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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나주시가 농가 소득안정과 계획영농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농업인 월급제'가 호평받고 있다. 실제로는 '무이자 영농자금 대출 제도'이지만, 농사철 돈 가뭄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월급처럼 매달 지급받은 자금은 벼 수매 이후 되갚고, 이자는 지자체가 전액 보전해 준다.(자료 사진)
 지난해부터 나주시가 농가 소득안정과 계획영농을 지원하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농업인 월급제'가 호평받고 있다. 실제로는 '무이자 영농자금 대출 제도'이지만, 농사철 돈 가뭄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월급처럼 매달 지급받은 자금은 벼 수매 이후 되갚고, 이자는 지자체가 전액 보전해 준다.(자료 사진)
ⓒ 나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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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농사를 짓는 농민은 봄에 돈 가뭄으로 엄청나게 쪼들린다. 농자재 구입, 생활비, 아이들 학비에 쓸 곳은 많은데 여유 돈이 없다. 목돈은 필요하고, 그래서 지인에게 돈을 빌리거나 일반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답답하다. 매달 '월급'이란 것을 받으니까 이런 부담이 많이 줄었다."

전남 나주에서 28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효양(56·동강면)씨는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농협에서 지급하는 '월급'을 받고 있다. 김씨가 받은 월급은 월 100만 원으로, 나주시의 '농업인 월급제'를 통해 받은 영농자금이다.

나주시는 지난해부터 농가 소득안정과 계획 영농을 지원하기 위해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다. 6개 읍·면 지역 162개 농가가 김씨처럼 농업인 월급제를 통해, 4월부터 10월까지 매달 30만∼100만 원을 받았다.

실제는 '무이자 대출'이지만... "돈 가뭄에 해갈이" 

농업인 월급제라고 하지만 지자체가 농민들의 기본소득을 자체 예산으로 보장하는 제도는 아니다. 지급 받은 월급이 '농민의 소득'이 아니다. 농협과 벼 수매 약정을 체결한 농가를 대상으로, 벼 출하량에 따라 지급 총액을 정하고 월급처럼 매달 30만∼100만 원씩 쪼개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나주시의 경우 매달 20일이 '월급날'이다. 해당 농협이 자체 자금으로 월급처럼 매달 지급한 후, 농민들은 벼 수확 후 미리 빌려 쓴 자금을 한꺼번에 갚는다. 대신 이자는 나주시가 전액 보전한다.

실제로는 농민이 다시 갚아야 할 대출금인 셈이다. 농산물 매출채권을 담보로, 월 단위로 나눠 지급하는 '이자가 없는 영농자금 대출 제도'다. 지난해 총액으로 최대 700만 원, 월 100만 원으로 그리 큰돈이라 할 수 없다. 농가 소득이 늘어나거나 소득안정에 한계가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농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정책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대학생 자녀 2명을 둔 김효양씨는 "봄철이 되면 농사 준비에 생활비에, 학비에 써야할 곳이 많아 일반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 된다"라며 "갚아야 할 빚이지만 이자는 지자체가 지원해 주니 반응이 좋더라"고 말했다.

정순범(70·왕곡면)씨는 "(월급제가) 빚일망정, 남에게 돈 빌리고 마이너스 통장 신세 안 지니까 빚이 더 늘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라며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쓰임새로 치면 우리에겐 큰돈이다, 은근히 20일(월급제 지급일)이 기다려진다"고 만족했다.

농작물의 수확 시기, 시설 농사 여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벼같은 농작물의 경우 가을이 돼야 농민들은 소득이 발생한다. 그러나 한창 농사철에는 자금 융통이 쉽지 않다. 농가는 필요한 비용을 먼저 빌려 쓰고, 농작물 수확한 후 소득이 발생하면 부채를 갚는다. 다시 일년 농사가 시작되는 2∼3월부터 또 빚을 내는 방식이 되풀이 된다.

월급제 '호평'... 나주시, 지급액·대상자 확대

이 점에 주목한 것이 농업인 월급제다. 농민들은 특정 시기에 소득이 몰리는 탓에 영농자금 등이 필요할 때마다 대출을 받으며, 일상적인 생활자금마저 부족하다. 농업 경력이 길수록 만성적인 부채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악순환을 다소나마 완화하는 성과를 보이면서 농업인 월급제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3년 경기도 화성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이후 전북 임실군·진안군 등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지자체에 따라 지원 대상 농가·작물, 지원 금액, 지급 기간 등에 차이는 있다. 이자뿐 아니라 월급제에 들어가는 전체 비용(대출 총액)을 지자체 예산으로 확보해 시행하는 곳도 있다.

전남지역에서는 나주시가 가장 적극적이다. 올해로 2년째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주시는 지원 대상 지역을 6개 읍·면에서 전지역(19개 읍·면·동)으로 확대했다. 벼농사를 짓는 나주 농민이라면 신청할 수 있다.

나주시·농협·농업인 단체 등으로 구성된 '농업인 월급제협의회'는 최근 회의를 열고 "지급 금액이 적다"는 농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상한 금액을 월 100만 원(총 700만 원)에서 150만 원(총 105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지급 기간은 7개월로 똑같지만, 지급 시기도 4월에서 3월로 앞당겼다.

월급제에 참여하는 농협도 4개에서 12개로 늘었다. 나주시는 애초 올해 500개 농가를 대상으로 시행할 계획으로 시비 7500만 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월급제를 희망하는 농민들이 예상보다 많아 예산을 2배 이상 늘리기로 했다. 나주시는 지난 16일 "월급제 신청자 689명 모두를 지원 대상자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162명)에 비해 대상 농가가 4배 이상 확대된 것이다.

고광길 나주농민회장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피부로 느끼기에 큰 도움이 되니 월급제를 희망하는 농가가 많다"라며 "농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급 시기, 지급 한도 등 개선 방향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득안정에는 근본적 한계... "정부 주도 대책 필요"

올해 2년째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주시는 지원 대상 지역을 6개 읍·면에서 전지역(19개 읍·면·동)으로 확대했다. 대상 대상은 지난해 162개 농가에서 689개 농가로 크게 늘었다. 상한 금액은 월 100만 원(총 700만 원)에서 150만 원(총 1050만 원)으로 상향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농업인 월급제 협의회 회의 모습.(자료 사진)
 올해 2년째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주시는 지원 대상 지역을 6개 읍·면에서 전지역(19개 읍·면·동)으로 확대했다. 대상 대상은 지난해 162개 농가에서 689개 농가로 크게 늘었다. 상한 금액은 월 100만 원(총 700만 원)에서 150만 원(총 1050만 원)으로 상향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농업인 월급제 협의회 회의 모습.(자료 사진)
ⓒ 나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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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주로 정부의 소극적 대책이 주류다. 조영효(56·동강면)씨는 농업인 월급제가 보다 근본적인 농업인 소득안정 정책으로 진화하기를 바랐다. 조씨는 "FTA로 농작물 가격은 하락하는데 농자재·인건비 등이 상승하고 있어 농업 소득이 줄어들고 있다"라며 "이자 부담이 없고 매달 일정액이 지급되면서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 차원의 농촌 소득 보장 안정책이 절실하다"라고 주장했다.

김효양씨도 농업인 고령화, 청장년층의 귀농 활성화 등을 언급하며 "지자체의 정책과 지원에만 기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정부도 월급제뿐 아니라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 기초 농산물 소득보장제 같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나주시는 장기적으로 월급제 대상 작물도 확대할 방침이다. 경기도 화성시의 경우, 대상 농가가 벼에서 채소·과수·원예 등으로 확대해 왔다. 나주시는 나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배 농가 등 과수 농가도 지급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염행곤 나주시 농업정책과 양정농지팀장은 "농민들의 호응이 예상보다 좋아 신청 농가가 크게 늘어났다"라며 "대상 작물, 농가 규모 등에 대해 농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월급제가 안정적으로 시행되도록 제도를 개선해 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염 팀장은 "근본적인 한계, 사업 명칭(월급제)에 대한 문제 제기를 잘 알고 있다"라며 "근본적인 농민 소득안정, 경영안정대책을 수립 시행하는 데 정부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태그:#나주시 혁신사례, #나주시 농업인 월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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