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중화권 최대 영화 축제, 중국 상하이국제영화제(SIFF)가 개막했다. 상하이국제영화제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국제영화제작연맹(FIAPF)에서 A급 영화제 인증을 받은 영화제다. 영화제 개막에 맞춰, 중국 최대 경제 도시 상하이 역시 그동안 숨겨왔던 탈을 벗고 세계 영화인들을 맞기 위해 분주하게 단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 상하이국제영화제는 2년 만에 참석하는 한국 영화인과 배우들로 현지 팬들의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지난 2015년 상하이국제영화제는 메르스 방역조치로 인해 한국 배우와 영화인의 방문이 다수 취소됐었다.

중국 경제의 상징 상하이, 이젠 영화의 상징으로

 상하이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상하이잉청 영화관

상하이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상하이잉청 영화관 ⓒ 권소성


중국 동남부 연해 지역에 있는 상하이는 바다와 강에 인접해 있어 일찍부터 해외와 교역이 활발한 무역의 도시였다. 이러한 조건 덕에 상하이는 지금까지도 중국 경제성장의 상징이자, 중국 최대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다. 당시 상하이에서 많이 불렸던 '야상해(상하이의 밤, 夜上海)'라는 노래에는 이러한 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夜上海,夜上海,你是一个不夜城 상하이의 밤은 불야성이라네.
华灯起,车声响,歌舞升平 불꽃이 피고, 차 소리가 울리며 노랫소리가 우리를 부르네
只见她,笑脸迎,谁知她内心苦闷 상하이는 우리 미소로 반기지만, 그녀 마음 속 걱정은 누가 알겠느냐
夜生活,都为了,衣食住行 야생활은 결국 의식주를 위한 몸부림 일 뿐.
(중략)
换一换,新天地,别有一个新环境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면
回味着,夜生活,如梦初醒 상하이의 밤 생활을 생각해 본다면 꿈만 같겠지.

'상하이의 밤'은 당시 상하이 시민들의 생활을 잘 설명하고 있다. 당시 상하이는 동아시아 최대의 도시이자, 모험가의 낙원으로써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이는 외국인, 정확하게는 제국주의 세력의 몫이었다. 와이탄 공원에 걸렸던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처럼, 상하이 시민들은 자기 삶의 터전이 조계지(열강 등의 중국 진출로 중국이 타국에 임대한 지역) 신세가 되자 차별받고 핍박받았다. 상하이 시민들에게 당시 번영은 아름답지만 비극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하이라는 도시를 설명할 때 영화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어촌 도시에 불과한 상하이가 세계적인 대도시가 되기까지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듯, 상하이 시민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해석할 때에는 영화를 빼놓고 설명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상하이 영화그룹 사옥

상하이 영화그룹 사옥 ⓒ 권소성


상하이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상하이잉청 영화관에서 5분 정도만 벗어나면 혁명 열사를 모델로 한 조각상이 인상적인 상하이영화그룹의 사옥을 볼 수 있다. 이 그룹은 지금까지도 중국 최대의 국영 영화그룹으로, 상업 영화뿐 아니라 공익 영화, 방송, 음악 등 다양한 부분에 진출했다.

상하이는 예전부터 중국 북방 지역 창춘과 함께 중국 영화의 2대 메카로 불렸다. 상하이영화그룹의 전신인 상하이영화제작창은 1949년 신중국이 건국되고 나서 중국에 세워진 첫 번째 영화 제작기지였다. 이후 개혁개방 전까지 상하이영화제작창은 창춘과 함께 주로 혁명사를 반영하는 드라마를 제작했다.

1979년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상업화의 물결은 곧 '한류'를 비롯한 해외 콘텐츠의 진입으로 중국 문화시장을 크게 약화 시켰다. 이에 북부 변방 지역에 위치한 창춘의 위상은 크게 하락하기 시작했고, 상하이 역시 그 물결에서 무사할 리 없었다.

하지만 상하이에는 영화에 대한 민중들의 뿌리 깊은 선호가 있었다. 당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하이 시민들은 영화를 통해 위로를 찾고자 했으며, 영화배우들은 상하이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실제로 당시의 신문 자료를 찾아보면 심심치 않게 영화배우들의 복장이나 헤어스타일을 따라 했던 흔적을 볼 수가 있다. 한국인 김염(1910~1983, 본명 김덕린) 역시 당시 상하이 최고의 인기 배우로서 중국에서 '영화 황제'로 불리며 신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에게서 1급 배우의 최고 칭호까지 받았었다. 지금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한류 열풍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성장하는 상하이영화제, 예매 첫날에만 티켓 10억 원 어치 팔려

상하이는 중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개방적인 영화제 운영으로 해결했다. 처음에는 몇몇 중국 영화가 참석했던 소규모의 영화제는 19회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이는 중국 영화산업의 발전을 여실 없이 보여줬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격년제였던 상하이영화제(SFF)는 상하이국제영화제(SIFF)로 바뀌어 매년 수십 개 국이 참여하는 A급 영화제로 탈바꿈했다. 또 조직위 측은 상하이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증진하고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모바일 영화제, 대학생 단편 영화제 및 일반인 대상 시사회를 크게 확대하였고, 한국·태국·일본 등 나라별 영화주간을 설정해 더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부여했다.

실제로 매년 상하이국제영화제의 티켓 구매는 현지에서 연례행사처럼 큰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조직위 측에 따르면, 이번 영화제에는 전 세계 110개 국가의 300여 편의 영화가 상하이 전역 35개 영화관에서 1250회차 상영될 예정이다. 이에 조직위 측 관계자는 상하이 시민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티켓팅이 시작된 첫날 600만 위안(한화 약 10억 원)의 티켓이 팔렸으며, 이는 상하이국제영화제 전체 판매량의 40% 이상의 티켓이 매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SIFF 영화표 예매가 시작된 첫날, 상하이 시민들이 SIFF의 공식 상영관 중의 하나인 중국 상하이 잉청(影城) 영화관 앞에서 줄서서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SIFF 영화표 예매가 시작된 첫날, 상하이 시민들이 SIFF의 공식 상영관 중의 하나인 중국 상하이 잉청(影城) 영화관 앞에서 줄서서 티켓을 구매하고 있다. ⓒ 권소성


이는 수치뿐 아니라, 기자의 관찰에서도 확인됐다. 영화제 예매 시작 첫날, 이번 영화제 공식 상영관인 상하이잉청 영화관과 대광명 시네마 예매 창구 앞에는 티켓을 예매하기 위한 시민들의 줄이 수십 미터 이어졌다. 상하이 대광명 시네마 앞에서 줄을 서던 한 20대 천(陳)씨 여성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상하이에서 수백 Km 떨어진 지역에서 왔다, 오늘 출근해야 하지만 영화를 워낙 좋아해 연차를 쓰고 상하이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에도 영화 애호가라 나오는 영화를 다 보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는 외국 영화가 상영이 안 돼 조금 불편했다, 그러나 이번 상하이 국제 영화제에는 전 세계 영화를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어제 급하게 오게 됐다"고 밝혔다. 천씨는 자신이 원하는 영화의 티켓을 구매하고 나서 기자에게 승리의 브이(V) 표시를 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가오카오를 마친 두 여학생이 티켓을 보여주고 있다

가오카오를 마친 두 여학생이 티켓을 보여주고 있다 ⓒ 권소성


이 밖에도 티켓팅 창구 앞에 줄 선 사람들은 정말로 다양했다. '인생의 분수령'인 가오카오(高考, 대학교 입학시험)를 치르고 나온 풋풋한 학생들부터, 제1회 상하이 영화제부터 매번 영화제에 참가했다는 환갑의 노인,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 및 영화 애호가들까지, 다양한 사연의 사람들이 영화라는 이름 아래에 함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2년 만에 한류, 더 강해진 귀환

지난 2014년 상하이국제영화제에는 처음으로 '한국 영화주간'이 신설됐다. 그 전까지 상하이국제영화제는 태국, 일본 등 국가의 영화주간이 있었지만, 한국 주간은 존재하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에 조직위 측은 시민들의 요청을 수용했고, <더 테러 라이브> 등 8편의 영화를 상영된 2014년 한국 영화주간은 예매 당일 티켓이 매진되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또 중국에서 '치맥 신드롬'을 일으킨 <별에서 온 그대>는 상하이국제영화제와 함께 열리는 드라마 행사인 상하이 TV 페스티벌에서 은상을 받는 쾌거를 기록했다. 이에 송승헌, 비, 박신혜 등 한국 배우들은 직접 상하이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으며 팬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았고, 임상수, 강제규 감독은 각각 상하이국제영화제의 두 경쟁부문인 금잔상과 아시아신인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여름, 한국에 몰아닥친 메르스 파동은 국민의 생활을 크게 바꿔놓았고, 이는 상하이국제영화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조직위 측은 한국 측 게스트의 방문 자제를 요청했고, 중국에 체류하던 몇몇 배우를 제외하고 참석 취소를 결정해 아쉬움을 더했다. 그리고 2016년 상하이국제영화제에는 다시 한류의 바람이 불고 있다. 더 강해진 상태로.

 배우 김지원이 상하이 드라마 페스티벌 폐막식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김지원이 상하이 드라마 페스티벌 폐막식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권소성


 배우 김지원이 폐막식에서 시상 게스트로 참여하고 있다.

배우 김지원이 폐막식에서 시상 게스트로 참여하고 있다. ⓒ 권소성


먼저 조직위 측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하이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 참석하는 한국 배우는 황정민, 하지원, 이민호, 빅뱅 탑, 김지원, 주원, 천정명 등 총 7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예정됐다. 이들은 할리우드 배우 이안 맥켈런, 브래들리 쿠퍼, 성룡 등 세계적인 배우들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는다. 특히 김지원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보여준 활약을 토대로 상하이 TV 페스티벌 폐막식의 시상자로 등장하기도 해 한류의 힘을 재확인했다.

 김형준 감독

김형준 감독 ⓒ SIFF 조직위


이 밖에도 올해 '한국 영화주간'은 <사도>를 비롯한 최신작 8편이 상영되며, <실미도>를 제작했던 영화제작자 김형준 감독은 상하이국제영화제 아시아신인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또 지난 10일 끝난 상하이 TV 페스티벌에서는 KBS '드라마 스페셜-비밀'이 해외드라마 최우수상 후보에 올라 배우 서은아가 조직위 측에 공식 초청돼 TV 페스티벌 폐막식 현장에 참석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최종 수상에는 실패하였지만, 극소수 대형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한국 작품과 유독 인연이 없었던 TV 페스티벌에서 이뤄낸 쾌거였다.

 배우 서은아

배우 서은아 ⓒ 권소성


배우 서은아는 폐막식이 끝난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아쉽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여기까지 온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소감을 밝혔다. 인터뷰 과정에서 <시그널> 등 드라마에 활발하게 출연한 서은아에게 중국 팬들의 사진 요청이 지속되어 그녀의 인기를 재확인했다.

이제 곧 세계인들의 영화 축제가 상하이에서 막을 올린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어떤 영화가 상하이, 내지는 전 세계 영화 애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지, 영화인들의 관심이 상하이에 집중되고 있다.

SIFF 중국 상하이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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