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파일럿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

SBS가 지난 20일 파일럿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를 방송했다. ⓒ SBS


그럴 때가 있다. 새로 개업한 식당에 갔을 때 식당 주인에게 음식 맛이나 인테리어 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참견하고 싶을 때가. 식당 주인이 식당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손님인 자신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연구할 것을 알지만 식당이 마음에 들어 앞으로 더 잘 되어서 자주 찾아오고 싶은 마음에 사족일지도 모르는 말을 꼭 보태고 싶은 그런 경우 말이다.

지난 수요일 SBS에서 방영한 파일럿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이 딱 그랬다. 경험이 풍부한 제작진이니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다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우일지도 모르는 의견을 꼭 말해주고 싶었다.

또 다시 관찰형 예능? 그게 다가 아니다

 SBS 파일럿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

<미운 우리 새끼>는 다 큰 아들이 못미더운 엄마들이 나온다. ⓒ SBS


사실 처음 <미운 우리 새끼>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MBC <나 혼자 산다>와 상당히 유사해 보여 다소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보니 굳이 비슷한 내용을 또 봐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나오기만 하면 출연자들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리는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를 누르고 <미운 우리 새끼>가 시청률 1위를 했다는 것은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미 많이 소비된 관찰형 예능 프로그램이고 심지어 <나 혼자 산다>와 굉장히 유사해 보임에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비슷한 형식의 <나 혼자 산다>에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건 바로 출연한 아들의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보는 '어머니들'의 존재였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가슴 속 깊이 감추고 있던 무언가를 끌어올려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랬기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 노래하는 가사에 그렇게들 눈물이 고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출연자들의 어머니가 스튜디오에서 아들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닌 그저 진행자들만 출연자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면 <미운 우리 새끼>는 지금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김제동이 식탁도 아닌 주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르며 밥을 먹는 모습은 어머니와 스튜디오에 같이 있던 진행자들의 말처럼(농담 삼아 한 말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궁상'이었다.  김제동의 어머니가 스튜디오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 장면은 '재미있는 궁상'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안쓰러워 보이기는 하나 혼자 노래 부르며 밥을 먹는 모습은 부담감 없이 웃고 넘어갈 장면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김제동의 모습을 지켜보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어머니 얼굴이 잡히는 순간, 그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웃음보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가에 눈물을 촉촉하게 만드는 장면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김제동 어머니의 시각으로 김제동을 같이 바라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 웃길 수도 있는 장면이 얼마나 안쓰럽고 마음 아픈지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슷한 포맷의 <나 혼자 산다>는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전개된다. <미운 우리 새끼>도 기본적으로 출연자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그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분명 차별화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나 혼자 산다>와 <미운 우리 새끼>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 주는 것은 어머니들의 시선이다. 어머니의 시선으로 출연자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엄마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겠지만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생각하며 저렇게 마음 아파하고 있으시겠구나, 생각하며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공감이 되고 눈물이 고인다. 그 순간 <미운 우리 새끼>는 재미에 감동을 더한 프로그램이 된다.

파일럿은 좋다, 하지만 정규 프로그램은?

 SBS 파일럿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

이 프로그램, 과연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까? ⓒ SBS


그런데 바로 이 지점! <미운 우리 새끼>는 진지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서 <미운 오리 새끼>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정규 프로그램으로 전환해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면 대답은 "아직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미운 우리 새끼>가 차별성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갖게 해 주었던 어머니들의 시점 때문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파일럿 프로그램만 봤을 때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출연자들을 관찰한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쓰는 육아 일기'라는 표현은 이 프로그램이 단순히 출연자를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이 덜 든 남자들을 성장시키는 데도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이 먹고도 철이 덜 든 아들들을 철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은 당연히 그 아들들의 어머니가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출연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건모는 50살이며, 가장 나이가 적은 허지웅도 곧 불혹을 보는 나이다.

어머니가 혼자 사는 아들을 걱정하고 그 사연을 통해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리게 하기에는 출연자들의 나이가 너무 많다. 사실은 그 정도 나이라면 아무리 철이 늦게 드는 아들들이라 해도 어머니에게 달려가 걱정시키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마땅한 나이 아닌가. 다 큰 아들들이 계속 어머니의 속을 썩이는 모습을 과연 시청자들이 계속 재밌다고 볼 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나이 들어서도 아침부터 소주를 먹는 아들의 모습과 그런 모습을 보며 속 터져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걱정에도 반복해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냥 걱정일 뿐이라고? 작년 11월 종영한 SBS <아빠를 부탁해>를 보면 그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아빠를 부탁해>도 파일럿 프로그램 당시 아빠와 다 큰 딸의 관계 개선을 토대로 한 이야기로 인기를 모으며 정규 편성되었지만 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려야 했다. 그토록 재미있었던 파일럿 프로그램인 <아빠를 부탁해>가 정규 프로그램이 되며 힘을 잃었던 까닭은 아빠와 딸 모두 한두 번의 방송만으로도 관계에 대한 문제점을 찾고 개선할 수 있는 성인이라는 점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출연하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같이 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빠와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성인인 출연진들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이들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더욱이 '다시 쓰는 육아 일기'라는 말을 내세우며 <아빠를 부탁해>에 비해 '성장'이라는 요소를 강하게 넣은 <미운 우리 새끼>라면 이에 대한 해답을 빨리 찾을 필요성이 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방송을 할 때마다 어머니를 걱정시키는 아들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계속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은 아니지 않은가. <미운 우리 새끼>가 다큐가 아닌 예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시청자들은 <인간극장>처럼 내내 진지하기만 한 프로그램을 원하지는 않을 테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엄마'가 빠지게 되면 결국은 다른 버전의 <나 혼자 산다>가 되어 신선함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의 제작진이 이 문제를 가볍게 보지 않고 무겁게 여기기를 부디 바란다. 난 신장개업한 이 식당의 음식을 오래도록 먹고 싶으니까.

미운 오리 새끼 나 혼자 산다 허지웅 김건모 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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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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