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격이 다른 축구를 실감했다. 개인 기량이나 조직력의 차이는 하루 아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많은 골을 내주며 패한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A대표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실수와 무기력한 태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유럽축구선수권대회(EURO 2016)를 코앞에 둔 스페인 선수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어준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한국 시각으로 1일 오후 11시 30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레드 불 아레나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1-6으로 완패하며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실수 그 이상의 무력감

 2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 대 스페인의 친선경기. 한국이 스페인 다비드 실바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2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 대 스페인의 친선경기. 한국이 스페인 다비드 실바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계 최정상급의 무적함대 스페인을 상대한 슈틸리케호는 맨 앞 골잡이 황의조(성남 FC)를 제외한 10명의 선수를 모두 해외파로 구성해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 시작 후 8분 만에 선취골 기회를 만들면서 한 번 해보자는 의욕이 넘치는 경기였다. 공격형 미드필더 남태희의 재치있는 가로채기가 빛났고 왼쪽으로 빠져 들어가는 손흥민을 즉시 겨냥했다. 왼발 대각선 슛으로 골을 터뜨리기 좋은 자리였다. 하지만 손흥민의 왼발 스윙은 스페인 축구의 전설적인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를 앞에 두고 떠오르고 말았다.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친 뒤 공격적 흐름은 당연히 스페인 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특급 미드필더 이니에스타의 오른발 중거리슛(12분)과 베예린의 오른발 대각선 슛(28분)이 이어지면서 한국 골문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30분에 스페인의 직접 프리킥이 선취골로 연결됐다. 한국 센터백 김기희가 스페인 골잡이 알바로 모라타를 잡아 넘어뜨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 기회에서 다비드 실바의 왼발 휘어차기가 한국 골문 오른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갔다. 골키퍼 김진현이 궤적을 예상하고 솟구쳤지만 다비드 실바의 슛 속도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빠르고 날카롭게 휘었다.

개인 기량의 분명한 차이에서 골이 터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어이없는 실수가 이어진 추가 실점 순간에는 허무한 탄식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선취골을 내주고 2분 뒤에 오른쪽 풀백 장현수가 헤더 백 패스한 공이 조금 짧았다. 그래도 골키퍼 김진현이 손으로 잡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스페인 알바로 모라타의 적극적인 가로채기 시도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김진현의 잡기 실수는 이 경기 전반의 흐름으로 볼 때 대패의 결정적인 빌미가 됐다.

모라타의 발끝에 맞고 오른쪽으로 흐른 공을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달려들어 가볍게 밀어넣었다. 한국 선수들의 표정에서 무력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후반전 교체 선수, K리거들이 자존심 지키다

 2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 대 스페인의 친선경기. 주세종이 중거리슛으로 첫 골을 성공시킨 뒤 선수들과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다.

2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한국 대 스페인의 친선경기. 주세종이 중거리슛으로 첫 골을 성공시킨 뒤 선수들과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다. ⓒ 연합뉴스


스페인 선수들의 절묘한 패스 타이밍에 이리저리 휘둘리기 시작한 한국 선수들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역할을 망각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8분에 놀리토의 추가골 순간에도 골키퍼 김진현과 센터백 김기희의 확실한 역할 분담이 아쉬웠다. 어정쩡하게 겹쳐서 서 있었기에 놀리토에게 다리 사이로 기분 나쁜 추가골을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반전에만 무려 3골을 얻어맞은 한국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골잡이 황의조 대신 석현준을 들여보내며 스페인 수비수들에게 부담을 안겨주고자 했다. 하지만 후반전 시작 후 5분 만에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로 추가골을 내주며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다. 티아고 알칸타라의 코너킥을 알바로 모라타가 가볍게 이마로 돌려넣었다. 이 때 모라타를 밀어내는 우리 마크맨은 없었고 김진현 골키퍼만 반 박자 늦게 떠올랐다.

전반전처럼 실점 후 단 몇 분 만에 추가골을 내주는 집중력 부족 문제가 후반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스페인의 다섯 번째 골은 단 3분 만에 다시 터졌다. 스페인 오른쪽 풀백 베예린이 위험지역으로 빠져들어올 때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상대를 등질 수 있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이 베예린의 순발력을 간과했다. 베예린의 재치있는 가로채기 패스를 받은 놀리토가 점수판을 5-0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순간 한국 선수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거니 쳐다봤다. 이에 슈틸리케 감독은 61분에 한꺼번에 세 명의 선수(MF 이재성, MF 주세종, DF 곽태휘)를 바꿔 들여보내며 1골이라도 따라붙기를 주문했다.

이 조치 덕분에, 특히 바꿔 들어간 K리거 두 선수(이재성, 주세종) 덕분에 필드의 분위기는 넘어왔다. 한국영을 대신하여 들어온 주세종이 중심을 잘 잡아주었고 믿었던 손흥민 대신 들어온 이재성은 측면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담당했다.

이렇게 K리거들이 슈틸리케호를 깨워서 단 4분 만에 남태희의 결정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스페인의 노련한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가 왼쪽으로 날아올라 기막히게 공을 쳐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주부심이 코너킥을 선언하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83분에 K리거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만회골이 터져나왔다. 이재성이 오른쪽에서 밀어주고 주세종이 달려들며 오른발로 시원하게 처리한 중거리슛이었다. 상대 수비수 발에 맞고 방향이 살짝 바뀌기는 했지만 과정이나 마무리 모두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종료 직전에 스페인 골잡이 알바로 모라타에게 쐐기골을 1개 더 내주기는 했지만 후반전에 포기하지 않고 1골이라도 따라붙은 K리거들의 자존심은 매우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제 슈틸리케호는 장소를 체코 프라하로 옮겨서 오는 5일 오후 10시 10분에 체코 공화국과 두 번째 원정 평가전에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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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1일 오후 11시 30분, 레드 불 아레나-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 한국 1-6 스페인 [득점 : 주세종(83분,도움-이재성) / 다비드 실바(30분), 세스크 파브레가스(32분,도움-알바로 모라타), 놀리토(38분,도움-아스필리쿠에타), 알바로 모라타(50분,도움-티아고 알칸타라), 놀리토(53분,도움-베예린), 알바로 모라타(89분)]

◎ 한국 선수들
FW : 황의조(46분↔석현준)
AMF : 손흥민(61분↔이재성), 남태희, 지동원
DMF : 한국영(61분↔주세종), 기성용
DF : 윤석영(80분↔임창우), 김기희(61분↔곽태휘), 홍정호, 장현수(70분↔이용)
GK : 김진현
축구 한국 스페인 울리 슈틸리케 주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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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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