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네덜란드 완파... 환호하는 우리 선수들과 이를 바라보는 구이데티 감독

한국, 네덜란드 완파... 환호하는 우리 선수들과 이를 바라보는 구이데티 감독 ⓒ 국제배구연맹(FIVB)


극적인 대반전이었다. 단 하루 만에 한국 여자배구의 리우행에 청신호가 켜졌다.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려 있는 세계 예선전 이틀째 경기에서 한국이 최강으로 평가받던 네덜란드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로써 한국은 14일 이탈리아전 패배 이후 하루 만에 귀중한 첫 승을 올리며 1승1패를 기록했다. 순위도 일본, 이탈리아에 이어 3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한국은 대회 초반부터 이탈리아-네덜란드-일본으로 이어지는 최강 팀들과 3연전을 치르고 있다. 당초 목표는 3연전에서 1승을 거두는 것이었다. 네덜란드전 승리가 더욱 값진 것은 승리 자체에만 있지 않다. 이탈리아전 패배에서 보여준 한국 배구의 고질적인 '반쪽 배구' 패턴에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게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정철 대표팀 감독은 네덜란드전에서 무려 4가지 부분에서 기존 패턴과 다른 전술적 변화를 가져갔다. 많은 전문가와 배구팬들도 놀랄 정도였다.

'신의 한 수' 박정아 선발... 공격력·높이 강화 대성공

첫 번째는 '신의 한 수'로 평가받은 박정아의 선발 투입이다. 이 감독은 그동안 김연경과 짝을 이루는 레프트 한 자리에 이재영을 선발로 내보내고, 이재영이 흔들릴 경우 이소영으로 교체하는 전술을 구사해 왔다. 박정아가 리시브 등 수비에서 두 선수보다 약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전에서 선발 이재영이 시작부터 리시브가 흔들렸다. 이소영도 수비에서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공격에서 위력이 없었다. 사실상 공격 옵션 하나를 포기하고 경기를 치러야 했다. 라이트 김희진도 파워와 빠르기에서 지난해 월드컵 때보다 약화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김연경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김연경마저 공격 성공률이 떨어졌다.

반면, 이탈리아는 주전 공격수 전원이 고른 기량과 득점력을 선보이며 토털 배구로 한국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패배보다 아픈 것은 한국 배구가 그런 '반쪽 배구'로는 앞으로도 유럽 강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갑갑함이었다.

결국 이정철 감독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네덜란드전에서 박정아를 선발 레프트로 전격 기용했다. 수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공격력과 높이를 강화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박정아가 레프트로 들어가면 한국 대표팀은 김연경(29세·192cm·레프트), 박정아(24세·185cm·레프트), 김희진(26세·185cm·라이트), 양효진(28세·190cm·센터), 김수지(30세·186cm·센터) 등 주전 공격수 5명의 평균 신장이 187.6cm로 껑충 뛰어 오른다. 유럽 강호들과 비교해도 신장 면에서는 거의 대등해진다.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 주전 공격수 5명의 평균 신장은 188.4cm이고, 이탈리아는 187.8cm다.

박정아의 공격력은 이미 V리그를 통해 지난해보다 한층 강화된 상태였다. 박정아는 2015~2016 V리그 후반기에 소속 팀의 외국인 선수인 맥마혼과 주 공격수인 김희진이 모두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혼자 공격을 도맡아서 해야 했다. 평소 잘 하지 않던 중앙 후위 공격 횟수도 늘어났다. 혼자 32득점을 몰아치며 외국인 선수가 뛴 현대건설에 3-2로 승리하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단련된 공격력이 네덜란드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김연경(24득점)에 이어 13득점을 올리며, 빛나는 조연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덩달아 김연경의 공격력도 위력이 배가되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박정아는 리시브에서도 우려와 달리 잘 버텨줬다.

이효희·김해란 풀타임 출전, 토스·수비 안정감 높여

두 번째는 이효희 세터의 풀타임 출전이다. 이 감독은 당초 염혜선을 선발로 결정하고, 진천 선수천 연습 과정에서부터 공격수들과 손발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 감독은 네덜란드전에서 노장 이효희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코트를 지휘하게 했다. 김연경과 국제대회에서 손발을 맞춰 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호흡 면에서도 염혜선보다 좋았다. 이효희는 자신의 장점인 노련하고 안정감 있는 토스워크로 공격수를 고루 사용하면서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세 번째는 리베로를 김해란으로 고정했다. 그동안 서브 리시브 상황에서는 남지연을, 상대방의 공격 상황에서는 디그가 뛰어난 김해란을 투입했다. 그런데 남지연이 리시브와 수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네덜란드전에는 과감하게 김해란 단독 리베로 체제로 전환했다. 수비 진용의 혼선이 줄어들고, 2단 연결 과정에서도 안정감 있고 잔 범실이 줄었다.

네 번째는 서브가 강하고 까다롭게 잘 들어갔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의 수비를 크게 흔들었다. 서브 부문에서 한국은 11개의 에이스를 기록하며, 단 하나의 에이스도 만들지 못한 네덜란드를 압도했다. 서브가 강한 강소휘를 믿고, 계속 투입한 것도 주효했다. 강소휘는 네덜란드전 3세트 18-18 동점 상황에서 에이스를 기록하면서 역전을 이끌어냈다.

이런 과감한 변화들을 통해 한국 여자배구는 토털 배구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전의 득점 분포를 보면, 레프트에서 김연경 24점, 박정아 13점, 라이트 김희진 11점, 센터에서 양효진과 김수지가 각각 7점씩을 기록했다. 센터진의 득점력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전 때보다 한결 고르게 분산됐다.

'토털 배구' 가능성, 일본의 수비·스피드도 넘을까

이제 한국은 16일 하루를 쉬고, 17일 저녁 7시 최고 빅매치인 한·일전을 치른다. 일본은 대회 초반부터 예전의 경기력을 거의 회복해 가는 모습이다.

일본의 유일한 단점은 신장이 작다는 점이다. 주전 공격수 5명의 평균 신장이 182.4cm로 한국보다 5.2cm가 작다. 그렇기 때문에 끈질긴 수비와 스피드를 무기로 강팀들을 무너뜨리곤 한다.

특히 한국은 일본의 수비력과 빠르기에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세계 예선전 승리 이후 런던 올림픽 4강전과 지난해 월드컵 등 중요한 국제대회에서 일본에 완패를 당했다.

또 한 가지 껄끄러운 요소는 일본 홈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이다. 일본의 영리한 플레이에 말려들거나 끌려가다 보면, 더욱 주눅 들고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세계 예선전에서도 일본의 2경기 모두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의 수용 인원인 1만석이 꽉 들어찼다. 한·일전도 매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세계 예선전에서 일본을 3-1로 꺾은 기억이 있다. 유럽 강호 데덜란드를 3-0으로 완파하며 사기가 오른 상태에서 일본을 만나는 것도 좋은 징조이다.

한·일전 승리 팀, '본선 티켓' 사실상 확정

일본전 승패의 관건도 역시 박정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선수들은 교묘하고 까다로운 목적타 서브에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전처럼 리시브에서 어느 정도 버텨주면서 공격에서도  제 역할을 해준다면, 한국의 승산은 높아진다. 그러나 초반에 무너지면, 이소영으로 교체될 수 있다. 두 선수를 모두 기용하되 전위 공격일 때는 박정아를, 후위 수비 위치일 때는 이소영으로 교체 투입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의 끈질긴 수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아예 한 번의 공격으로 득점이 안 난다고 생각하고, 일본의 반격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공수 전환을 더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

또한 한·일전은 경기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치곤 한다. 어느 팀이 극도의 부담감을 잘 다스리고, 냉정하고 과감하게 경기를 풀어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길릴 수도 있다.

한·일전은 그 부담감만큼이나 승리할 경우 소득도 크다. 이긴 팀은 사실상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가져가게 된다. 특히 한국은 이번 대회 3강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을 상대로 2승을 거두게 되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

한편, 이번 한·일전은 지상파인 KBS 2TV에서 생중계한다. 해설도 KBSN스포츠의 이숙자 해설위원이 맡는다. 시청률 20%대에 육박하는 인기 드라마 방영까지 뒤로 배치하면서 여자배구를 생중계한다는 건, 리우 올림픽 예선전에 대한 중요성과 관심도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 여자배구가 일본마저 꺾고, 국민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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