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며칠 전, 무려 40여 일 만에 서울에 갔다. 딱히 갈 일이 없기도 했지만 더워서 움직이기가 귀찮기도 했다. 2년 6개월 전 시골에 내려왔을 때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상경하면 내려오기 싫어서 뭉그적거렸었다. 그 이유는, 서른이 넘은 자식들이지만 두고 오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져서였다.

아이들 둘 다 출근 시간은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8시쯤이었지만, 큰 아이는 일찍 퇴근하면 밤 11시, 늦으면 새벽 1시~2시, 마감이 있을 때면 아침에 들어와서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가는 생활을 했다. 그러니 시골로 내려올 때면 마음이 무척 무거웠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서울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물어보니 뜻밖의 이야기가...

40여 일 만에 본 서울 집은 사람이 사는 집 같지가 않았다. 언제 밥을 해 먹었는지, 부엌 개수대의 음식물 찌꺼기는 말라붙어 있었고, 화장실은 물 닿는 곳마다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발바닥에선 먼지의 촉감이 그대로 느껴졌고 거실 탁자 주변은 읽지 않은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내가 시골로 내려오면서 이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을 하자, 딸은 집안 청소를, 아들은 분리수거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음식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자고 의논했었다. 자기들 딴에는 일을 분배해서 한다고 정하기도 하고 요일별로 계획도 세우고 했지만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잘 될 리 만무하다.

이틀에 걸쳐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소독만 했다. 일을 너무 무리하게 했더니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다. 아이들과는 문자로 대화를 했다.

서울집은 더러웠다
 서울집은 더러웠다
ⓒ flickr

관련사진보기


"엄마 서울 집에 도착했다."
"예 오셨어요? 오늘도 늦을 것 같아요.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
"그래, 고생이 많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40여 일 만에 자식 얼굴을 보겠다고 상경해서 잠이나 잘 어미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파에 앉아서 졸다가 불편해서 조금만 누웠다가 일어나야지 하고 침대에 등을 붙인 것이 눈을 뜨니 해가 중천이다. 아이들은 언제 들어왔다가 나갔는지 흔적만 남았다.

또 문자를 했다.

"출근했니? 회의 중일까 봐 또 문자만 하네. 엄마 깨우지 그랬어?"

금방 전화가 걸려왔다. 축 처진 큰 아이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엄마, 나는 엄마 얼굴 봤는데. 곤히 주무시길래 안 깨웠어요."
"12시까지 기다렸는데 언제 들어왔어?"
"2시 반쯤, 오늘도 늦을 거예요. 내일 오전에 보고가 있어서."

그렇게 해서 한 지붕 밑에서 자면서도 큰 아이 얼굴을 3일 만에 봤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우리 모녀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벌써부터 마음속에 있던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큰 아이에게 열심히, 아니, 죽기 살기로 일하는 이유를 물었다.

"너 이 일을 계속해야 되겠어? 난 너 건강이 걱정된다."
"엄마는 제가 왜 이렇게 열심히, 아니, 죽기 살기로 일하는지 아마 짐작도 못 하실 거예요. 엄마뿐만 아니라 연금 받아서 사는 사람들은 짐작 못 하지."
"설마 벌써부터 노후가 걱정돼서 노후 준비하는 거야?"
"벌써라니요, 저는 처음 취직해서부터, 그러니까 20대 후반부터 노후 준비하고 있어요.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내가 그만둘 수도 있고."
"결혼은 언제 하고? 아기는 언제 낳고?"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하고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네. 자꾸 그러면 이번 추석에 시골 안 내려갈 거예요. 친척들도 물어볼 거 아니야. 그리고 아무 대책도 없이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애는 어떻게 키워요?"

그러면서 뜻밖의 얘기를 들려줬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노후 얘기와 결혼 얘기가 나왔단다. 다들 있을 만한 얘기들을 하는데 한 친구가 하는 얘기는 자기로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안 서더라는 것이다.

모인 친구 여덟 명 중에 결혼하겠다는 친구와 안 하겠다는 친구가 반반으로 나뉘었단다. 결혼을 하겠다는 친구는 성격이 무난하고 직장도 빡세지 않고, 대신 수입은 미혼 여성의 평균이란다. 결혼을 안 하겠다는 친구는 개성이 뚜렷하고 전문직이고 연봉이 억대가 넘는, 그야말로 다이아몬드 미스들.

여기서 결혼을 하겠다는 한 친구가 '현관 비밀번호를 시댁이나 친정에게 알려줘야 하나'를 화두로 던져, 친구들끼리 중구난방으로 떠들었다고 한다.

'오 마이 갓', 시대가 변한 건가

도어락
 도어락
ⓒ 김경내

관련사진보기


"결혼하면 집 현관 비밀번호를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께 알려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당연히 알려 드려야지."
"아니지, 살림이 엄연히 다른데 왜 알려드려? 그랬다가 아무 때나 문 벌컥 열고 들어오시면 어떻게 해?"
"그럼 친정 부모님께도 안 알려드릴 거야?"
"시부모님한테 안 알려 드리면 친정 부모님한테도 못 알려드리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친정 부모님이 친정집 현관 비밀번호 바꾸고 너한테 안 알려 주면?"

거기까지 얘기가 나가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툭 튀어나온 이야기 주인공의 한 마디.

"그건 아니지, 우리 부모가 사는 집은 내 집인데?"

오 마이 갓! 남의 얘기지만 듣는 부모 입장 참 거시기하다. 어쩌면 내 딸이 친구의 얘기를 하면서 내 의중을 떠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얼른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딸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 건데?"

딸아이는 나를 놀리듯이 빤히 쳐다보며 빙긋이 웃더니.

"글쎄!"

나도 딸아이를 바로 쳐다보고 샐쭉해지며 말했다.

"요것 봐라, 자기네 집 비밀번호 가르쳐준다는 말을 안 하네. 그럼 나도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 바꾸고 안 가르쳐줄 거야."

싸움 말리다가 싸움 난다는 말이 딱 요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남의 얘기로 오랜만에 만난 자식과의 사이가 좀 거시기해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작은 아이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한마디 한다.

"워워! 별걸 다 가지고 신경 세우네. 자자, 오랜만에 아들이 엄마 좋아하는 오리고기 사 드릴게 나갑시다."

이것도 한 시대의 변천인가? 아니면 변하는 시대에 벌어지는 당연한 흐름인가? 약간 섭섭한 마음이 든다.


태그:#노후대책, #현관 비밀번호, #시댁, #친정, #모두 내 것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