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일 방송 18주년을 맞은 <신지혜의 영화음악>

지난 2월 2일 방송 18주년을 맞은 <신지혜의 영화음악> ⓒ CBS

지난달 2일, CBS 음악 FM <신지혜의 영화음악>이 18주년을 맞았다.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당신이 상상하는 영화음악'이라는 문구는 왜 이 프로그램이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받고 애청 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20년 가까이 이끌어 온 신지혜 아나운서는 스스로 '영화는 내 인생에 있어 꿈이자 동경의 대상, 그리고 환상의 통로'라고 말할 만큼 영화마니아다. 중학교 2학년 무렵, TV를 통해 서부극 <석양의 무법자>를 본 후 영화에 관심을 끌게 되었다는 그의 평범하지 않은 영화관은 <신지혜의 영화음악>이 지금껏 변함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평범하지 않고 주류는 아닌, 임팩트는 있지만 아주 튀지도 않는' 느낌으로 다가서는 보라색'으로 표현하기도 한 신 아나운서. 최근에는 중앙대학교에서 문화 콘텐츠 관련 강의를 하는 등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신지혜 아나운서를 7일 C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났다.

다음은 신지혜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PD-작가 없는 프로그램, 1인 체제로 만들었다

- 얼마 동안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진행을 해왔나?
"<신지혜의 영화음악>이란 타이틀로는 1998년 2월 2일 시작했다. 이전 같은 시간대 영화 음악프로그램 진행자가 사정상 하차하게 돼 갑작스럽게 맡게 됐다. 그래서 약 한 달간은 기존에 있던 PD-작가분과 함께 했고, 같은 해 3월 2일 라디오 개편 이후에는 제작 및 진행을 모두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 기간 외부 인력의 도움 없이 '1인 제작 시스템'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 처음 제작 진행을 맡았을 때로 돌아가 본다면?
"벌써 까마득하다. (웃음) '프로그램 제작과 진행을 혼자 해도 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던 기억이 난다. 오롯이 내 기획과 선곡으로 좋은 영화음악을 청취자들과 나눌 수 있다는 설렘과 기쁨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점은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이왕 제작진행을 맡게 됐으니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좋은 음악을 널리 알려서 같이 듣자'라는 생각을 마음에 다졌다.

상당 기간 작가 등 스태프의 도움 없이 모든 제반 업무를 도맡아 해야 했다. 영화 및 음악 관련 자료를 지금처럼 원활하게 접할 수 있는 시기도 아니어서 방송국 자료실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관련 자료 등을 최대한 활용했다. 청취자들을 위한 영화 시사회 이벤트라도 진행하게 되면 당첨된 분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확인하고 초대권 발송까지 다 해야 했다. 다행히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었기에, 프로그램 초창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일들도 마다치 않고 할 수 있었다."

-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다는 것을 언제쯤 알게 되었나?
"다시 옛 기억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 외람된 말일 수도 있지만 <영화음악>이 방송되고 불과 몇 달 안 돼서다. 1998년 5월부터 청취자들의 사연과 신청곡이 급속도로 늘어 당시 한 대로도 충분했던 팩스가 자주 불통됐다. 아마 비슷한 연령대 청취자들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다른 방송사 영화프로그램과는 뭔가 다른 '비주류적인 성향'이 담겨서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금요스페셜'이란 코너가 있었다. 영화 <첨밀밀> <E.T.>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시티 오브 엔젤>에는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주요 씬들을 끄집어내 다른 시선으로 재구성, 듣는 분들에게 이야기와 음악을 전해 드리는 식이었다. 이런 색다른 구성을 많은 분이 여전히 좋아해 주신다."

- <영화음악>이 사랑받게 된 기폭제가 된 코너가 있다면?
"'인 더 무드'가 아닐까 싶다. 선곡을 미리 다 하지 않고, 방송 당일 여러 가지 분위기에 따라 6곡을 시간 내에 정해서 가능한 소개멘트를 줄이고 3곡씩 묶어서 보내 드렸다. 좋은 반응으로 이어져 행복했고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람도 컸다. 앞서 잠깐 소개했던 '금요 스페셜'도 빼놓을 수 없다."

- <영화음악>의 장수비결은 무엇인가?
"신지혜가 비주류면서도 영화와 영화음악을 정말 사랑하는 애호가란 것을 청취자분들이 알아주셔서 아닐까 싶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100% 청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DJ의 진정성이 듣는 이들에게 바로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영화와 그 속에 흐르는 음악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진행자와 청취자 사이의 소통과 시너지가 <영화음악>의 장수비결이 아닐까 싶다. 변함없이 함께 해주시는 청취자분들에게 가장 감사드린다. 그분들이 진정한 힘을 주신다."

- 고비 내지는 슬럼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방송사 직원으로서 <영화음악> 외에도 뉴스 등 여러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초창기 때는 청취자 초대 이벤트 개최, 시사회 참석 등도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별 무리 없이 일해 왔다. 하지만 아무래도 해가 거듭될수록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축적됐던 것 같다. 몇 해 전부터는 고비가 내 몸으로 찾아 왔었다. 프로그램 진행을 포함, 회사 일을 못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 두 차례 휴직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돌아와 많은 청취자분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역시 내겐 큰 행운이자 감사할 일이다."

"18년 함께 해준 청취자들은 내 자부심의 주체"

 자신의 프로그램을 '평범하지 않고 주류는 아닌, 임팩트는 있지만 아주 튀지도 않는' 느낌으로 다가서는 보라색'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평범하지 않고 주류는 아닌, 임팩트는 있지만 아주 튀지도 않는' 느낌으로 다가서는 보라색'으로 표현했다. ⓒ 이종성


- 프로그램이 사랑받으면서 자부심을 느꼈던 적도 많았을 것 같다.
"한 영화감독 분이 '<영화음악>은 오아시스 같은 방송'이라고 표현을 해주셨는데 무척 기분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 프로그램의 오랜 청취자분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지난 18년 동안 함께 해 온 <영화음악> 인터넷 카페 열혈 회원분들과는 진행자와 청취자로서 서로 일정한 '관계 속 예의'를 지키며 '보이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오랜 기간 <영화음악>을 들어주신 숨어있는 청취자분들의 존재를 확인할 때마다 새롭고 감사하다. 그분들이 자부심의 주체다."

- <영화음악>에 출연했던 감독과 배우 중 가장 뇌리에 남아있는 분은?
"류승완 감독이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신인 감독 시절부터 프로그램에 몇 번 나와 주셨는데, 그분의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신인 시절이나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출가가 되어서나 전혀 변함없음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천만 감독보다 그냥 감독 류승완으로 부르고 싶다. 영화를 대하는 반짝이는 눈빛과 순수한 열정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배우 중에서는 김혜수 씨가 <얼굴 없는 미녀> 개봉 시기에 맞춰 출연을 해주셨는데, 소탈하면서도 꾸미지 않은 매력이 기억에 남는다. 그와 대화하면서 진정 아름다운 여배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신지혜란 사람의 일생에 있어 '단 한 편의 영화, 단 하나의 영화음악'을 꼽으라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작품이 바로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다. 인간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SF영화를 좋아한다. <블레이드 러너>는 내 인생에 있어 각인된 단 하나의 작품이다.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사운드트랙 앨범은 내게는 최고의 영화음악이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모든 노래가 감동 그 자체다.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거장 감독이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품에 안았을 때 가슴 뭉클하기까지 했다."

-  불과 몇 년 뒤 20주년이 된다. 좀 이른 감은 있지만 특별한 계획이 있나?
"소박하게는 15년 이상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함께 해 주신 청취자분들과 함께 조촐한 규모의 모임을 갖고 싶다. 2004년과 2005년, 1회와 2회 '신지혜의 영화음악 영화제'가 열렸다. 당시 예산도 많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정말 많은 분이 자발적으로 도와주신 덕에 잘 마칠 수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내 인생에서도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만 20주년이 되는 2020년에 세 번째 영화제가 개최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보다도 아마 우리 청취자분들이 더 클 것 같다. (웃음)"

CBS음악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신지혜 류승완감독 18주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