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공식 포스터.

영화 <아가씨> 공식 포스터. ⓒ CJ E&M



아가씨가 사는 집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숲길이 한참을 이어진다. 그녀가 모시게 될 곱디고운 아가씨의 방은 아름다운 숲의 가장 화려하고도 고독한 왕벚나무가 바라보는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아가씨 히데코 방의 창 바깥으로 왕벚나무 가지의 몸서리치는 듯한 춤사위가 잦다. 마치 봐달라는 듯 말이다. 눈물을 온 사방에 흩뿌리듯, 흐드러지게 핀 왕벚나무 꽃잎이 바람에 하릴없이 떨어지면 아가씨 방에도 어떤 슬픔이 노크할 것만 같았다.

실로 그랬다. 아가씨 히데코를 모실 하녀로 일하게 된 첫날, 비명에 악 받친 잠꼬대 하는 아가씨를 달래며 그녀의 상처가 얕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숙희. 그 날 밤, 히데코가 숙희에게 털어놓은 악몽의 전말은 왕벚나무와도 관계가 있었다. 과거의 그 날도 바람이 왕벚나무 가지를 크게 춤을 추듯 흔들었고, 그건 마치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모가 그네를 타는 형상으로 보이게도 했다. 히데코와 함께 조선에 왔던 이모와 왕벚나무 중 하나가 소멸했다. 이모가 죽은 후, 베어낼 줄 알았던 벚나무는 잘리지 않았다.

 영화의 중심 배경인, 동서양 건축이 혼합된 코우즈키의 대저택

영화의 중심 배경인, 동서양 건축이 혼합된 코우즈키의 대저택 ⓒ CJ E&M


영화의 도입부는 아가씨 히데코와 왕벚나무의 상징성을 거의 동일화시킨다. 그 둘은 대저택의 주인이자 히데코의 이모부인 코우즈키가 되고자 하는 완벽한 '일제스러움'에 부합된다. 또 그로 인해 코우즈키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왕벚나무와 아가씨의 가치는 코우즈키의 대저택 안에서 다른 의미로도 존재한다.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일본에서 들여온 그것과,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그녀는 코우즈키의 욕망을 메워주는 존재가 된다. 대저택 안에서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이질적인 벚나무와 히데코의 존재는 자본과 정체성을 향한 시대적 욕망을 표출하기 적절한 재료였다.

 히데코의 낭독을 감상하려 코우즈키의 저택을 찾은 이들.

히데코의 낭독을 감상하려 코우즈키의 저택을 찾은 이들. ⓒ CJ E&M


"조선은 추하나, 일본은 아름답다"

토종 조선인 임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히데코의 이모부 코우즈키. 그의 집에서 '타마코'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숙희나, 절대 조선말을 쓰지 못하도록 강요받았던 설정은 영화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코우즈키는 그 시대의 열렬한 일본 숭배자였다. 완벽한 일본인이 되기 위한 뒤틀린 욕망은 조선인 아내를 버리고 일본인 아내와 그 조카까지 조선에 데려와 살게 했다.

그러나 낯선 땅을 밟고 살게 된 아름다운 두 여자를 지배적이고 폭력적이며 변태적으로 짓눌렀던 코우즈키의 행위는 이상하리만치 잔혹했다. 그의 악독한 행위는 자신만큼이나 추한 이들을 위해 변태적인 내용의 책을 매혹적으로 낭독해야만 하는 히데코의 수난과 희생으로 이어졌다. 추잡한 조선인 변태 코우즈키와 아름답기만 한 일본인 아가씨 히데코의 합작품인 낭독. 그건 어쨌거나 코우즈키 그가 주장한 '조선은 추하고 일본은 아름답다'를 증명하는 일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그릇된 이념과 욕망으로만 결집된 이들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아름답다 여기는 이국땅 존재를 무참히 훼손할 때였다.

 숙희/타마코(김태리)를 아가씨의 하녀로 연결시켜준 후지와라 백작(하정우)

숙희/타마코(김태리)를 아가씨의 하녀로 연결시켜준 후지와라 백작(하정우) ⓒ CJ E&M


백작과 숙희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 후지와라 백작은 코우즈키와 히데코의 드러나지 않은 적대적 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죽은 부모를 대신해 히데코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코우즈키. 그가 조카인 히데코와 결혼하여 그녀가 상속받을 재산을 전부 차지하려 한다는 소문이 그냥 헛소문이 아니라는 것을 사기꾼 백작도 전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후지와라 백작으로 신분 세탁을 한 뒤, 코우즈키와 히데코가 사는 저택에 자주 드나든다.

사기꾼 후지와라 백작은 표면적으로는 매혹적인 아가씨 히데코를 은밀히 사랑하는 한 남자였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그녀 소유의 '돈'이었음을 스스로 밝히고 만다. 코우즈키 못지않게 그득한 욕망과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솔직함을 지닌 사기꾼은 그의 목표달성을 위해 하녀 숙희를 아가씨가 사는 대저택에 등장시킨다.

숙희의 등장 이후 아가씨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저질스런 이모부의 저택을 몰래 떠나 도망칠 용기는 후지와라 백작이 아닌 하녀 숙희와의 특별한 유대감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변태적이고 치욕스런 대상에게서 벗어나는 기회를 만드는 일은 늘 공포와 불안에 떨던 심정에 비해서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훗날 "나고야의 귀족을 만나서 목소리의 귀족적인 떨림까지 연구하시는 이모부..." 라고 조롱 섞인 편지의 운을 띄우기도 했던 코우즈키를 향한 히데코의 경멸은, 오래 박혀있던 굳은살을 떼어내는 것과도 같은 쾌감이었다.

 친밀한 감정이 싹튼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하녀 숙희(김태리)

친밀한 감정이 싹튼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하녀 숙희(김태리) ⓒ CJ E&M


아름다운 두 여인

"세상에 태어나는 게 잘못인 아기는 없어요. 갓난아기와 대화할 수만 있었어도 아가씨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예요. 널 낳고 죽을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고."

일찌감치 부모를 잃은 뒤 오래도록 외로움에 떨던 히데코에게 와 닿았던 숙희 방식의 위로는 그랬다. 굳게 닫혀 있던 빗장을 열 듯, 어떤 오래된 금기를 깨듯, 어떤 삭막한 대지 위에 탐스러운 열매가 맺고 꽃이 피는 것처럼 치명적이면서도 기적적이었다. 히데코와 비슷하게 일찍부터 고아로 살았던 숙희. 그녀는 엄마의 죽음과 자신의 출생이 교합하던 그 순간에 '널 낳고 죽을 수 있어서 운이 좋다는' 말로 엄마가 남겼다는 마지막 유산인 사랑을 히데코에게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절대 단순히 여자 간의 동성애로 인한 금기된 에로틱이 전부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진짜 추한 것이 무어인지도 모르는 그들 지배세력이 추하다고 여긴 조선에는 아름다운 숙희가 있었다.

절대 추하지 않은 숙희의 존재가 더러운 악몽과도 같았던 그 세계에서 유일하고도 탁월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진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순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두 여인은, 잔혹한 운명처럼, 충격적이고 견디기 어려웠던 시대의 악랄했던 자들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을 해낸다.

코우즈키의 서재에 수집된 책들을 무자비하게 훼손하고, 코우즈키 앞에서 변태스런 낭독연습을 하던 때마다 입구에서 늘 위협했던 뱀의 형상을 날카롭게 베어내는 일은 그녀들의 업적이 되었다. 대저택의 담장을 넘고 손을 맞잡은 히데코와 숙희를 보는 일은 위태로웠지만 짜릿했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던 두 여인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아가씨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