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례>의 포스터. <삼례>는 마치 예술영화계의 <곡성> 같은 작품이다.

영화 <삼례>의 포스터. <삼례>는 마치 예술영화계의 <곡성> 같은 작품이다. ⓒ 인디플러그


상업영화 <곡성>이 좋은 흥행성적을 보인 가운데 역시 지명을 제목으로 한 독립영화 <삼례>가 23일 개봉한다. 지명을 제목으로 하는 영화는 흥행 성적이 좋거나, 또는 평단의 호평을 받거나, 국내외 영화제 등에서 주목받는 게 공통된 사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삼례> 역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정됐던 영화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역량 있는 독립영화 감독을 선정해 제작을 지원하는 전주영화제의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올해 미국 씨네퀘스트영화제 경쟁부문과 제34회 우루과이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험성이 들어간 독특한 색깔도 시선을 끄는 작품이다.

특히 최근 흥행하고 있는 <곡성>과 닮은 부분이 엿보인다는 것도 <삼례>가 품고 있는 특징이다. <삼례>가 먼저 만들어졌고 영화의 구성과 색깔은 전혀 다르지만 장면 장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들게 한다. 지명을 딴 제목, 낯선 땅에 온 외지인, 해안가의 동굴, 판타지가 가미된 구성, 닭을 사는 모습, 신비스런 인물, 단역으로 출연한 이용녀 배우까지, 숨겨진 닮은꼴이 많다.

영화에서 표현된 기운이 영화 밖으로 확장하는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곡성으로 향하던 사람이 삼례에 내려 목숨이 살아난 것이고,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라"는 어떤 해석도 그럴싸하다. 그만큼 신비와 신화가 가미된 영화는 상업영화와는 다른 맛을 전달한다.

영화감독 승우와 신비한 소녀의 만남

 삼례의 한 장면. 성당에 함께 간 승우와 희인.

삼례의 한 장면. 성당에 함께 간 승우와 희인. ⓒ 인디플러그


<삼례>는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삼례에 간 영화감독 승우가 희인을 만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가 극 전개의 중심이다. 낯선 도시 삼례에 내린 영화감독 승우는 우연하게 그 지역에 사는 희인이라는 소녀를 만난다. '희한한 인간'으로 자신을 소개한 희인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우연'이 빈번해지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둘의 발걸음은 삼례 인근 바닷가와 희인의 집 등 주변으로 이어진다.

승우의 시선에 들어오는 삼례의 풍경들과 배경은 신비롭다. 사람들과의 만남 과정은 승우에게 꿈과 현실을 오가게 한다. 가까운 역사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데, 시공간은 각각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결국은 하나이고 같은 장소임을 암시한다. 희인과의 추억이 쌓이고 가까워지던 관계는 감독이 여정을 마무리하는 순간 '삼례'라는 시나리오에 담기게 된다. 희인은 승우라는 해를 품은 달이었다.

<삼례>는 작은 소도시에 불과한 삼례라는 땅을 훑으며 오래시간 쌓인 지역의 흔적을 담는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어지는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닌 역사성이 배어 있는 곳들이다.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이 봉기한 곳으로 불의한 권력에 맞선 민중 투쟁의 중심지였다. 독백처럼 나오는 동학의 잔 다르크 이소사에 대한 설명은 여성으로서 반제 반봉건투쟁에 앞장섰던 이름 없는 민초의 존재를 알려준다. 일본군의 잔인한 고문에 대한 언급 역시 지역이 가진 아픔을 암시한다. 극 중에서 희인이 겪은 고통도 여성으로서의 억눌림이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삼례성당과 일제 때 배가 들어와 쌀 수탈기지로 활용했던 만경강 등, 두 남녀의 데이트 장소로 나오는 장소 역시 아픔의 공간을 사랑으로 위로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어 보인다.

천체의 움직임과 시공간을 넘어서는 4차원적 분위기 등 실험성이 강한 장면들은 승우와 희인이 오래전부터 운명적으로 묶여 있음을 상징해 주고 있다. 우주적 이미지와 바닷가 주변의 자연적 특색은 지역의 기운을 드러내 준다. 역사와 문학, 음악 등은 신비한 여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두 남녀의 만남의 과정에서 삼례라는 도시를 설명하지만 <곡성>처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다.

전주영화제 상영 후 재편집, 크게 달라져

 <삼례>의 이현정 감독은, 영화계에서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 역시 독특하다.

<삼례>의 이현정 감독은, 영화계에서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 역시 독특하다. ⓒ 인디플러그


<삼례>의 구성은 이현정 감독의 독특한 이력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감독은 신비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영화를 하기 전에는 YTN 기자와 앵커로 활약했다. 동기 중 여럿은 공정방송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징계를 받았다. 미국 실험영화의 거장 존 조스트에게 배운 후, 여성주의적 영화에 대한 고민으로 영화 만들기를 시작했다. 한국의 공간에서 느끼는 한국인의 심상을 영화에 녹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고, 미디어설치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이현정 감독은 <삼례>에 대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잊힌 공간으로서 지역의 기운을 담아내려 했고, 주변의 지층을 시간의 지층으로 보고 뒤틀린 시간을 우주적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례>는 지난해 전주영화제에서 공개됐으나 "편집을 다시 해 완전 새로운 영화가 됐다"고  이 감독은 덧붙였다. 단역과 카메오로 오동진 평론가와 개그맨 김현철, 가수 강산에가 출연한 것도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부분이다. <삼례>는 2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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