 차지했다.

각종 타이틀 부문 시상식도 있었는데, 여기서 니퍼트는 다승(22승), 평균 자책점(2.95), 승률(0.880) 부문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다. 세이브 부문에서는 김세현(넥센 히어로즈 36세이브), 홀드에서는 이보근(넥센 히어로즈 25홀드) 그리고 탈삼진 부문에서는 마이클 보우덴(두산 베어스 160탈삼진)이 가져갔다. 주요 부문 수상자만 봐도 니퍼트가 MVP가 되는 것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타자 중에서 MVP 경쟁자로 떠올랐던 선수들은 지난 시즌 MVP였던 에릭 테임즈(NC 다이노스)와 최형우(삼성 라이온즈) 등이 있었다. 그러나 테임즈는 올 시즌 홈런(40홈런)과 장타율(0.679) 부문에서, 최형우는 타율(0.376)과 안타(195안타) 그리고 타점(144타점) 부문에서 각각 타이틀을 차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성장이 늦었던 메이저리그 시절, 신의 한 수가 된 두산 입단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자라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를 졸업한 1981년생의 니퍼트는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투수였다. 2002 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 전체 선수 순번으로 따지면 459번째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지명되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니퍼트는 최고 시속 150km 후반대에 이르는 속구와 낙차 큰 커브의 조합으로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유망주 TOP 100에 두 차례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주목받는 유망주에게도 메이저리그의 벽은 높았다.

이후 니퍼트는 디백스에서 메이저리그 3년 동안 2승 3패 6.43에 그치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레인저스의 선발진이 리그 최하위 수준이었던 덕분에 니퍼트는 선발과 패전처리를 오가는 스윙맨으로 주로 활약했고, 2009년에는 20경기 출전(선발 10경기)에 5승 3패 3.88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레인저스에서도 니퍼트가 오래 뛸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2010년 레인저스가 창단 첫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덕분에 포스트 시즌 엔트리에는 들어갔지만, 그에게 기회는 없었다. 2010년 젊은 선발진의 힘으로 월드 시리즈까지 올라갔던 레인저스는 더는 니퍼트를 기다려 줄 수가 없었다.

이후 연봉조정자격을 갖추게 된 니퍼트에게 쉽게 계약을 제시하는 구단은 없었다. 마이너리그 옵션이 모두 소진되었지만 풀 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했던 시즌이 없었고, 이 때문에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어 메이저리그 구단을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에 니퍼트는 아시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계약이 결렬된 순간, 두산과의 계약에 성공한 니퍼트는 이후 KBO리그에서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발투수가 될 행운을 잡게 됐다.

꾸준했던 대기만성 투수, 생애 첫 타이틀에 MVP까지


2011년 당시 두산에는 니퍼트와 함께 또 다른 메이저리그 출신 투수가 있었다. 조 토레 감독(현 메이저리그 사무국 부사장)을 따라 뉴욕 양키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활약했던 수준급 구원투수 스콧 프록터였다.

당시 니퍼트는 187이닝을 던지며 15승 6패 평균 자책점 2.55로 성공적인 KBO리그 첫 시즌을 마쳤다. 마무리투수였던 프록터 역시 어느 정도의 임팩트는 보여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저지른 블론세이브가 뼈아팠다. 결국, 니퍼트만 두산에 남게 되었으며, 미국으로 돌아간 프록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니폼을 벗었다.

니퍼트는 이후 성공적으로 KBO리그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고, 평균 자책점이 4점대로 올라가는 시즌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다. 2013년 등에 담이 생기고 경미한 어깨 부상이 생기면서 19경기 등판에 그쳤지만, 등판했던 경기에서는 0.750에 달하는 승률로 여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니퍼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15년 어깨 충돌 증후군에 시달리며 20경기 등판에 그쳤고,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성적이 워낙 좋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후반기에 햄스트링 부상까지 겹치면서 30대 중후반에 접어든 니퍼트가 기량적 노쇠화를 보이는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니퍼트는 시즌이 종료되기 직전 돌아왔고, 포스트 시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포스트 시즌 5경기 등판(1 완투)에서 3승 무패(1 완봉승) 평균 자책점 0.56의 무시무시한 임팩트를 보여준 니퍼트는 선발로 등판한 4경기에서 모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를 기록했다.

정규 시즌에 부진했지만,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하며 팀을 구해냈던 니퍼트는 한국 시리즈 5차전에서도 유희관에 이은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시리즈 승리를 지켜냈고 정규 시즌 부진으로 인하여 떨어졌던 자존심도 회복했다.

2015년 역대 외국인 최고 금액인 150만 달러에 계약했으나 부상으로 연봉이 삭감된 니퍼트는 결국 120만 달러 연봉으로 2016년 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만 35세 시즌인 2016년 니퍼트는 자신의 프로야구 생애를 통틀어 최고의 시즌을 맞이했다.

그리고 9월 13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KBO리그 역대 최고령(만 35세 4개월 6일), 역대 최소 경기(25경기) 만에 시즌 20승에 성공했다. 시즌 막판 불펜의 방화로 다니엘 리오스가 세웠던 22승 기록이 불투명해 보였다.

그러나 니퍼트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구원승을 달성하며 시즌 22승을 기어이 달성했다. 그리고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도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현재 포스트 시즌 34.1이닝 연속 무실점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약으로 니퍼트는 올 시즌 강력한 MVP 경쟁자였던 최형우를 제치고 MVP에 선정될 수 있었다.

5년 만에 탄생한 투수 MVP, 외국인 투수 수상은 9년 만


이리하여 KBO리그는 2011년 윤석민(투수 4관왕) 이후 5년 만에 투수 MVP가 탄생했다. 외국인 투수로 한정하면 2007년 리오스 이후 무려 9년 만에 있는 일이었다. 두산 선수의 마지막 MVP도 2007년 리오스가 마지막이었다.

사실 5~6일에 한 번 등판하는 선발투수로서 시즌 전체에 대한 기여도는 시즌 144경기에 모두 출전할 수 있는 타자들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야수들은 한 경기에 아무리 많아도 타석에 평균 5~6번 정도 들어서게 되며 그 이외에는 수비에 할애하는 시간이 더 많다.

야수들은 상대 팀 타자가 삼진을 당할 경우 자신들이 공을 잡을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발투수의 경우 경기 당 평균 90~100개의 공을 던지며 상대 팀의 타자들을 모두 상대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투수는 경기 출전 수가 타자보다 적지만 그만큼 한 경기에 쏟아붓는 힘이 더 크다.

어쨌든 경기 출전 수가 더 많은 타자가 MVP를 수상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가 MVP를 받는 사례는 선발투수가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지 않는 한 가능성이 매우 작았다. 아메리칸리그 투수 MVP는 2011년 저스틴 벌랜더(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4승 5패 2.40 250탈삼진)가, 내셔널리그 투수 MVP는 2014년 클레이튼 커쇼(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7경기 21승 3패 1.77 239탈삼진)가 마지막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올 시즌 니퍼트의 활약상은 가히 놀라웠다. 역대 단일 시즌 최소 경기 20승을 그것도 역대 최고령 기록으로 세웠으며, 니퍼트를 필두로 하여 마이클 보우덴, 장원준 그리고 유희관까지 판타스틱 4가 맹활약한 덕분에 두산은 역대 최고 승수(93승)로 정규 시즌과 한국 시리즈까지 제패했다. 이러한 점에서 니퍼트의 이번 MVP 선정은 충분했다는 평가다.

15승-150이닝 달성, 신인상 선정된 선발투수 신재영


신인상 부문도 선발투수가 선정됐다. 올 시즌 30경기에 등판하여 168.2이닝을 소화한 선발투수 신재영이 큰 이견 없이 신인상에 선정된 것이다. 신재영은 9이닝당 볼넷에서 1.12개로 최소, 9이닝당 피홈런도 1.01개로 최소 12위에 오르면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1989년 11월 18일생으로 대전 출신인 신재영은 애초 고등학교 졸업 전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 계약이 유력해 보였다. 그러나 1차 지명을 받지 못하면서 신재영은 프로 입단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하여 단국대학교에 입학했다.

단국대 시절에도 뛰어난 활약으로 야구 월드컵 국가대표까지 활약했던 신재영이었지만, 신재영은 대학 졸업 후 나왔던 드래프트에서도 상위 라운드 지명은 받지 못했다. 구속이 떨어진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결국, 8라운드 지명으로 NC 다이노스에 입단했던 신재영은 원래는 투타에서 모두 활약했지만, 체격적 조건 때문에 애매한 선수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 투구 폼을 사이드암으로 바꾸고 난 뒤 고등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선수였다.

그러나 신재영은 퓨처스리그에서도 많이 뛰지 못하고 2012년 4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3년에도 2군에서만 머물다가 넥센 히어로즈의 2:3 트레이드로 인하여 송신영과 함께 이적하게 되었다. 신재영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구단주 이장석 대표가 직접 영입에 관여했다.

이후 신재영은 본격적으로 퓨처스리그 풀 타임을 소화하면서 대학 시절의 모습을 다시 찾았다. 커브의 위력을 되찾았고 슬라이더까지 추가하면서 점차 등판 경기도 늘어났으며, 2014년부터 2015년까지 경찰청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는 주로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이후 전역하여 넥센에 복귀한 신재영은 2016년 뛰어난 활약으로 신인 15승 투수가 되는 데 성공했다. 신인이 15승에 성공한 사례는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 이글스, 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이후 처음이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신재영은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투수 신인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투고타저의 흐름으로 가고 있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KBO리그는 지나친 타고투저로 인하여 10개 구단의 공통적 고민을 만들어냈다. 실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투수를 발굴해내기 어려웠고, 류현진 이후 걸출한 신인 투수의 성장이 없었던 상황에서 신재영이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MVP에서도 투수가 배출되면서 KBO리그는 타고투저 현상 속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평준화시킬 수 있는 사례를 하나둘 만들어가고 있다. 투수와 타자가 골고루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2017년 KBO리그가 더 수준 높은 경기를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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