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보면 등장 인물들이 담배를 피우려 하는 장면들이 간혹 눈에 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99% 실패로 귀결된다.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에 한해서 다소 관대한 입장을 취하는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의 관리를 받는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흡연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극중 캐릭터를 설명하는 담배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흡연 장면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흡연 장면 ⓒ tvN


KBS는 2002년 12월 1일부터 자사의 모든 드라마에서 흡연 장면을 없애기로 선포했고, SBS도 같은 달 9일 그에 동참했다. MBC는 두 방송사의 행보에 비하면 다소 늦었지만, 2004년부터 흡연 장면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실패의 확률을 자신있게 100%라고 쓰지 못한 까닭은 지난 2015년 tvN <응답하라 1988>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는 보라(류혜영 분)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드라마 왕국'의 역사를 써내가는 tvN의 기개가 놀랍긴 하지만, 제대로 혼이 난 상황에서 당분간은 같은 시도가 반복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방송에서 흡연을 시도하려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어떤 시청자들은 긴장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화면을 응시한다. '저 흡연은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 어차피 방송에 나올 수 없는 장면인데, 뭘! 이걸 드라마 속 흡연의 실패의 미학이라 불러야 하나?

캐릭터 설명을 위해 담배가 유용한 것은 사실이다. <응답하라 1988>이 '깡 좋게도' 보라의 흡연 장면을 편집 없이 내보낸 결정적인 이유는 자기주장이 강한 당찬 여대생 성보라의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물론 '담배'와 '주체성'의 연결성에 100% 동의하긴 어렵지만,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연결 가능성이 높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캐릭터가 변질되긴 했지만, 드라마 초반 성보라는 '걸 크러시(Girl Crush)'의 대표주자였다.

 <미생>에서 오과장과 김대리의 흡연 시도 장면

<미생>에서 오과장과 김대리의 흡연 시도 장면 ⓒ tvN


과거에는 남자 주인공들의 멋을 위해서, 오로지 뽐내기 위해서 흡연 장면이 존재했다면, (여전히 마찬가지지만) 최근에는 캐릭터 설명을 비롯해서 다양한 감정 표현을 위한 장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가령, tvN <미생>에 등장한 수많은 '담배'들은 현실 속 직장인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었고, 특히 오 과장(이성민 분)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장면은 그가 짊어진 고민의 무게를 표현하는 듯했다. (물론 그 흡연도 결국엔 실패했지만)

흡연은 어떻게 '실패'로 종결되나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건, tvN 금토드라마 <굿와이프> 2회에서 여주인공인 김혜경(전도연 분)을 돕는 로펌 조사단 김단(나나 분)이 '흡연에 실패'하는 장면 때문이다. 그는 검찰청에서 사건 관련 정보를 빼내려다 실패하고, 박도섭(진석호 분) 검사와 접선하기 위해 버스 승강장에 앉아 기다린다. 그러다 제법 리얼하게 담배를 입에 문다. 자, 실패의 순간이 다가온다!

 <굿와이프>에서 김단의 흡연 장면

<굿와이프>에서 김단의 흡연 장면 ⓒ tvN


라이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박 검사가 등장해 이렇게 말한다. "담배 끊어, 몸에 해로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김단은 담배를 치워버린다. 아, 힘이 쭉 빠진다. 실망이다. <응답하라 1998>의 보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그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토록 당찬 김단은 말을 참 잘 듣는다. '그동안 몸에 해로운지 몰랐나?' 차라리 '나 담배 연기 싫어!'라는 말에 반응했다면 몰라도.

이 실패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물론 흡연 장면은 규제의 대상이기 때문에 제작진은 궁여지책이자 타협점으로 담배를 입에 물거나 손가락에 끼우고 있는 장면으로 '태우는 장면'을 대체했을 것이다. 하지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연기를 입밖으로 내뱉는 행위가 빠진 흡연 시도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팥 없는 찐빵'과 무엇이 다를까.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오충남이 흡연을 시도하려는 장면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오충남이 흡연을 시도하려는 장면 ⓒ tvN


차라리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오충남(윤여정 분)이 길가에서 담배를 입에 물다가 지나가는 여성들이 매섭게 째려보자 담배를 다시 집어넣으며 "안 피울게요, 안 피우면 되잖아요, 길에서도 못 피우고 그럼 어디서 피워"라며 읊조리는 장면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집어넣고마는 다른 드라마에 비해 영리하기라도 하지 않은가? 캐릭터뿐만 아니라 감정 묘사, 게다가 흡연자를 대변한 저 의미심장한 코멘트까지!

(공교롭게도 tvN이 그 대상이 됐는데) 만약 '캐릭터' 때문에 굳이 흡연을 시도하려는 장면을 집어 넣을 의도라면, 그 실패를 좀더 영리하게 꾸며내길 바란다. 타인의 '주의(注意)'에 의해 흡연에 실패하는 등장 인물로부터 어떤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감정 표현을 위해 흡연 시도 장면을 넣을 생각이라고 해도 고민을 해보자. 실패한 흡연이 어떤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거세된 욕구가 시청자들을 답답하게 만들진 않을까?

P.S.
참고로 버스 승강장과 그 주변에서의 흡연은 일부 지역에서는 '제재 대상'이다. 인천시의 경우 금연 환경 조성과 간접흡연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택시 승강장(64개소), 버스 승강장(202개소), 전철역 출입구(211개소) 등을 금연 지역으로 지정했다. 물론 제때 단속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이유와 잦은 고장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긴 했지만 '금연 벨'을 설치하는 등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인천뿐만 아니라 익산시, 보령시 등도 버스 승강장을 금연 지역으로 추가 지정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글쓴이의 개인 블로그(http://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흡연 장면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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