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의 시원한 덩크슛  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김종규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김종규의 시원한 덩크슛 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김종규가 덩크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농구대표팀은 오는 9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리는 '2016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 챌린지'를 준비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29일에는 아프리카의 복병 튀니지를 초청하여 오랜만에 국내에서 국가대항전 평가전을 치르기도 했다. 한국은 1차전에서 튀니지에 65-59로 승리했고 31일 같은 장소에서 2차전을 치른다.

하지만 값진 평가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정작 농구대표팀을 바라보는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걱정스러운 대표팀의 앞날

남자농구 대표팀 결단식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농구 대표팀 결단식에서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앞줄 오른쪽 네번째), 박한 선수단장(앞줄 왼쪽 네번째), 허재 대표팀 감독(둘째줄 오른쪽 첫번째)이 참석한 선수 및 관계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남자농구 대표팀 결단식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농구 대표팀 결단식에서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앞줄 오른쪽 네번째), 박한 선수단장(앞줄 왼쪽 네번째), 허재 대표팀 감독(둘째줄 오른쪽 첫번째)이 참석한 선수 및 관계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튀니지전에서 농구 대표팀은 익숙한 얼굴들이 대거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팀 주력 멤버인 양동근(모비스), 오세근(KGC인삼공사), 이종현(고려대) 등이 모두 부상으로 줄줄이 낙마했기 때문이다. 역시 이번 대표팀 발탁이 유력하게 거론되던 최준용(연세대), 강상재(고려대), 변기훈(SK), 김시래(상무) 등도 역시 줄줄이 상처를 입었다. 모처럼 국내에서 열린 농구 A매치에서 대한민국 최고 선수들의 활약을 보고 싶었던 팬들에게도 아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속출하는 선수들의 줄부상 소식에, 대표팀은 시작부터 선수 구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며 벌써 몇 차례나 명단을 교체해 야했다. 올해부터 대표팀 전임감독에 임명된 허재 감독은 최상의 전력은커녕 선수들이 제대로 손발을 맞출 시간도 없이 국제대회에서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격렬한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최근 농구대표팀을 둘러싼 부상 대란이 단순한 불운이나 우연이 아니라 '인재'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가 불발된 선수 중 이종현, 강상재, 최준용 등은 모두 대학생 멤버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부상 사유가 하나같이 피로골절이나 족저근막염 같은 증상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같이 과도한 신체 혹사에 따른 피로누적으로 발생하는 부상들이다.

아직 프로에 데뷔하지도 않은 20대 초반의 팔팔한 청춘들에게 혹사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농구선수로서 감당해야 했던 일정을 돌아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종현-강상재-최준용처럼 대학 정상급으로 꼽히는 선수들은 매년 소속팀에서 기본적인 대학농구리그는 물론이고 각급 대표팀 일정까지 1년 내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대학생 국가대표들이 지난 1년여간 소화한 대회를 보자. 이상백배-아시아퍼시픽대회(이상 대학 선발), 윌리엄존스컵-아시아선수권(성인 국가대표), 프로 아마 최강전이나 농구대잔치-전국체전 (이상 소속팀) 등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은 어지간히 프로 선수들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다. 단지 올해만이 아니고 매년 이런 식의 일정이 반복된다. 여러 대회를 넘나들며 각기 다른 전술과 지도자의 요구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보너스다.

차라리 프로 선수들은 비시즌 휴식기나 구단의 체계적인 선수관리 시스템이라도 보장되어있는 것을 고려하면, 단지 농구 좀 한다는 이유로 여기저기 노예처럼 불려 다녀야 하는 일부 대학 엘리트급 선수들의 혹사는 그야말로 무식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프로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김종규, 오세근, 양동근 등 현재 프로와 대표팀을 오가며 활약하고 있는 정상급 선수들은 대부분 대학 시절부터 이런 과정을 거쳤다. 10년 이상 이런 생활을 반복해온 김주성이나 양동근같은 베테랑 선수들은 팬들 사이에서 아예 '노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선수층이 얇은 한국농구판에서 이른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은, 곧 그만큼 일찍부터 혹사에 노출되었다는 의미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한국프로농구(정규시즌 54게임)는 NBA를 제외한 해외 어느 프로리그와 비교해도 선수층과 주전 의존도에 비하여 경기 수가 많고 일정이 빡빡한 편이다. 기량이 검증된 엘리트 선수들은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선수생활 내내 잔 부상과 피로누적을 달고 다녀야 한다.

왜 항상 선수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나

작전지시하는 허재 감독 지난 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허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작전지시하는 허재 감독 지난 29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6 남자농구 국가대표 평가전 한국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한국 허재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한국농구의 후진적인 선수관리는 20년~30전과 비교해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한국농구의 선수 혹사가 구조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농구계 전체를 아우르는 '원칙과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

한국농구는 KBL과 대한민국 농구협회, 대학농구연맹 등 여러 행정단체가 난립해있고, 이들은 사실상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별개의 조직에 가깝다. 농구계 각 행정단체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만 급급하고 소통이나 조율이 되지 않기로 유명하다. 결국, 선수들만 중간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이달 열린 2016 KCC 프로-아마농구 최강전은 한국농구계의 뿌리 깊은 '집단 이기주의'와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아시아 챌린지를 코앞에 두고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들이 훈련 기간에 소속팀으로 돌아가 최강전에 출전했다.

KBL과 대학농구연맹은 최강전 기간을 대표 선수들도 소속팀 일정이 있는 날에는 경기를 소화하고 다시 대표팀에 복귀하도록 했다. 대표팀 운영을 관리 감독해야 할 농구협회는 이를 제지할 의지도 힘도 없었다.

협회가 이렇게 무기력하니 전임 감독이라는 허재 감독도 이런 한심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목소리조차도 내지 못한다. 차라리 프로 감독이 겸임하던 시절보다 더 권한이나 영향력이 미미한 것이 현재 농구대표팀 전임감독의 한계다.

농구계는 이런 상황을 '관행'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지만, 대승적인 선수 보호나 대표팀 운영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다른 종목에선 찾기 어려운 '무개념'에 더 가깝다. 프로-아마 최강전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들의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우선순위를 꼽으라면 당연히 국제대회가 코앞에 다가온 대표팀이 먼저가 되어야 했다. 국제대회 성적이 곧 한국농구에 관한 관심과 인기 회복에도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은 당연하다.

프로와 대표팀의 구분이 가장 확실하게 자리 잡은 축구의 경우, 선수 차출 시기에는 제한을 둘지언정 일단 국가대표에 차출된 선수는 대표팀 일정이 끝나기 전까지 소속팀과 일정을 병행시키는 경우는 없다. 나이가 젊은 선수라고 해도 일단 성인대표팀에 발탁되면 연령대별 대표팀에 중복차출 되는 경우도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다. 농구대표팀도 이제 전임감독제 도입과 상설화가 이뤄진 만큼 과거와는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 짧은 기간에 여러 팀을 오가면 자연히 피로와 부상위험이 커지고, 각기 다른 전술과 시스템에 적응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김시래, 변기훈 등은 모두 최강전에서 뛰다가 부상이 악화하거나 아예 수술대까지 올라야 했다. 이승현, 장재석 등도 최강전 일정을 마치고 숨돌릴 틈 없이 대표팀에 합류하여 튀니지전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가야 했다.

대표팀도 대표팀이지만 장기적으로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선수들 개개인에게 돌아간다. 선수들의 부상 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정작 혹사를 부추긴 농구협회나 KBL, 대학농구연맹, 선수들의 대학-프로 각 소속팀 누구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결국, 다치기라도 하면 억울하게도 선수들만 손해 보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에게만 한국농구에 대한 희생, 애국심, 책임감 등을 요구할 수 있을까. 요즘 선수들이 왜 대표팀을 꺼리거나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젊은 선수들의 의식이나 자기관리 만을 비판하기 전에 구조적인 문제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항상 한국농구를 망치는 가장 위험한 적은 밖이 아니라 바로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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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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