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여러모로 만듦새가 아쉬운 작품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여러모로 만듦새가 아쉬운 작품이다. ⓒ CJ엔터테인먼트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팔도를 누비던 김정호(차승원 분)는 3년간의 유랑을 마치고 한양에 돌아온다. 그는 지도를 대량으로 인쇄해 민간에 배포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해 조각장이 바우(김인권 분)와 손잡고 목판 제작에 나선다. 그러던 중 대리청정 중인 흥선대원군(유준상 분)이 그를 찾아와 목판을 나라에 팔라고 제의하고, 흥선대원군을 견제하는 당대의 세도가 안동 김씨 집안까지 대동여지도를 노리면서 김정호는 지도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아래 <고산자>)는 역사적 가치와 완성도를 인정받고 있는 '대동여지도'의 탄생 배경과 더불어 지도학자 김정호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아직 못 가본 길이 내가 갈 길"이라며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조선 땅 구석구석의 지도 데이터를 수집해 온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대동여지도를 민간에 배포하기 위한 그의 막바지 작업과 그 와중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서사의 중심을 이룬다.


대동여지도를 만백성 앞에 '오픈소스'로 공유하겠다는 김정호의 꿈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입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적의 손에 들어가면 나라가 위험할 수 있다"며 목판을 요구하는 흥선대원군에게서는 최근 구글을 상대로 불거진 지도데이터 반출 논란이 떠오른다. 지도를 독점해 권력 유지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흥선대원군과 김씨 집안의 대결은 '정보가 하나의 재산이 된' 이 시대의 부작용을 반영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고산자>가 원톱 주인공인 김정호를 바라보는 시각은 상대적으로 얄팍하다. 그가 '지도에 미친 지도장이'가 된 과정을 단지 '나라에서 배포한 틀린 지도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플래시백으로 간단히 설명한다. 목판 제작 과정에 대부분 비중을 할애하다 보니 김정호가 혼자 팔도를 유랑하며 느꼈을 사명감이나 고독감은 좀처럼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다. 영화 초반, 마라도에서 제주도, 여수, 북한강, 설악산, 백두산 천지 등 수려한 경관 속 김정호의 여정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지만, 서사와는 동떨어진 채 그저 서비스로 제공된 화보 영상으로 기능할 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고산자>가 배우 차승원을 활용한 방식에 있다. 차승원이 연기하는 김정호는 지도를 향한 순수하고 선한 꿈을 지녔지만, 그러면서도 다분히 가볍고 코믹한 캐릭터로 다뤄진다. 딸 순실(남지현 분)과 그를 흠모하는 바우, 여주댁(신동미 분) 사이에서 내내 능청스레 농담을 던지는 그는 나사가 하나 빠진 듯 멍청해 보일 정도다.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굳어진 배우 차승원의 '차줌마' 이미지가 영향을 준 듯도 하지만, 영화는 '삼시 세끼 내가 다 차려줄 수 있다'는 식의 대사를 통해 아예 대놓고 그의 이미지를 재활용한다.

'삼천리 화려강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있는데, 돌연 배우 차승원이 등장해 사람 좋아 보이는 개그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는 지도학자 김정호가 되고, 대동여지도를 지키겠단 사명감으로 결연히 권력에 맞선다. 코미디와 신파를 오가는 와중에 눈이 호강하고, '독도는 우리땅'이란 새삼스런 화두에 돌연 애국심도 일어난다. 뭐가 참 많은데, 오히려 그 때문에 퍽 단순하다. 추석 연휴를 겨냥해 선보이기엔 안성맞춤이고 흥행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결코 <고산자>를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오는 9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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