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살리에르> 총막공

▲ 마지막 커튼콜 지난 13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뮤지컬 <살리에르>의 2016년 마지막 공연이 펼쳐졌다. 당분간 이별해야 할 마지막 커튼콜이 피아노 앞에 앉은 살리에르 악장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 곽우신


 뮤지컬 <살리에르> 총막공

▲ 울먹이는 악장 지난 3주간의 열연 탓에 정상윤 배우의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에서 보여준 그의 열정만은 어떤 회차의 공연보다도 뜨거웠다. 넘버 하나하나 부를 때마다 온 몸이 부서질 듯 노래하던 그의 모습은 많은 팬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곽우신


13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객으로 공연장 인근이 가득 찼다. 친구에게 극을 설명해주는 사람, 부모와 함께 온 관객,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까지…. 공연장은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아쉬움이 뒤섞인 공기로 술렁였다.

그 술렁이던 공기는, 익숙한 멜로디가 시작하자마자 찬물을 끼얹은 듯 착 가라앉았다. 오버추어(서곡)가 끝난 후 터지는 박수, 그리고 다시 정적. 그렇게 13일 오후 6시 뮤지컬 <살리에르>의 2016년 마지막 공연이 시작됐다.

극 중 살리에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날 배우들은 "계산된 음악에 꼭 맞는 수학적 기호"가 되지는 못했다. 일정을 소화하면서 무리가 온 것인지, 정상윤 배우에게서는 노래 중 약간의 음 이탈이 나왔다. 김찬호 배우도 평소 하지 않던 대사 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비록 이날 공연은 살리에르의 악보처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모차르트의 악보처럼 풍부한 열정으로 가득 찼다.

다섯 번째 넘버, '티칭'의 장면부터 궁정 오페라 단원들과 궁정악장의 호흡이 남달랐다. 절규에 가까운 울부짖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정상윤 배우, 신들린 듯한 움직임과 광기 어린 웃음으로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질투' 같았던 김찬호 배우. 둘 다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듯, 자기 자신을 용해해서 각자의 캐릭터 틀에 붓고 있었다. 1막의 마지막 넘버 '신이시여'에서 폭발한 살리에르와 젤라스, 강 대 강으로 충돌한 두 배우의 감정이 관객의 무릎 앞까지 떨어졌다.

"사라지지 않는 원망을 노래해. 불타오르는 너의 증오를 노래해. 타오르는 너의 분노 노래해. 신은 너를 돌보지 않아. 하늘은 너를 진작 버렸어." - 뮤지컬 <살리에르> 1막 No.18 '신이시여' 중에서

'총막'(마지막 공연)에 걸맞은 무대를 보여준 건 두 주연배우만이 아니었다. 창법과 스타일의 호불호 때문에 고생했을 모차르트 역의 허규 배우도, 자신의 첫 '시대극'(<살리에르>는 사극이 아니다) 도전에서 자신이 어떤 성과를 이뤘는지를 마음껏 뽐냈다. 공연 초반 덜 다듬어진 것처럼 보였던 채송화 배우의 카트리나는 처음 등장하는 오페라 장면부터 멋진 기교를 선보였다. 언제나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를 선보이는 이민아 배우는, 이날도 언제나 그랬던 바로 그대로 흔들리지 않고 배역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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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규의 모차르트 뮤지컬 <살리에르>의 2016년 마지막 커튼콜에서 모차르트 역의 배우 허규가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프레스콜 현장에서, 록 창법을 사용하는 자신이 고전적인 작품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밝혔던 그. 그의 스타일에 팬들의 호불호는 갈렸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나름의 성과를 이룬 그는 분명 멋진 배우였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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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극? 시대극! 지난 13일,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관객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는 허규 배우.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했다"는 그의 말 실수에 박유덕(왼쪽) 배우와 이민아(오른쪽) 배우 모두 울컥하던 도중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허규 모차르트는 곧 '시대극'이라고 정정했다. ⓒ 곽우신


정신없이 흘러간 1막보다 2막은 훨씬 타이트하게 흘러갔다.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백조의 노래'와 '라크리모사'를 지나 2막의 마지막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Reprise(리프라이즈)'까지 와 있었다. 마니아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도 여럿 자리를 채우다 보니 관람 예절에서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 이 날 공연이었지만, 마지막 넘버 끝부분의 정적에서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목에 깃펜을 꽂고 쓰러진 살리에르와 그를 붙잡고 있는 젤라스. 영광을 노래하던 가장 높은 자리에서, 추하고 망가진 채 밑바닥으로 떨어진 살리에르는 헐떡이고 있었다.

"사람들 뭐라고 생각할까, 내 음악을 기억해 줄까. 백 년에 백 년이 지나, 내가 원했던 유일한 일." - 뮤지컬 <살리에르> 2막 No.29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Reprise' 중에서

그 순간, 정상윤 배우는 철저하게 부서져 버린 살리에르와 동화됐고, 김찬호 배우는 인격이 없는 순수한 집착과 광기 그 자체로 보였다. 쓰러진 살리에르 뒤로 걸어 나오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고 비웃는 젤라스. 그렇게 커튼이 닫혔다. 뮤지컬 <살리에르>의 마지막 공연, 150분이라는 환호의 시간은 그렇게 끝났다.

전 배우와 스태프들의 무대 인사. 눈물을 가다듬은 정상윤 배우의 진행 하에 약 30분가량 진행된 마지막 커튼콜과 무대 인사는 2막 이후의 3막처럼 느껴졌다. 울음이 터진 최인숙 안무가를 젤라스를 맡은 김찬호·조형균 배우가 다독였다. 이진욱 작곡은 배우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웠다고, 배우들의 한계를 더 시험할 수 있는 넘버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김규종 연출은 <살리에르>를 사랑해준 음표(커뮤니티 등에서 뮤지컬 <살리에르>의 팬을 부르는 애칭)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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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인사를 진행하는 악장 뮤지컬 <살리에르>의 2016년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관객 앞에서 무대인사가 진행됐다. 무대인사를 진행하는 정상윤 배우를, 살리에르의 아내인 테레지아 역의 이민아 배우가 바라보고 있다. 아직 두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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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욱 작곡 지난 13일, 뮤지컬 <살리에르>의 무대인사에 이진욱 작곡이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살리에르>의 넘버가 쉽지 않음에도 열심히 소화해준 배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배우의 한계에 도전하는 더 멋진 곡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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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표에게 감사를! 2016 뮤지컬 <살리에르> 무대인사에서 김규종 연출이 관객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가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를 언급했을 때, 내적 동요를 일으킨 관객이 한둘은 아니었을 것이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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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먹이는 카트리나 2016 뮤지컬 <살리에르>의 마지막 커튼콜. 카트리나 역의 채송화 배우가 노래를 부르던 중 울먹이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분명 아쉬운 점이 여럿 눈에 띄었지만, 회차가 진행될 수록 발전된 모습을 보였던 채송화 배우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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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명의 카트리나 뮤지컬 <살리에르>의 무대인사를 위해, 이날 공연이 아님에도 무대 위로 올라온 카트리나 더블캐스트 이하나 배우가 채송화 배우의 손을 맞잡았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극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카트리나를 두 배우 모두 최선을 다해 소화했다. 두 배우 모두 삼연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곽우신


모차르트 더블캐스트 박유덕 배우는 눈물을 참기 위해 짧게 인사를 마치고 다른 배우들 뒤에서 몰래 숨죽였다. 카트리나 더블캐스트 이하나 배우는 수더분한 모습으로 담담한 척 애쓰며 감사를 전했고, <난쟁이들>의 찰리를 연기하면서 정반대 분위기의 캐릭터를 아무런 혼선 없이 보여준 조형균 배우(젤라스)도 인사를 나눴다. 원캐스트로 30회 공연을 모두 수고한 황제 요제프 역의 윤성원 배우는, 마지막 인사에서 앙상블을 챙겼다.

궁정악장의 호명 아래에, 궁정악단 한 명 한 명 모두 관객으로부터 박수받을 기회를 만들어 준 건 이 날 무대 인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살리에르 더블캐스트 최수형 배우가 마이크를 잡은 동안 그에게 밀착한 정상윤 배우, 공연 15분 전에 한다는 '파이팅 콜'을 재연하며 온 무대를 뛰어다닌 두 젤라스(김찬호·조형균)가 준 웃음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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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장들의 케미 살리에르 더블캐스트였던 최수형 배우가 인사할 타이밍에 정상윤 배우가 얼굴을 갖다대고 있다. 뮤지컬 <살리에르>는 배우끼리의 유대감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2014년 초연부터 2015년 리멤버 콘서트, 2016년 재연까지 함께한 두 악장 모두 관객에게 많음 감동을 선물해준 감사한 배우들이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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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라스들 무대 인사를 위해 올라와 웃고 있는 김찬호(왼쪽) 배우와 조형균(오른쪽) 배우. 항시 밝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리에르> 무대 위에서는 특유의 아우라를 뽐내며 좌중을 압도하던 젤라스들이었다. 두 배우 각자의 매력이 모두 돋보였다. ⓒ 곽우신


 뮤지컬 <살리에르> 총막공

▲ 시동 거는 중 뮤지컬 <살리에르> 팀이, 공연 15분 전마다 외친다는 파이팅 콜을 재현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는 두 젤라스들. 부끄러워하며 머뭇거리던 다른 배우들 대신, 두 젤라스가 앞장 서서 손을 들고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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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리고! 뮤지컬 <살리에르> 팀의 파이팅 콜 '살리고'를 외치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김찬호 배우. 이런 파이팅이 있었기에 무대에서의 '포스'가 나올 수 있었던 걸까. ⓒ 곽우신


지난 <빈센트 반 고흐> 마지막 공연 날처럼, 이번 <살리에르> 최다관람객도 HJ컬쳐로부터 선물을 증정받았다. 2016년 <살리에르>는 약 3주의 기간 동안 총 30회 동안 관객을 맞았고, 최다관람 음표는 이 중 26번을 봤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최다관람객은 <살리에르>를 관람한 소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평소 HJ컬쳐의 팬으로서 작품을 좋아한다. 원래 살리에리라는 인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HJ컬쳐에서 만든) 뮤지컬 <살리에르>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겨 보게 되었다. 특히 공연에 살리에리의 실제 음악이 넘버로 들어가서 좋았다."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끝이 결국 와 버렸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마지막의 마지막 인사도 지나갔다. 정상윤 악장의 앞으로 붉은 커튼이 떨어지고, 샹들리에와 조명만이 이 무대가 지난 3주 동안 오스트리아 빈의 황궁이었음을 보여줬다.

많은 음표의 바람처럼, 오스트리아 빈 궁정악장은 서울로 돌아올 것이다. 음악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었던 살리에르의 소망은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무대 위에 그가 밤새 써내려간 노력의 음표들이 춤추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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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모차르트 무대인사까지 모두 끝난 뒤, 정말로 마지막 짧은 커튼콜 순간. 두 명의 모차르트가 서로를 보며 웃고 있다. 짧게만 소감을 전한 뒤, 다른 배우들 뒤에서 울먹이며 숨어 있던 박유덕 모차르트. 표현을 많이 하지는 않았어도, 배우로서 큰 도전과제 하나를 끝까지 완수한 허규 모차르트. 두 모차르트 모두 '천재'는 아니었지만, 완벽한 무대를 위한 노력이 느껴졌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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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튼이 내려가고...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정상윤 악장의 머리 위로 붉은 커튼이 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정말로, 살리에르가 음표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다시 돌아오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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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듀! 살리에르 커튼이 닫힌 뒤, 내려온 샹들리에 뒤로 뮤지컬 <살리에르>의 로고가 빛나고 있다. 대극장 버전으로 탈바꿈하면서 이전보다 나아진 점, 아쉬운 점 모두 생겼던 <살리에르>였다. 다음 공연 때까지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계속 '더 나은' 공연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 이들 모두가 예술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살리에르였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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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살리에르 모차르트 젤라스 안토니오살리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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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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