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황제 펠레는 "축구는 한 골 차이의 승부가 가장 재미있고, 그중에서도 3-2 스코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경기가 3-2로 마무리됐을 때, '펠레 스코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 카타르와 홈경기에서 3-2 역전승을 거뒀다. 결과적으로 우리 대표팀은 최종예선 3경기 동안 2번이나 '펠레 스코어'로 승리를 챙겼다. 그런데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다. 특히, 실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상대의 공격에 어이없이 득점을 허용하는 모습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목표했던 승점 3점을 챙긴 것은 칭찬할 만하다. 더군다나 우리 대표팀은 전반전 카타르에 역전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후반전에 집중력을 발휘해 승부를 뒤집으면서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 부분을 제외하면 더는 칭찬할만한 부분이 없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모든 경기 승리와 함께 무실점을 기록하며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산뜻했던 출발과 최악의 마무리

 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 대한민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투입된 김신욱이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하고 있다.

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 대한민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투입된 김신욱이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연결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우리 대표팀의 출발은 좋았다.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24, 토트넘 홋스퍼)을 중심으로 초반부터 카타르를 강하게 압박했다. 손흥민이 전반 1분 만에 왼쪽 측면을 파고들며 공격에 가담한 장현수(25, 광저우 R&F)에 중거리 슈팅 기회를 제공했고, 4분 뒤에도 왼쪽 측면에서 수비수 한 명을 제쳐낸 뒤 위협적인 크로스를 연결하면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우리 대표팀은 경기장을 넓게 활용하면서 공간을 활용하는 패스를 통해 공격을 시도했고, 이른 시간 선취골을 뽑아냈다. 대표팀의 주장 기성용(27, 스완지 시티)이 전반 11분 왼쪽 측면에서 볼을 잡은 손흥민의 패스를 받아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고,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기성용은 2분 뒤에도 손흥민이 왼쪽 측면에서 드리블 돌파를 통해 연결한 패스를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반전 우리 대표팀의 좋았던 모습은 여기까지였다. 카타르는 지난 9월 아시아 최종예선 1, 2차전에서 모두 패하며 승점이 절실했다. 그래서인지 과거와는 달리 우리 진영에서부터 압박을 시도하며 공격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기성용의 선제골 이후에는 라인을 더욱 끌어 올리면서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했고, 전반 14분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우리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볼을 잡은 세바스티안 소리아(33, 레크위야 SC)가 돌아서는 움직임을 통해 수비를 제쳐냈고, 페널티박스 안에서 홍정호(27, 장쑤 쑤닝)의 반칙을 통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이 기회를 카타르 대표팀의 주장 하산 알 하이도스(25, 알 사드)가 침착하게 득점으로 연결하면서 경기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후 분위기는 카타르가 주도했다. 페널티킥을 얻어냈던 소리아는 전반 17분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위협적인 슈팅을 선보이며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 하이도스와의 연계 플레이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24분에도 카타르의 역습 상황에서 로드리고 타바타(35, 알 라이안)가 정우영(26, 충칭 리판)에게 반칙을 당하면서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어냈었다.

경기 분위기를 잡은 카타르는 역전 골까지 뽑아냈다. 전반 43분 카타르의 역습 상황에서 하이도스가 오른쪽 측면을 빠르게 침투하던 소리아에 좋은 패스를 연결했고, 홍정호의 태클 실패와 우리 수비진이 허둥지둥하는 사이 타바타-하이도스-소리아로 이어지는 연계 패스를 통해 역전 골을 뽑아냈다.

우리로서는 공격에 가담한 왼쪽 풀백 홍철(26, 수원 삼성)이 수비로 돌아오지 못했고, 홍정호의 태클 실패와 페널티박스 안쪽에 5명의 수비가 있었음에도 공에만 집중하면서 카타르 선수를 놓친 것이 굉장히 뼈아팠다.

교체카드의 성공과 전술변화

 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 대한민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후반 역전골을 넣은 손흥민이 기뻐하고 있다.

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 대한민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후반 역전골을 넣은 손흥민이 기뻐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우리 대표팀은 후반 시작 직전 변화를 줬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해 별다른 활약을 선보이지 못한 석현준(25, 트라브존스포르)을 빼고, 196cm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28, 전북 현대)을 투입했다. 이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후반 초반부터 김신욱이 상대의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수비진과 강력한 몸싸움을 하면서 카타르 선수 2명 이상의 시선을 끌어줬다. 여기에 전반전 최전방에서 활약한 석현준이 오른쪽 측면으로 빠지는 횟수가 많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지동원(25, 아우크스부르크)이 후반전에는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후반 10분 동점 골이 터졌다. 공격에 가담한 홍철이 왼쪽 측면에서 길게 올려준 크로스를 김신욱이 헤딩으로 떨궈줬고, 이 공을 지동원이 잡아 침착하게 슈팅으로 연결하면서 카타르의 골망을 흔들었다. 김신욱은 페널티박스 안에서 카타르 수비진의 시선을 끌어주면서 지동원과 손흥민에게 자유로운 공간 활용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며 동점 골에 큰 공헌을 해냈다.

김신욱의 투입과 함께 분위기를 되찾아온 우리 대표팀은 곧바로 역전에 성공했다. 후반 12분 기성용이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손흥민에 기막힌 패스를 연결했고, 이것이 논스톱 슈팅으로 이어지면서 역전 골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역전 이후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중앙 수비수 홍정호가 후반 20분 소리아를 막는 과정에서 또다시 반칙을 범했고, 이날 경기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으면서 퇴장을 당했다. 곧바로 구자철(27, 아우크스부르크)을 빼고 곽태휘(35, FC 서울)를 투입했고, 스리백으로 전환하면서 수비에 안정을 더하긴 했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카드 관리에 부족함을 드러낸 것은 굉장히 아쉬웠다.

이후 우리나라는 수비에 집중하면서 카타르의 공격을 막아냈고, 간혹 역습을 노렸다. 특히, 김신욱을 최전방에 두고 손흥민을 처진 스트라이커로 활용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결국, 우리 대표팀은 경기 종료 호루라기가 울릴 때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승점 3점을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최악의 수비 조직력을 선보인 대표팀

 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 대한민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 대표팀의 주장 기성용.

6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차전 대한민국과 카타르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 대표팀의 주장 기성용. ⓒ 대한축구협회


우리 대표팀의 수비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 먼저, 우리나라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3경기에서 4실점을 했다. 문제는 A조 최하위를 다툴 것으로 예상하는 중국과 카타르에 2실점씩을 했다는 데 있다. 그것도 원정이 아닌 홈경기에서만 말이다.

이날 우리 수비진은 소리아의 돌아서는 움직임에 수차례 당하면서 불안감을 노출했다. 카타르 공격진의 패스 길목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공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타르의 두 번째 득점 장면에서 페널티박스 안쪽에 자리 잡은 우리 수비 숫자가 더 많았음에도 2번의 패스에 실점을 당한 점은 반드시 되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 수비진의 볼 처리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잔디 상태만큼이나 좋지 않았다. 김승규(26, 비셀 고베) 골키퍼를 포함해 장현수와 홍정호 등 수비 진영에 있던 선수들은 이날 경기에서 불안한 볼 처리를 수차례 보여줬다. 비록 실점과 연결된 결정적인 실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카타르보다 강력한 압박을 선보이는 팀을 만났을 때는 충분히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장면들이 많았다. 수비 진영에서 한 번의 실수는 곧바로 실점으로 이어지는 만큼 빠른 볼 처리와 신속한 판단이 요구된다.

사실 수비 불안의 원인은 수비진에게만 있지 않다. 우리가 카타르의 역습에 쉽게 무너진 결정적인 이유는 공격과 수비의 간격이 너무나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공격에만 치중한 나머지 풀백은 수비에 돌아오지 못했고, 그곳을 대신 막아줘야 했던 수비형 미드필드 역시 자취를 감췄다. 카타르 진영에서 넘어온 짧은 패스 한 번에 우리 최후방이 뚫렸다는 점은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의중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선수 기용도 문제라고 본다. 우리 대표팀은 지난 9월 1일 중국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차전에서 (왼쪽부터) 오재석-김기희-홍정호-장현수가 수비를 책임졌다. 6일 시리아와의 원정경기에서는 오재석-김영권-장현수-이용이 수비진을 맡았다. 이날 경기에서는 오재석(26, 감바 오사카)이 홍철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중국전 수비진과 차이가 없었다.

양 측면 풀백은 기존에 활약하던 선수들이 소속팀에서의 문제를 이유로 자주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중앙 수비진의 경우 매 경기 새로운 선수들이 등장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 수비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만큼 조직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군다나 대표팀은 훈련 기간이 길지도 않다. 월드컵 예선부터 조직력을 만들어나가야 본선 무대에 나갔을 때, 좋은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매 경기 새로운 선수들이 선발로 나서서 문제를 드러낸다면, 강력한 수비 조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3선에 있는 수비형 미드필드의 활용에 대한 문제도 있다. 이날 3선에서 수비적인 역할을 한 정우영의 경우 슈틸리케 감독이 주문한 부분을 모두 완수했는지 의문이다. 카타르 진영에서 넘어오는 패스들이 대부분 소리아나 하이도스에게 향했고, 우리 중앙 수비진과 볼 다툼을 벌인 상황이 많았다는 점은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선 위치에 대표팀의 공격과 수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수비적인 선수를 쓸 바에는 이날 경기에서 스리백의 리베로 역할을 보기도 했던 기성용을 수비적으로 활용하고, 수비 가담 능력이 있는 이재성과 김보경을 선발로 투입하는 것이 대표팀 전력에 훨씬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재성과 김보경은 소속팀 전북에서도 활동량과 축구 감각을 바탕으로 한 수비형 미드필드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많으므로 슈틸리케 감독은 이들의 투입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목표로 했던 승점 3점은 챙겼다. 그러나 지난 9월 열린 경기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현재 우리 대표팀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이 변화를 거부한다면, 자신이 옳다는 것을 경기력으로 증명해 보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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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VS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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