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KBO리그 FA 시장이 11일부터 문을 열었으나 계약 소식은 한 건도 들려오지 않았다. FA 시장의 풍속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까지 FA 시장은 기간에 따라 협상할 수 있는 대상이 달랐다. 첫 번째 주에는 원소속 구단과의 단독 협상만 가능했다. 이 기간에는 보통 팀에서 꼭 붙잡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선수들이 대박 계약을 끌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 주에는 원소속 구단과의 우선 협상 기한에 계약을 끝내지 못한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FA 시장에 나왔다. 이때는 원소속 구단을 제외한 다른 9개 구단과만 협상해야 한다. 이런 경우 외부 구단에서 '꼭 잡고자 하는 선수들'을 누구보다 빠르게 데려가는 일이 속출했다.

세 번째 주가 되어야 비로소 10개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이미 전 주 다른 팀에서 관심을 보이던 선수들의 '대박 계약' 사례가 속출하는 등 계약을 끝마친 경우가 허다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은 해를 넘겨 원소속 구단과 겨우 재계약하기도. A급 선수들이 최대 4년을 모두 채워 수십 억 원 단위로 계약하는 경우와 대비했을 때 계약 규모가 턱없이 적은 사례까지 있었다. 지난겨울에도 고영민(두산 베어스)이 FA 시장에서 다른 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해를 넘겨 1+1년으로 5억 원에 재계약했다.

기쁘다 NC 지난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리그 플레이오프 4차전 NC 대 LG 경기에서 NC가 LG를 8-3으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NC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 기쁘다 NC 지난 2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6 KBO리그 플레이오프 4차전 NC 대 LG 경기에서 NC가 LG를 8-3으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NC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원소속 구단과의 우선 협상 폐지, 효율적인 협상 가능

이렇듯 원소속 구단과의 협상 기간, 다른 구단과의 협상 기간이 나누어져 있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FA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다며 원소속 구단과의 우선 협상 기간에 재계약을 완료하지 않고 일단 FA 시장에 나왔는데, 자신에 대한 다른 구단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적으면 생기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외부 FA 시장에서 상처를 받고 다시 원소속 구단과 재계약 협상에 들어간다. 원소속 구단에서도 시장 초기보다 몸값을 훨씬 낮춰 재계약 협상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단기 재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

선수가 원소속 구단하고 재계약하고 싶지만, 소속 팀에서 FA가 너무 많아지면 팀에서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선수가 나올 수밖에 없다. A급 선수들에 대한 재계약이 우선이며, B급 선수들에 대한 계약 협상은 미뤄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원소속 구단과의 우선 협상 기한이 1주밖에 되지 않아 시간이 촉박했다. 이럴 경우 B급 선수들은 재계약 협상을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나누지 못한 채 우선 협상 기한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1월 12일 KBO리그 이사회에서는 원소속 구단과의 우선 협상 기한을 폐지했다. 올해 겨울부터는 FA 승인 선수를 공시하면 바로 10개 구단과 모두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게 됐다.

계약 소식 없는 FA 시장 첫 주말, 해외 진출 희망자들에 의한 흐름

이번에 FA 시장에 나온 선수는 총 18명이다. 이 중 A급 선수로 분류되는 선수들은 김광현, 양현종, 차우찬, 최형우 그리고 황재균 등 5명이다. 이들은 다른 여러 팀에서도 큰 관심을 보일 뿐만 아니라 선수들 본인이 해외 진출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일부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신분 조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FA 시장은 스프링 캠프가 열리는 2월 말까지도 선수가 협상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스프링 캠프가 열린 뒤에도 계약하는 선수가 있다. 해를 넘겨 계약하는 선수들이 더 많다. 그만큼 선수와 에이전트 그리고 구단이 공을 들여 협상에 임한다.

이 때문에 해외 진출을 꿈꾸는 5명의 FA 선수들의 경우는 해외 구단들이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기 전까지 쉽게 계약을 체결하기 어렵다. 원소속 구단들의 경우 이들의 해외 진출 의사를 존중해주기로 함에 따라 KBO리그 구단들은 해외 FA 시장의 흐름까지 지켜봐야 할 처지다.

KBO리그 FA 시장은 A급 선수들이 먼저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그에 따라 빈 전력을 채워 나갈 B급 선수들을 순차적으로 영입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A급 선수들이 국내 구단과 계약할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름 쏠쏠한 준척급 선수들과 덜컥 계약하기도 어렵다.

구단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한 선수에게 무리해서 배팅할 수도 없다. 게다가 엔트리 운영 인원도 제한되어 있으므로 선수 활용에서도 기존 선수들과 유기적 활용까지 생각해야 한다. 특정 포지션에 꼭 필요한 선수가 아닌 이상 계약을 먼저 제안하기도 어렵다.

보상 선수 문제도 있다. KBO리그 FA 제도에 의하면, FA 자격을 얻은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될 때 선수를 데려가는 팀에서는 이전 소속 구단에 보상 선수 1명을 보내야 한다. 보상 선수는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는 선수 중에서 이전 소속 구단이 지명하여 데려간다.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 4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5회말 무사 만루, LG 채은성의 몸에 맞는 공 때 박용택이 홈을 밟은 뒤 기뻐하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준플레이오프(준PO) 4차전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경기 5회말 무사 만루, LG 채은성의 몸에 맞는 공 때 박용택이 홈을 밟은 뒤 기뻐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선수 영입에 대한 구단들의 눈치, 향후 흐름은?

이런 문제 때문에 심할 경우 FA 시장이 종료된 이후에 계약할 가능성까지 있다. FA 시장이 종료될 때까지 계약하지 못하면 그 선수는 원소속 구단에서 풀려 자유계약선수 신분이 되는데, 이때 다른 팀과 계약하게 되면 굳이 보상 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데려올 수 있다.

제도의 변화로 인하여 선수와 구단들은 서로 눈치를 볼 가능성이 높다. 일단 모든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으므로 선수들은 일단 구단과 협상 테이블에 앉고 그 날 결판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구단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본 뒤 심사숙고하여 결정할 수 있다.

구단들의 입장에서도 다른 구단들이 선수를 얼마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지 조사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굳이 경쟁력 있는 선수를 데려오겠다고 수십억을 한꺼번에 지르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지난겨울 FA 시장 최고액은 박석민(NC 다이노스)이 기록했다. 당시 박석민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원소속 구단 우선 협상 기한 내에 결론을 내지 못하고 FA 시장에 나왔다. 그리고 NC와 4년 96억 원에 계약하며 FA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FA 시장이 열릴 때마다 매년 최고액수 기록을 경신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렸고, 매년 그 기록이 경신됐다. 올해 FA 시장에서는 100억 원을 넘기는 사례가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까지 있었다.

이번 FA 시장에 나온 A급 선수 중 최형우는 삼성 시절 박석민, 이승엽 등과 함께 중심 타선을 담당하며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선수였다. 2015년까지의 삼성 구단 시스템에 의하면 충분히 100억을 넘기면서 재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삼성 스포츠단과 달리 독립 법인 기업으로 운영되던 삼성 라이온즈는 2016년부터 다른 스포츠단과 마찬가지로 제일기획에서 관리하는 구단이 됐다. 이 때문에 거액 계약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쩔 수 없이 박석민은 삼성과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고 NC로 떠나게 됐다.

최형우, '동점이야'  지난 10월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 말 2사 1, 3루 때 삼성 최형우가 외야 뜬공으로 동점을 만들고 있다

▲ 최형우, '동점이야' 지난 10월 4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 말 2사 1, 3루 때 삼성 최형우가 외야 뜬공으로 동점을 만들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삼성의 경우 이승엽이 2017년까지만 뛰고 은퇴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형우의 활약 가치를 따졌을 때 삼성이 최형우가 만족할 수 있는 규모의 계약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최형우를 붙잡기 쉽지 않다. 게다가 최형우와 선발투수 차우찬까지 해외 진출을 희망하고 있어 그들을 붙잡기 위해선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김광현과 양현종도 마찬가지다. 두 선수는 2년 전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에 도전했던 선수들이었다. 김광현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와 협상까지 했으나 결렬되었고, 이후 비 FA 최고 연봉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양현종의 경우는 포스팅 시스템 결과를 수용하지 않아 어떤 팀이 얼마만큼의 응찰 금액을 썼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역시 2014년에 제1회 최동원 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 선수로 계약을 위해 만만치 않은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KIA는 2015년 3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계약을 해지한 윤석민과 4년 90억 원에 계약한 바 있다.

황재균의 경우는 2015년 겨울 포스팅 시스템에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들 중 그 어떤 구단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절치부심하여 FA 시장에서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황재균의 경우도 그를 붙잡기 위해서 원소속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가 어느 정도의 계약을 제시할지 관심사다.

결국 이들 빅5의 행보에 따라 FA 시장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이들 5명이 모두 해를 넘겨 2017년에 계약하더라도, KBO리그 FA 시장에 남아 있는 B급 준척 선수들이 어느 정도 규모에 계약하느냐에 따라 다른 선수들의 계약 여부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조용한 주말을 보내고 있는 KBO리그 FA 시장이 어떤 흐름을 보일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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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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