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프로모션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습니다. 이 영화는 2013년 9월 5일 개봉했다.

<바람이 분다> 프로모션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습니다. 이 영화는 2013년 9월 5일 개봉했다. ⓒ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어로 문을 연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수수께끼처럼 알 수 없는 시어의 의미는 영화가 끝날 때에 이르러서 얼굴을 내보였다. 내가 본 얼굴은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얼굴이다. 순수하게 삶을 사랑한 흔적이 슬픔과 기쁨으로 묻어있다. 주인공 지로 호리코시는 동명의 원작소설에 나오는 지로가 아닌 미야자키의 지로였다. 바람이 불어도 미동하지 않고 차분했다. 미야자키와 지로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과 삶을 사랑했다. 2013년 9월 5일 개봉한 <바람이 분다>를 이야기하려 한다.

소년의 꿈 그리고 현실

자아가 커지는 시기가 있다. 생동하는 에너지는 정착하지 못해 이리저리 꿈틀거린다. 나의 의미와 이유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혼란한 이 시기, 어린 나이에 무난히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결단을 내리고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주인공 지로가 그렇다. 지로는 하늘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비행기를 보고는 선망한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이내 지로는 비행기 조종사로 장래를 선택한다. 그렇게 자아는 이상을 바라보며 가지치기를 한다. 괴테의 말처럼 실제의 행동이 내면의 혼란과 불안을 잠재운 것이다.

 지로는 하늘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비행기를 보고는 선망하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지로의 꿈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설계가다.

지로는 하늘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비행기를 보고는 선망하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지로의 꿈은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설계가다. ⓒ 지브리 스튜디오


 시력이 나빠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데 좌절을 맛보는 지로에게 신문에서 보았던 세계적인 비행기 설계가이자 작가인 중년의 카프로니가 나타난다.

시력이 나빠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데 좌절을 맛보는 지로에게 신문에서 보았던 세계적인 비행기 설계가이자 작가인 중년의 카프로니가 나타난다. ⓒ 지브리 스튜디오


그러나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데 근시인 시력이 문제다. 아무리 비행기 관련 서적을 밤낮으로 읽고 운동장을 뛰어 체력을 길러도 시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심지가 굳은 지로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으로 지로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시력이 좋아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다 검은 잠에 빠져드는데 책과 신문에서 보았던 세계적인 비행기 설계가이자 작가인 중년의 카프로니를 만난다.

꿈은 감각에서 지각으로의 질적인 비약을 예비했다. 아기는 작은 손을 쉴 새 없이 뻗으며 주변의 물건을 집고는 감각한다. 사물이 있다, 따듯하다, 차갑다, 부드럽다. 곧 그 물건이 무엇인지 지각한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안다. 꿈도 막연히 좋아하는 감정에서 존경하는 사람이 생기고 길을 따라 걷고 싶은 마음이 인다. 지로에게 있어서 카포로니는 이상(理想)이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 무리와 초록 자연이 세계를 이루는 꿈에서 카프로니가 지로에게 말한다. 미래의 지로가 지금의 지로에게 말하는 듯했다.

"일본의 소년이여 잘 들어라. 난 비행기 조종은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파일럿 할 사람은 나 말고도 많지. 난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설계가다! 일본의 소년이여 잘 들어라.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가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카프로니의 말이 지로에게 비행기 설계가라는 사명으로 다가온다. 사명이 지로의 정신을 감싸 안는다. 예술가의 일은 아름다운 꿈의 실제화라는 것이다. 이 사명은 폴 발레리의 시어와 공명하여, 예술가의 일이 목적에서 벗어나 다른 이에 의해서 악용될 때 나타나는 문제인 '비판받는 예술가'를 변호한다.

전쟁의 시대 그리고 일본

 스틸컷은 비행기 설계가의 회의에서 지로가 발표하는 모습이다. 폴 발레리의 시어처럼 지로에게도 바람이 불었고 살아야 했다.

스틸컷은 비행기 설계가의 회의에서 지로가 발표하는 모습이다. 폴 발레리의 시어처럼 지로에게도 바람이 불었고 살아야 했다. ⓒ 지브리 스튜디오


영화는 192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참혹한 전쟁의 시대다.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여 만주국을 창설하였고 국제연맹에서 탈퇴한다. 히틀러가 독일을 삼켜 전쟁을 일으킨 그 시대다. 지로의 비행기는 원래의 아름다운 비행기라는 목적에서 벗어난다. 둔탁한 소음을 내며 폭탄을 비처럼 뿌리는 전투기로 쓰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투기 판매로, 판매국인 일본은 굶주림을 다소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전투기들이 일본을 폭격했다.

폴 발레리의 시어처럼 지로에게도 바람이 불었고 살아야 했다. 자기 자신을 다듬고 다듬어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드는 예술가로서의 영혼이 바람이었고, 그에게 운명적으로 찾아온 따스한 봄날 같은 사랑도 바람이었고, 그가 처한 암울한 시대적 상황도 바람이었다. 그는 냉정하게 부는 바람 속에서 다른 바람을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가 새처럼 하늘을 유영하며 평화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바람을 기다려야 했다.

바람이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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