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현실'이라는 말 자체가 이 여자에겐 사치다. 영문도 모른 채 한 사설 정신병원에 감금된 수아(강예원 분)는 몇 번이고 "난 미치지 않았다"는 말을 외쳐 보지만 듣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공허한 메아리와 끝을 알 수 없는 절망감이 바로 영화 <날, 보러와요>의 동력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다. 애써 관객들에게 아픔을 강요하진 않지만, 감금 상황에서 발버둥 치는 한 여성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 감정이 일단 밀려온다. 스릴러 장르를 표방했기에 일견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장르적 쾌감과는 다소 다른 복잡함이 <날, 보러와요>에 깔렸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그럴 수 있다. 연출을 만든 이철하 감독은 "특정 하나의 사례가 아닌 여러 사례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을 담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정신보건법 24조에 의해 보호자 2인과 전문의 1인의 동의만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감금할 수 있는 오싹한 법적 근거에 감독은 집중했다.

말초적 즐거움이 아닌 본질을 묻기 위해

 영화 <날, 보러와요>의 한 장면.

영화 <날, 보러와요>의 한 장면. 이 작품은 정신보건법의 헛점을 폭로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 ⓒ OAL


장르물로 한정하기엔 <날, 보러와요>가 지닌 가치가 아깝다. 말초적 재미가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게 전가의 보도가 될 순 없지만, 납치-감금-해결의 과정까지 영화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순점을 곳곳에 설득력 있게 녹여 냈다.

조작 방송 파문으로 징계를 먹은 나남수 PD(이상윤 분)에게 간판 프로 <추적24>는 절실하다. 합법적 납치 감금 피해자 수아(강예원 분)는 그런 그에겐 좋은 발판이자 먹잇감이다. 영화는 나 PD가 수아의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과 수아 스스로가 당시 사건을 어떻게 헤쳐 왔는지 두 갈래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수아로 위시된 약자의 소외다. 법의 존재 의의를 무색게 하는 사회 구성원의 소외가 아프게 다가온다. 애초 목표와 다르게 이용되고 악용되는 상황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끔찍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영화는 제법 끈질기게 묘사한다. 영화에서 수아는 주요한 캐릭터였지만 동시에 현재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에서 타의에 의해 상처 입는 무수한 개인들을 상징한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지만, 미디어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도 흥미롭다. 얼핏 정의로워 보이는 나남수 PD를 움직이는 동력은 다름 아닌 복귀에 대한 욕구다. 여기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말겠다는 입신의 욕망 내지는 자신감이 깔렸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을 대하는 종사자들의 이런 태도는 짚어볼 만한 문제다. 이야기가 흐를수록, 그리고 수아가 위기에서 벗어날수록 나 PD 주변에 찜찜한 공기가 흐르는 것도 바로 그 이유다.

19년 차 배우의 재발견

 영화 <날, 보러와요>의 한 장면.

영화 <날, 보러와요>의 한 장면. 19년 차 최진호 배우는 신 스틸러로서 발군의 역할을 해낸다. 그를 보는 것도 영화를 감상하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 OAL


<날, 보러와요>는 약 4년 동안 영화계를 돌던 시나리오였다.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 된 동명의 연극과는 다른 작품임을 일단 밝힌다. <시월애> 조연출을 비롯해 <사랑따윈 필요없어>로 진한 멜로 감성에 장점을 보인 이철하 감독은 "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고 믿어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만지고 또 만졌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실제 촬영에서 이 감독은 배우들이 집중해서 몰아칠 수 있도록 또 이야기가 허투루 소비되지 않게 하려고 간결하게 호흡을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드라마로 널리 알려진 이상윤과 로맨틱 코미디영화로 인기를 구가한 강예원의 첫 스릴러 도전이라는 점도 고무적이지만 19년 차 배우 최진호의 활약도 주목할 만하다. 극 중 사설 정신병원장 역을 맡은 그는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배우들의 감정선까지 잘 받아주는 섬세한 연기를 펼친다. 단순히 소모되는 악역으로 치부할 수 없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는 분명 <날, 보러와요>가 흔한 장르물과 차별화하는 지점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

다시 말하지만 불편한 영화다. 하지만 <날, 보러와요>가 품으려 한 인물들의 면면을 기억하면 분명 올해 간과할 수 없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영화 <날, 보러와요> 메인포스터

▲ 영화 <날, 보러와요> 메인포스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날, 보러와요>는 분명 흥미로운 작품이다. 장르물로 한정하기 어려운 가치, 감독만의 독특한 시선, 현실비판 메시지까지 들어가 있는 영화이다. ⓒ 메가박스㈜플러스엠



덧붙이는 글 영화 <날, 보러와요> 관련 정보

감독 : 이철하
제작 : 오에이엘(OAL)
공동제작 : 발렌타인 필름, 에이앤지모즈
배금 : 메가박스 플러스엠
개봉일 : 2016년 4월 7일
러닝타임 : 90분
관람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날, 보러와요 강예원 이상윤 최진호 정신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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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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