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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의 대표 주자격인 식물 약초.
▲ 식물약초 화개장터의 대표 주자격인 식물 약초.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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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재래시장인 5일장 구경 가는 일에 푹 빠졌다. 이번에는 화개장 구경을 갔다. 장을 목적으로 가기는 했지만 속내는 가까운 곳에 평사리문학관(박경리문학관)이 있기에 문학기행 겸 일부러 날을 잡았다.

화개장은 1일과 6일에 서는 5일 장이다. 경남 하동군에 위치한 화개 장날은 조선 후기인 1770년부터 1일과 6일이었다. 가수 조영남씨가 '화개장터'라는 노래를 불러서 더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오늘의 관광지가 되었다.

화개장터 인근에는 평사리문학관이 있고, 섬진강 다리를 건너면 광양매화마을도 인접해 있다. 구례 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쌍계사도 있어서 느긋하게 시간을 가지고 여행 삼아 돌아보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화개장터 노랫말처럼 장날이면 호남 사람들이 영호남을 경계 짓는 섬진강을 건너 자신들이 지은 농산물이나 지역 특산물을 가지고 화개장터로 왔다. 그곳에서 영남에서 나는 물자와 물물교환을 했던 것을 시작으로 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승용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하동에 도착하니 점심때다. 점심을 먹고 장 구경을 가기로 했다. 하동하면 섬진강이고, 섬진강하면 재첩이다. 재첩을 먹자고 치면 몇 천 원짜리 재첩탕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동행한 남편이 얼마 전에 대한민국국제기로협회 주관 대한민국향토미술대전에서 서예부문 대상을 탔기에 한턱 내기로 작정한 터라 거금 2만 원짜리 재첩정식으로 시켰다. 점심상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티를 팍팍 냈다.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국에 재첩전, 재첩회, 민물게장, 민물 게 무침 등. 밥상을 앞에 놓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화개장터의 명성에 비해 주차장은 협소한 편이었다. 길가에 길게 늘어선 승용차들 때문에 관광버스 한 대가 빠져나가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장터 입구에는 규모가 엄청 큰 골동품 가게가 있었다. 별의별 것이 다 있었지만 상품들이 옛것을 흉내낸,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이었다. 옛것의 재현이기는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을 불러오기에는 충분했다.

옛 것들 모양을 재현한 물건이 많았지만 그래도 추억은 불러온다.
▲ 골동품 옛 것들 모양을 재현한 물건이 많았지만 그래도 추억은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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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오면 주세요" 훈훈한 인심

화개장터는 단층 건물을 여러 동 지어서 깨끗하기는 했지만 상설시장이어서, '화개장 역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장의 특성은 확실했다. 파는 상품은 식물약재가 주를 이루었고, 그 외에는 말린 산나물을 비롯한 먹을거리들이었다. 시장이라고 상품이 고루고루 있다고 생각하고 장을 보러 가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슬리퍼나 집에서 쓰는 사소한 용품을 사려고 했는데 그런 것들은 아예 없었다. 잡화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5일장이라면 장돌뱅이들이 차양을 치고 신명 나게 장타령을 부르고, 시골 할머니들은 텃밭에서 거둔 푸성귀를 앞에 놓고 파는 광경을 그리게 된다. 또, 지나가는 손님들을 투박한 손짓으로 부르는 맛과 여기저기서 흥정을 하는 소리, 해가 뉘엿뉘엿 질라치면 떨이를 외치는 소리들이 있어야 제맛인데 그런 광경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참 예스러운 멋은 없었다.

올여름 맹위를 떨치던 더위가 가셨다고는 하지만 9월 말이 가까운 오늘도 몹시 무더운 날이다. 많이 걸을 것에 대비해서 여름옷을 입었건만 등줄기와 얼굴은 땀범벅이다. 겨우 한 시간가량 장을 돌아봤는데 이미 옷은 비를 맞은 것처럼 땀으로 다 젖어서 후줄근해졌다. 

시원한 마실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보니 커피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명색이 재래식 5일 장인데 커피카페라는 이름이 좀 거시기했지만, 한편 시대의 흐름에 따르자면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음 커피 한잔을 샀다. 물을 하도 많이 마셔서 한 잔이면 될 줄 알았는데 턱도 없다. 1000원을 내면 리필을 해 주느냐고 물었더니 된단다. 1000원짜리가 없다. 5만 원 권을 내밀었다. 주인이 배시시 웃으며 묻는다.

"천 원짜리 없어요?"
"예, 천 원 갖고 카드로 계산하기도 미안하고, 현금은 이것밖에 없네요."
"됐어요, 나중에 오시면 주세요."

그 인심이 하도 이뻐서 천 원을 갚으러 나중에 또 화개장터에 갈 요량이다. 시원하게 목도 축이고 더위도 피했으니 나머지 장을 돌아봐야겠다.

나는 재래시장에 가면 꼭 보고 싶어서 일부러 찾는 곳이 있다. 아니, 찾는 곳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바로 딱딱딱 철커덕 찰캉, 신명 나는 가위 장단에 맞춰서 엉덩이춤을 추며 엿을 자르는 엿장수!

시장의 외곽으로부터 한 바퀴 돌다 보니 중앙이라고 볼 수 있는 광장이 나왔다. 그곳에 나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단독으로 지은 조그만 집에서 딱딱 찰캉하고 엿을 자르는 가위 소리가 들렸다. 무조건 달려갔다. 그곳에는 젊고 매력 있는 여인이 신명 나는 가위장단에 맞춰서 엿을 자르고 있었다. 가게 밖에는 북과 장구가 있었다. 정중하게 연주 좀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방금 했는데요, 아고 더워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곧장 밖으로 나와서 장구채를 잡았다. 흥겹고 세련된 연주가 시작됐다. 금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녀는 '가을바람아 불어라' 하며 가을을 초대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정말 신나고 즐거웠다.

요강을 돈통으로 쓰면 돈이 잘 들어온다는 주인장의 말씀!
▲ 요강 요강을 돈통으로 쓰면 돈이 잘 들어온다는 주인장의 말씀!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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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관의 정취

장 구경을 마치고 평사리문학관으로 향했다. 평사리문학관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커뮤니티 정보에는 분명히 평사리문학관이라고 나와 있었는데, 평사리문학관은 보이지 않고 박경리문학관 팻말만 보였다.

한 바퀴 돌아서 웬일인지 알아보려고 박경리문학관으로 갔다. 알아보았더니 평사리문학관은 문을 닫아서 건물만 우두커니 서 있고, 박경리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운영하고 있었다. 관계자는 평사리문학관은 앞으로 문학세미나나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리모델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의 배경, 즉, 토지에 나오는 인물들의 집을 지어 놓아서 그 범위는 넓은 반면 박경리 선생의 작품이 있는 문학관의 자료는 좀 빈약해 보였다. 하지만, 문학관 앞에 세워 놓은 박경리 선생의 전신 동상은 조그마해서 더욱 정겨웠다. 마치 선생의 검소함을 대하는 것 같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두 손을 마주 잡게 했다.

실물과 비슷한 크기의 동상이 정겹다.
▲ 박경리 선생 동상 실물과 비슷한 크기의 동상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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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의 손글씨 원고
▲ 원고 박경리 선생의 손글씨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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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는 이병주 문학관도 있다고 한다. 하루에 다 돌아보기에는 좀 버거워서 이병주 문학관은 나중에 가기로 했다.

화개장터, 그 겉모양은 재래시장과 다르고 예스러운 멋은 없었지만, 덤을 주거나 목을 축이는 물이나 차 종류를 후하게 주는 인심은, 거대한 건물 안에 에어컨을 틀어 놓고 정찰가격을 붙여놓은 백화점이나 일반 마켓보다 정이 있고 특성이 있었다.


태그:#사진, #화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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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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