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그만의 '판타지 월드'를 펼쳐보였던 팀 버튼은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 연출을 제임스 보빈 감독에게 양보한 대신,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들고 돌아왔다. 과연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보다 더한 매력이 무엇이었기에, 또 조디뎁이 등장하지 않고도 '기괴한 팀 버튼 월드'를 구현할 캐릭터가 무엇이었길래 팀 버튼이 움직인 걸까?

그 답은 '이상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한 장의 사진 안에 있다. '시간' 속에 숨은 이상한 아이들과 그들의 보호자이자 시간 조종자 송골매 '미스 페레그린', 이들의 신묘한 조합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는 '팀 버튼스러움'을 듬뿍 드러내고 있으니까.

타임 루프, 인내심을 요하는 여정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팀 버튼'표 슈퍼 히어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팀 버튼'표 슈퍼 히어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하지만 이들 신묘한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또래들과 어울리는 대신 마트에서 일하며 사는 제이크(아사 버터필드 분)는 두 눈을 잃은 채 죽은 할아버지로 인해 상심에 빠진다. 그래서 제이크는 그를 치료하고자 한다. 할아버지가 알려준 섬으로 간 제이크는 어릴 적 할아버지가 들려준 동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일상의 삶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어린 소년이 뜻밖에도 자신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 들어간 곳에서 신비로운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 이 장면, 매우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이모네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살던 어린 소년이 뜻밖의 사건으로 자신이 인간 '머글'이 아니라, 마법사라는 것을 알게 되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도입부와 유사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난하거나, 일상의 삶으로부터 도피한 주인공이 '판타지'월드에 빠져든다는 점에서는 감독의 전작 <챨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돌연변이들이 그들의 보호자를 만나 함께 어울려 지낸다는 면에서는 <엑스맨>의 설정과도 비슷하다. 착한 돌연변이와 그렇지 못한 돌연변이의 충돌이라는 지점에서는 더더욱. 또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을 비롯한 주인공 주변의 캐릭터들이 그 남다른 능력으로 '악'을 징벌한다는 점에서는 마블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물의 얼개를 고스란히 이어간다. 랜섬 릭스의 원작 소설을 <엑스 맨: 퍼스트 클래스>와 <킹스맨>의 제인 골드만이 '각본'을 맡았다니, 다른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어디서 본 듯한 슈퍼 히어로물 얼개들이 팀 버튼이란 감독을 만나면 그 색채가 달라진다. 제이크가 '타임 루프'에 들어섬과 동시에 '팀 버튼 월드'도 피어나기 시작한다. 대번에 집채만한 당근을 자라게 하는 피오나(조지아 펨버튼 분)도, 그 피오나가 키운 거대한 당근을 번쩍 들어올리는 브론윈(픽시 데이비스 분)도, 투명인간 말라드(카메룬 킹 분)도, 공기보다 가벼운 엠마 블룸(엘라 퍼넬 분)도, 두 손만으로 찻물을 끓여내는 올리브(로렌 맥크로스티 분), 벌을 키우는 소년(마일로 파커 분)도, 생명을 불어넣는 에녹(핀레이 맥밀란 분)도 팀 버튼의 세계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무엇보다 미스 페레그린의 시간 조종 능력으로 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무한으로 살 수 있는 시공간 속에 신비한 아이들이 살아간다는 설정 자체로 어쩌면 이미 팀 버튼 월드는 완성된 걸지도 모른다. 인형이 살아 칼춤을 추고, 바닷속에 수장되어있던 배가 엠마의 날숨과 올리브의 화력으로 다시 항해를 시작하는 장면에서 '팀 버튼 월드'는 만개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유령신부> 이래 팀버튼의 시그니처였던 해골이 에녹의 도움으로 활약을 보이는 모습은 반갑기까지 했다.

뻔한 히어로물도 팀 버튼을 만나면

 캐릭터는 분명 '팀 버튼'스러운데 뭔가 많이 아쉽다.

캐릭터는 분명 '팀 버튼'스러운데 뭔가 많이 아쉽다. ⓒ 20세기폭스사


영화는 해리포터처럼 '평범한 인간의 삶'에서는 지질했던 제이크가, 아이들을 노리는 나쁜 돌연변이 할로게스트 사냥꾼이라는 자신의 숨겨진 돌연변이 능력을 수용하고, 리더가 되어가는 성장물의 형태를 띤다. 이를 위해 영화 초반 제이크의 캐릭터에 집중하는 반면, '이상한' 아이들의 캐릭터는 그저 깜짝쇼처럼 소개된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제이크가 페레그린의 부재 이후 아이들과 힘을 합쳐 '사냥꾼'으로서 면모를 자랑하는 과정에서 '개연성'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당연한 것이 돼버린다. 눈알을 쌓아놓고 서로 '마음껏 드시라'며 기괴함을 말하고, 페레그린까지 잡아가며 기세등등하던 하얀 눈의 바론(샤무엘 잭슨 분)과 할로게스트들은 아이들에 무기력하게 희화화돼 싱겁게 처단된다.

팀 버튼스러움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이상한 아이들과 미스 페레그린의 캐릭터는 분명 팀 버튼스럽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익숙한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을 나선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건 원작을 소화하는 팀 버튼의 방식이거나, 채 소화를 해내지 못하는 미진함이란 양가적 해석으로 귀결된다.

<챨리와 초콜릿 공장>은 로얄드 달의 동화이다. 영원한 유년에 대한 찬가와도 같은 이 이야기가, 또 다른 엉뚱한 소년같은 팀 버튼을 만나, 원작 이상의 분위기로 업그레이드 됐다. 그에 반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한 서사를 가진 성장기의 소설이다. 물론 원작 자체가 이미 슈퍼 히어로물의 성격을 띠지만 초등용 동화와는 다른 '중층적 성장 서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보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라지만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동화로 편역된 작품이니,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이 가는 낯선 행보와는 비교할 수 없다.

시간이 멈춰버린 '타임루프'의 복잡미묘한 설정이 고민이었을까? 감독은 제이크가 타임 루프에 들어서기까지의 개연성에 집중한다. 또한 타임 루프의 한계와 선택에 문제를 엠마의 입을 통해 구구히 설명한다. 그저 툭 떨어지면 다 해결되었던 '이상한 나라'대신 매일을 되풀이 하는, 전세계에 숨겨져 있다는 타임 루프라는 새로운 소재를 관객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려다 보니 '설명'이 늘어진다. 반면에 제이크나 아이들의 반전이나 성장은 성장 소설이 천착하는 그 고민의 과정을 축약하고 앞서나간다. <해리포터>가 가졌던 해리와 친구들의 고민과 성장이란 묘미를 <미스 페레그린과 아이들>은 간과한다. 미스 페레그린의 능력은 신기했지만 보호자로서 그녀는 무기력해 보인다. 아이들과 멘토 사이에 빚어질 수 있는 성장 서사대신 팀 버튼만의 색채를 내세운 슈퍼히어로적 활약이 앞선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언제나 팀 버튼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마치 에녹의 손길 한번에 칼춤을 추는 해골처럼, 듣도보도 못한 신묘한 캐릭터와 그 활약 자체가 아니었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캐릭터와 신기한 세계와 내적 개연성이 필요한 성장 소설과의 충돌로 인해 생긴 어쩌지 못한 빈틈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보여준 아쉬움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또) 신기하고 희한한 팀 버튼 표 이상한 세계가 좋다면 영화가 만족스러울 것이다. 또 개연성 있는 서사를 기대했다면 완급 조절이 안 된 아쉬움을 남길 것이다. 캐릭터의 소개 같았던 영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처럼 시리즈의 서막이 될지, 단편이 될지는 그 성과가 답해줄 것이다.

평범했던 소년의 성장, 전쟁 중에 보호받지 못하는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각성'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챨리와 초콜릿 공장> 이래 여전히 팀 버튼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이를 '판타지'를 통해 풀어간다. 무능력한 아버지 대신 일을 하느라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하던 소년은 이제 '판타지' 세게에서 아이들의 리더가 되고, 할아버지를 구하고, 나쁜 괴물들을 물리치는 슈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런가 하면 미스 페레그린에 의해 과잉 보호(?)받던 아이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신들의 능력으로 죽을 위기에 몰린 미스 페레그린과 자신들의 타임루프까지 구하는 히어로 집단으로 거듭난다. 마치 '똥' 이야기라면 그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재밌어 하는 아이들에게 페레그린네 아이들의 신기한 능력은 그저 엑스맨급의 흥미로운 판타지일 뿐이지 않을까. 어른들에게는 기괴함으로 보이겠지만. 그래서 이는 여전한 팀 버튼스러움이 반갑고, 아쉬웠던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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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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