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데자뷰다. 어떻게든 가을야구로 가는 마지막 티켓을 잡아보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지만 그럴수록 발밑의 수렁은 오히려 깊어지는 모습이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목표로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가고 있는 한화 이글스가 연이은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가을야구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화는 6일 오후 마산구장에서 열린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6-7로 패했다. 경기 초반 5점 차의 여유 있는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9회에는 다시 한번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으나 이번엔 끝내기 패배에 또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한화는 초반부터 NC 에이스 에릭 해커를 상대로 타선이 활발하게 터지며 2회까지 5-0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하지만 마운드가 버텨주지 못했다. 선발 카스티요가 4.2이닝 5실점으로 5회를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다. 5-5로 동점 상황에서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한 장민재는 6회 무사 1, 2루의 위기를 초래했고 다시 박정진이 구원등판하여 만루 위기에서 에릭 테임즈의 병살타를 유도했지만 장민재가 남기고 간 주자인 이종욱이 홈을 밟으며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

이후 양 팀은 한동안 추가득점을 뽑지 못하고 경기는 팽팽한 균형을 이룬채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한화는 9회 다시 한 번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2사에서 마지막 대타로 등장한 신성현이 NC 마무리 임창민을 상대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극적인 시즌 7호 솔로 홈런을 때렸다.

하지만 한화의 기쁨은 잠시에 불과했다. 9회 말 NC가 한화 마무리 정우람을 상대로 선두주자 박민우의 2루타로 포문을 열며 2사 만루 찬스를 엮어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것은 손시헌이었다. 지난 8월 5일 한화전에서 손시헌은 당시 카스티요의 강속구에 맞아 갈비뼈 미세 골절 부상을 당하며 한동안 전력에서 이탈한 바 있다.

김경문 감독은 이날 상대 선발 카스티요와의 악연을 고려하여 손시헌을 선발출전명단에서는 제외했으나 카스티요가 내려간 이후 6회부터 손시헌을 대수비로 그라운드에 올렸다.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던 손시헌은 정우람의 3구를 공략하여 좌측 펜스를 강타하는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며 치열했던 이날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구 악연을 맺었던 한화에 그야말로 보란 듯이 복수한 셈이었다.

통하지 않았던 김성근 감독의 무리수

김성근 한화 감독 복귀 허리 디스크 수술로 입원했던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20일 kt와의 경기에 복귀, 감독석에 앉고 있다.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 ⓒ 연합뉴스


한화 입장에서 이날 역전패 역시 김성근 감독의 무리수가 빚어낸 '인재'였다. 시즌 막바지 '가을야구'를 위한 총력전을 핑계로 무분별한 보직파괴와 노골적인 마운드 혹사를 더욱 강행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김 감독이 승리를 위하여 무리수를 둘 때마다 팀은 갈수록 더 수렁에 빠지고 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카스티요는 지난 2일 대전 LG 트윈스전에 중간계투로 나와 3이닝동안 45개의 공을 뿌린 후 겨우 3일 휴식만의 선발등판이었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잘 버텼지만 투구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4회까지 2점을 내주며 벌써 투구수가 100개에 육박한 상황이었지만 '퀵후크의 대가'답지 않게 김 감독은 카스티요를 좀처럼 교체하지 않았다. 권혁과 송창식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불펜진이 크게 약화된 한화로서는 필승조 투수들의 조기 투입을 최대한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카스티요는 5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모창민에게 동점 3점홈런을 얻어맞고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간 이후에야 마운드를 내려왔다. 투구수는 무려 개인 최다인 125개에 이르렀다. 카스티요는 8월 28일 SK전에서 6.1이닝 동안 93구를 던진 것을 시작으로 열흘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무려 263구를 던지는 강행군을 이어가는 중이다.

여기에 카스티요 다음에 등판한 장민재 역시 선발요원이다. 물론 장민재는 올 시즌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스윙맨으로 활약했지만 김 감독은 지난달 28일 SK전 이후로는 분명히 "장민재를 앞으로 선발로 활용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불과 열흘도 안되어 장민재를 또 다시 불펜으로 돌리며 자신이 했던 말을 스스로 뒤집었다. 2일 LG전 선발출전 이후 불과 4일 만의 등판이다. 장민재는 지난달 3일에도 오른 팔꿈치 통증으로 2주 넘게 전력에서 이탈한 경험이 있는 만큼 더 신중하게 관리를 해줘야 하는 선수다.

8회 구원 등판한 이태양 역시 올 시즌 출전한 23경기 중 19경기에서 선발로 나섰던 투수다. 이태양은 9월 들어 최근 3경기 연속 구원으로 등판했다. 부상 복귀 이후 7월 중순부터 선발투수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이태양은 오히려 컨디션이 올라올 시즌 막바지에 뚜렷한 보직 없는 5분 대기조로 기용되고 있다.

내일이 걱정되는 김성근식 도박 야구

시즌 초반 선발이 없다고 불평하던 김성근 감독은 후반기 불펜이 흔들리자 이번엔 선발로 겨우 자리잡아가던 투수들을 다시 불펜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카드빚 돌려막기식' 운용을 선보이고 있다. 이미 부상전력도 있는 데다 시즌 내내 마구잡이로 등판한 투수들의 투구 밸런스가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든 또 다른 부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프로 선수들에게는 불규칙한 보직과 등판으로 인한 개인 기록의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화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투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멀쩡하던 투수까지 '없애버리는' 감독의 마법이다.

그나마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도박에 가까운 선수운용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한화는 최근 11경기에서 5승 6패에 그치고 있다. 갈 길 바쁜 한화는 롯데에 승률에서 밀려 다시 8위로 내려앉았고 5강권인 기아-SK와의 승차는 다시 4게임 차까지 벌어졌다. 한화가 가을야구에서 멀어지면서 최근 팬들 사이에서 김성근 감독에 대한 퇴진 여론이 또다시 확산되는 등 여론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성적에 대한 불만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오늘만 사는' 야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재의 한화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성적은 성적대로 안나오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후유증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앞으로 팀과 선수들이 감당해야 할지 모를 '내일'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않는 듯 하다. 어쩌면 '내일' 따위는 자신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가을야구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집착만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김성근 감독이 나홀로 오늘에만 집착할수록, 한화는 점점 내일이 더 걱정되는 팀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