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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양파, 마늘 농가들은 가격 폭락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양파의 경우 한 해 전 1㎏당(상품 기준) 평균 1300원 정도였던 가격이 절반도 안 되는 5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밭을 갈아엎기도 했다.

농산물의 가격 파동이 심화되고, 10여 년 동안 연평균 농업소득이 1000여만 원 안팎에서 정체돼 있다. 이 때문에 농산물 가격안정·농가 소득안정 정책의 전면 개편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관련기사 : "양파 마늘 값 너무 내려"...밭 갈아엎기 이어 적재 투쟁).

전남 나주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김인철(문평면)씨는 "2014년 가격 폭락 때 직접 투자비용의 절반이나 건졌는지 모르겠다, 가격이 폭등한다고 농민에게 큰 수익을 돌아오는 구조도 아니다"라며 "가격도 안정시키고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저가격 보장제 도입...농가 소득안정·계약재배 확대로 수급안정기대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도입했거나 검토하고 있는 지자체가 늘어나자 농식품부가 제지하고 나섰다. 전남 나주시는 지난해 조례를 제정, 올 하반기부터 시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정부의 제동에 잠정 보류됐다. 가격 폭락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최저가격 보장 제도,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농민단체의 꾸준히 요구해 왔던 대표적인 농업 정책이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열린 전국농민대회 모습이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도입했거나 검토하고 있는 지자체가 늘어나자 농식품부가 제지하고 나섰다. 전남 나주시는 지난해 조례를 제정, 올 하반기부터 시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정부의 제동에 잠정 보류됐다. 가격 폭락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최저가격 보장 제도,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농민단체의 꾸준히 요구해 왔던 대표적인 농업 정책이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열린 전국농민대회 모습이다.
ⓒ 민중의소리 김주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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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마늘·배추 등 7개 노지채소를 대상으로 정부가 가격안정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농민들의 불만이 크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정부 보전금이 생산비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가격이 폭락할 때, 정부는 산지폐기·수매비축(공급량 조절)을 추진한다. 이 때 농민들에게 생산비의 일부만 보전금으로 지급한다.

이에 전국농민회총연맹(아래 전농)은 "정부의 수매비축, 산지폐기 사업은 수매량이 미비하고 수매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돼 유명무실하다"라며 "최저가격(정부 보전금)을 인상하고 가격안정·소득안정 정책을 전면 개편하라"고 요구해 왔다.

전남 나주시는 농업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도입했다. '시장가격'(전국 주요 도매시장 평균가격)이 미리 정한 '최저가격' 미만으로 떨어질 때, 최저가격과의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다.

나주시는 지난해 10월 '농산물 가격안정 및 최저가격지원에 관한 조례'(아래 최저가격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대상 작물·최저가격 책정 기준·지원 범위 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했다.

지난 4∼5월 '최저가격 지원협의회'(협의회)와 '가격안정기금 운용심의위원회'(심의위)의 심의를 거쳐, 올해 지원 대상 작물을 건고추와 양파로 결정했다. 지원 기준이 되는 최저가격은 '전체 생산비+생산비의 5%'로 책정했다. 주출하기 도매시장의 3년 평균 가격과 생산비를 고려한 결정으로, 일부 생산비만 보전하는 정부의 지원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농민 입장에서는 생산비보다 높은 최저가격을 지원 받을 수 있다. 또 가격 변동성은 크지만 정부의 지원 대상(7개 노지채소)에서 제외된 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도 최저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인철(문평면)씨는 "조례가 제대로 시행되면 가격 폭락 걱정도 뚝 덜어지고, 정부 제도보다 더 진전된 기준으로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앞으로 대상 품목을 늘려 더 많은 농민이 지원받고, 이번 계기에 정부도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라고 주문했다.

2020년까지 기금 100억 조성... 대상 품목 단계적으로 확대

전남 나주시 등 지자체가 농가 소득안정을 위해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나주시는 올 하반기에 건고추와 양파를 대상 품목으로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시범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제동으로 시행이 잠정 보류됐다. 사진은 나주 농민들이 양파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남 나주시 등 지자체가 농가 소득안정을 위해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나주시는 올 하반기에 건고추와 양파를 대상 품목으로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시범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농식품부의 제동으로 시행이 잠정 보류됐다. 사진은 나주 농민들이 양파를 수확하고 있는 모습이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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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가 농산물 가격안정 등을 위해 '농산물 가격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 조례'(아래 가격안정조례)를 제정, 시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이다. 과잉생산 농산물의 수매·저장 등 가격안정 시책을 추진하고, 5년 동안 기금 50억 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느 지자체보다 먼저 가격안정 시책을 마련했지만 실질적으로 시행된 적이 없다. 그동안 나주 농민들이 가격 파동을 겪었지만 기금이 집행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가격과 소득안정 정책은 깊이 연관돼 있지만, 정부의 시각과 정책처럼 공급량 조절을 통해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주목했다.

민선 6기 들어 나주시는 가격안정조례의 한계와 개선 방향 등을 점검하고 타 지역의 사례를 분석하며 가격안정과 농가 소득안정을 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최저가격 보장을 통해 실효성 있는 농가 소득안정 정책을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최저가격 지원조례를 제정했다. 실질적인 '최저가격(혹은 생산비)' 보장 제도의 성격이 강해졌다.

최저가격 책정 등 핵심 사항을 협의·심의하는 협의회와 심의위에 농민단체와 농협 관계자의 참여 폭을 넓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은 "가격폭락 때 무엇을 기준으로 최저가격을 정하느냐가 핵심인데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책정 기준에 차이가 있다"라며 "제도의 한계 때문에 실제 생산비에 미치지 못하는 정부 정책을 지자체(조례)가 보완하는 의미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나주시는 2020년까지 100억 원 이상 규모로 가격안정기금을 조성한다는 목표다. 우선은 시비로 매년 10억 원씩 출연하기로 했다. 폐기된 가격안정조례 시행으로 모아 둔 50억 원은 모두 기금으로 이입했다. 나주시가 유예 기간을 두지 않고, 올해 시범운영 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확보한 기금 때문이다.

모든 농가가 지원 대상은 아니다. 농협과 조합공동사업법인의 품목별 계통출하 조직과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재배 면적이 1000㎡ 이상 돼야 한다. 반면 전체 품목의 재배 면적이 1만㎡를 넘는 농가는 제외된다. 농가의 빈부격차를 최소화하고 중·소농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서다.

정부 어깃장에 시범운영 잠정 보류..."협의 통해 차질 없이 추진"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 시행을 위한 조례 제정 요구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본격화 됐다. 당시 전농 광주전남연맹과 시민사회단체는 전남도 최저가격 지원조례 제정 운동을 벌이고, 주민 1만5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제정을 청구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 최저가격 지원조례를 제정하거나 검토하고 있는 지자체는 40여 곳으로 크게 늘었다.(자료 사진)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 시행을 위한 조례 제정 요구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본격화 됐다. 당시 전농 광주전남연맹과 시민사회단체는 전남도 최저가격 지원조례 제정 운동을 벌이고, 주민 1만5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제정을 청구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 최저가격 지원조례를 제정하거나 검토하고 있는 지자체는 40여 곳으로 크게 늘었다.(자료 사진)
ⓒ 전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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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뿐 아니라 계통출하 조직에도 중요한 역할이 맡겨졌다. 조례에 따르면, 최저가격 보장 지원금은 원칙적으로 가격안정기금과 품목별 계통출하 조직의 자조금에서 각각 50%씩 분담해 지급한다. 이에 대비해 계통출하 조직은 시장가격이 최저가격보다 높게 형성될 경우, 그 차액의 일부를 자조금으로 조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조금 조성의 기준가격·방식과 용도는 심의위가 결정한다.

출하 조직이 수익금 일부를 가격안정기금으로 환원하는 방식이다. 박병헌 나주시 농업정책과 팀장은 "시행 초기에는 출하 조직의 자조금 조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당분간 시 출연금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기금만으로 지원 사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라며 "장기적으로 계약재배가 활성화 되고 출하 조직이 자생력을 갖추면 소득안정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농민들의 호응과 기대 속에 5월부터 추진하려던 시범사업(건고추와 양파)은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최저가격 보장 제도를 도입했거나 검토 중인 지자체가 계속 늘어나자 농림축산식품부가 제동을 걸었다. 농식품부는 지원 대상 품목의 생산과잉 유발, 그로 인한 가격하락, WTO 협정 문제, 정부 정책과의 혼선 등을 이유로 "조례 시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관련기사 : 제동 걸린 농산물 최저가격보장 조례, 왜?).

이동탁 나주농민회 사무국장은 "가격이 많이 오르거나 폭등하면 수입량을 늘려 가격 떨어뜨리고, 폭락할 때는 현실성 없는 지원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농민들이 떠안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소득안정이 되겠느냐"며 "오죽하면 재정도 열악한 지자체가 나섰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지자체의 조례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와 최저가격 보장제 법제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며 "정부 정책 개편, 정부와 지자체 간 역할 분담 등으로 논의가 확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나주시는 농식품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등을 검토한 후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나주시 한 관계자는 "가격 폭락으로 생산비도 건지지 못해서 다음 해 농사를 걱정해야 하는 농민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가 최저가격 보장 제도"라며 "민선 6기 나주형 자치농정의 역점 사업인 만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태그:#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제도, #나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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