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룹 짭짭.

짜장면 면발을 빨아들이는 소녀의 '먹방 소리'가 정적 속에서 또렷하다. 몸을 떨며 짜장면의 황홀한 맛을 표현하는 모습이 카메라 가득 잡히고, 연이어 패널과 평가단의 감탄사가 이어진다. 이게 끝이다. 걸그룹이 음식 먹는 것을 지켜보는 JTBC 예능프로그램 <잘 먹는 소녀들>, 이렇게 참신(?)해도 괜찮은 걸까.

관음의 대상이 된 소녀들

 걸그룹 구구단의 멤버 미나가 닭뼈를 발라먹는 모습.

걸그룹 구구단의 멤버 미나가 닭뼈를 발라먹는 모습. ⓒ JTBC


지난달 29일 첫방송한 이 프로그램은 걸그룹 멤버가 직접 야식을 추천하는 것이 기획의도라지만, '진짜 의도'는 뻔해 보였다. 이미 많은 누리꾼이 불쾌함을 드러냈듯, 관음증 코드가 여실히 드러난 것. 에이핑크의 남주가 닭발을 빨아먹거나 구구단의 강미나가 닭뼈를 발라먹는 입모양이 클로즈업 되고 그 모습을 스튜디오의 패널들과 방청단, 그리고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들이 지켜본다. 패널과 방청단의 80%가 남성이다.

보통의 '먹방 프로그램'들은 음식이 클로즈업 되지만 <잘 먹는 소녀들>에선 먹는 사람, 소녀들이 부각된다. 심지어 슬로우모션으로 그녀들의 입술 움직임이 그려진다. 소녀들은 음식의 맛에 대해 딱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맛있게 잘 먹는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 오히려 말 없이, 먹는 일에만 심취한 모습은 진정성(?)을 자아내며 우승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한다.

조세호, 김숙, 양세형은 그녀들의 먹는 모습을 스포츠경기를 중계하듯 중계하고 해설한다. 그들도 음식에 대한 언급보다는 소녀들이 어떻게 먹는지를 설명할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걸그룹' 멤버들만 모아놓고 그들의 '먹는 모습'만을 주구장창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까? 소녀들을 성적 대상으로 놓고 바라보려는 관음적 시선으로 해석하지 않고는 이유를 찾기 힘들다. 더군다나 구구단의 강미나와 트와이스 쯔위는 겨우 1999년생이다.

"어리고 예쁜 여자 괴롭히기, 더 정확하게 말하면 '통제하기'가 국민(=남자)의 오락인 나라." - @wdf***

"저런 프로가 아이돌을 어떻게 생각하고 여자를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지, 현대 우리나라의 시선이 어떤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닐까." - @sod*****

"수십명이 여자애 하나 먹는 거, 예쁘게 먹나 안 예쁘게 먹나 평가질하고 현장에서 모자라서 문자투표를 하고, 평가기준이랍시고 입을 우악스럽게 벌리지 않고 조신하게 먹나를 보겠다는 말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수가 있나." - @03_******

<잘 먹는 소녀들>에 대한 몇몇 트위터리안의 반응이다. 이처럼 프로그램을 시청한 일부 누리꾼들은 어린 여성을 대하는 프로그램의 '무례함'에 불편함을 토로했다. 이 프로그램을 폐지하지 않으면 JTBC 프로그램 전부를 보이콧 하겠다는 의견도 눈에 띈다.  

소녀들아, 정말 그거 맛있어?

 트와이스의 다현이 짜장면을 먹는 모습

트와이스의 다현이 짜장면을 먹는 모습 ⓒ JTBC


걸그룹은 다이어트 때문에 평소에 마음껏 먹지 못하니, 마음껏 먹게 해주겠다는 제작진의 설명. 하지만 당사자들이 표현하는 먹는 즐거움이 진짜처럼 보이지 않았다. 맛있어 죽겠다는 리액션은 다소 과장돼 보였다. 음식을 씹느라 오물거리는 나의 입을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바라보고 있는데, 그 '맛있음'을 편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은 최선을 다해 탐스럽게 먹고서 대결에서 이긴다. 그러면 8강을 지나 4강에 진출하게 되고 계속 음식을 먹고 리액션을 취해야 한다. 이것은 상인가, 벌칙인가? 이를 놓고 역시 누리꾼들은 가학성과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했다. 평소 다이어트를 해야하는 소녀들이 갑자기 폭식하는 모습은 건강에 해로워보인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은 네이버로 생중계된다. 그 시간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늦은 시간에 과식해야만 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은 어떨지 <잘 먹는 소녀들> 제작진은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보여지기 위해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보는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면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잘먹는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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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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